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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김장은 배추를 뽑고 절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 절인 배추  우리집 김장은 배추를 뽑고 절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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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김치 싱겁지 않니?"
"싱거워요."
"저희 것도 그래요. 배추를 덜 절인 것 같아요."
"난 아직 열어보지 않았는데, 열어 봐야겠네."


가족 단톡방이 오래간만에 호떡집 불이라도 난 것처럼 울려댔다. 나도 얼른 냉장고로 가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서 썰었다. 고갱이 쪽은 덜 절여져서 뻗정다리처럼 뻣뻣했고 빛깔은 고춧가루 푼 물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허옇다.

지금까지 이런 김치는 없었다. 늘 '올 김치 너무 맛있어', '김장이 너무 잘 됐다', '우리 집 김치는 정말 끝내줘' 하면서 먹었는데… 내년까지 이 맛없는 김치를 먹어야 하다니 이건 분명 재앙이었다. 

'엄마표 선짓국'이 사라졌다 

올 김장에는 예년에는 없던 크고 작은 얘깃거리가 넘쳤다. 제일 큰 화제는 큰 조카네 일이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큰 조카가 안 보여서 물어보니 딸내미가 PCR 검사를 받았단다. 어린이집 선생들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선생들은 물론이고 아이들 전원이 PCR 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사달이 난 것이다. 이제 겨우 30개월 조금 넘은 아이에게 PCR 검사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다행히 모두 음성이 나왔지만 아이와 부모까지 집에서 격리 중이라 이번 김장에 못 왔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바로 우리 코앞에 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해마다 김장 때마다 엄마는 선짓국을 끓였지만, 올해는 식당에서 사 온 곰탕으로 대신했다.
▲ 엄마의 선짓국을 대체한 식당에서 사온 곰탕  해마다 김장 때마다 엄마는 선짓국을 끓였지만, 올해는 식당에서 사 온 곰탕으로 대신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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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는 날 엄마는 늘 큰 들통에 선짓국을 끓였다. 된장 푼 고깃 국물에 배추를 넣고 끓인 얼큰한 선짓국 한 사발이면 꽁꽁 얼었던 손발과 몸이 저절로 녹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선짓국 대신 곰탕을 먹었다. 

"엄마 올해도 선짓국 끓일 거지?" 하고 물었더니 "아니 힘들어서 안 해. "OOO 곰탕 사다 먹기로 했다" 하시는 거였다. 시골집에서 멀지 않은 가래비장터에 있는 'OOO 곰탕' 식당 음식이 진즉에 까탈스러운 우리 집식구들의 입맛을 통과하긴 했지만 가족행사에 '공식 음식'이 될 줄이야. 
 
삼겹살이 양고기로 바뀌었다. 세대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 우리집 김장 풍경 삼겹살이 양고기로 바뀌었다. 세대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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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더불어 삼겹살 대신 양고기 바비큐가 등장한 것도 우리 집의 김장 풍속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배추와 무를 뽑고 난 텃밭에 드럼통을 갖다 놓고 석쇠만 올려놓으면 근사한 바비큐 화덕이 된다. 지금까지 고기를 사 오고 굽는 것은 늘 남동생이 도맡아서 해 왔다. 남자조카들은 그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카들이 삼겹살 대신 양고기를 먹어보자며 팩에 든 양고기를 사 오고 굽는 것도 척척 알아서 다 해 버린 것이다. 지금껏 남동생의 몫이었던 '삼겹살 바비큐권'이 자연스럽게 조카에게 넘어간 것이다. 남동생은 '조카들이 다 알아서 하니 편해졌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듯했다. 

"할머니 이거 발라보세요."

큰 조카며느리가 작은 상자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예쁘고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담긴 립스틱 세트였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선물을 받아 든 엄마의 표정에는 멋쩍음과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아니 무슨 때도 아닌데 이걸 왜 사 왔어?"
"할머니 김장하시느라 힘드신데 제가 해 드릴 게 없어서 작은 선물 준비했어요."


조카며느리의 작은 선물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수십 동안 자식들은 뻔한 '봉투'를 건네는 것으로 엄마의 노고에 충분히 보답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봉투 속 액수는 겨우 재룟값에 준하는 정도였으니 '감사 표시'라기보다는 '결산'이 더 맞았던 것은 아닌지.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물지만 

올해도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며 무사히 김장을 마쳤다. 작년 이맘때가 떠오른다. 힘들다고 더 이상 김장을 못 하겠다고 했던 엄마. 감사하게도 올해도 엄마와 함께 김장을 담갔다. 미미하지만 어떤 변화의 기운도 감지됐다. 일테면 '세대교체'라고 해야 할까.

'김장'이라는 작은 집안 행사에서도 50~60대 세대가 서서히 저물고 다음 세대가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요즘 '꼰대' 정치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자식들이 다 떠날 때까지 배웅하는 엄마
▲ 우리집 김장풍경 자식들이 다 떠날 때까지 배웅하는 엄마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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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정리를 하는 동안 엄마는 대문턱에 앉아 어딘가를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엄마의 웅크린 어깨가 '힘드네. 그래도 올 한 해도 내 할 일 했네'라고 말하는 듯했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남아 김치통을 싣고 떠나가는 자식들을 배웅했다. 거기까지가 엄마일이라는 듯.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 한시름 놓았다"라는 엄마 말에 가슴이 시리다. 팔십이 넘어서도 중늙은이가 된 자식들 김장 걱정을 하고, 김장을 여전히 당신 일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평생 그런 걱정들이 엄마의 어깨를 짓눌렀구나…

며칠 전 엄마네 집에 다녀왔다. 

"엄마네 김치는 허옇지 않네? 간도 잘 맞고. 왜 우리 집 김치는 왜 이렇지가 않지?" 
"먹어봐. 시원하고 맛있다." 
"시원하고 맛있네~. 간도 딱이고. 허옇지도 않고." 
"맨 윗단에 있는 것 말고 아래쪽에 있는 것부터 먼저 먹어야지. 그래야 국물에 잠겨 있어 숨도 잘 죽고 간도 잘 배어 있지."
"정말? 난 여태 그런 것도 몰랐네. 엄마가 그런 말 해 준 적 한 번도 없잖아?"
"여태 그것도 몰랐어?" 


엄마는 '지들이 잘못해놓고 내 탓만 하더니. 이제 알았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우리가 김치 맛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 것을 두고 엄마는 내심 당신의 솜씨를 탓한다고 느꼈었나 보다. 우리에게 반격을 가하는 듯한 "여태 그것도 몰랐어?"라는 말이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엄마 살아있네. 역시 우린 엄마가 있어야 한다니까."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https://brunch.co.kr/@rub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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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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