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풍류대장>이라는 TV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를 표방하는 국악경연프로그램인데 매주 화요일마다 이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즐겁게 감상하고 있다. 

우리 소리 전문가들이 발라드나 R&B, 록이나 힙합 같은 장르를 판소리 창법으로 혹은 정가 부르는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예를 들어 아이유나 BTS노래를 부르는데, 판소리 창법으로 그 노래들을 부르면 구수하면서도 애절하다. 정가 방식의 창법은 마치 신선이나 선녀들이 노니는 선경에 와있는 듯 깊은 여운을 준다.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 대목에서는 애끓는 슬픔이, 어떤 대목에서는 흥과 신명이 느껴진다.

또한 드럼 대신 북이나 장구, 꽹과리로, 바이올린 대신 가야금이나 거문고로, 트럼펫 대신 태평소로 연주를 하는데 우리 악기 소리는 얼마나 독특하고 신비로운지...연신 감탄하며 듣게 되는데 생황의 신비로운 매력에 가야금 병창의 구슬픈  소리에 태평소의 카리스마에 푹 빠져 들게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기타나 건반악기로 우리의 소리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국악으로 대중음악을 접목시키는데 그 각각의 개성이 불협화음이 아니라 묘한 조화를 이루어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진다. 

이번 주에는 남은 열두 팀 중에 여섯 팀을 가리는 경쟁을 기반으로 한 경연이었다.  사실 <풍류대장>에 출연한 모든 국악인들이 실력자였다. 그러니 누가 탈락하고 누가 올라가는지에 대해 나에게는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기량을 갈고 닦아 실력을 키워 왔지만 보여 줄 무대가 없고 설 자리가 없었다. 국악을 기반으로 한 TV프로그램이 예능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도 아마 JTBC의 <풍류대장>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국악계에는 실력자들이 넘쳐 난다. <풍류대장>을 보고 있으면 수많은 무명 국악인들의 갈고 닦은 기량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저절로 생겨난다.

언젠가 TV에서 포르투갈의 파두를 들은 적이 있다. 별로 크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은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노래를 들으며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시는데, 작은 무대에선 단조로운 기타 선율에 맞춰 노래가 흘러 나온다. 그 노랫소리는 세상의 슬픔을 모두 껴안은 소리이고 그리움이 사무치고 애가 끓어서 흘러 나오는 소리였다. TV 속에서 노래가 화면을 뚫고 나에게 꽂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우리의 판소리였다. 높은 분들의 횡포와 먹고 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삶의 애환을 담은 소리, 사무치는 한을 담은 소리가 비슷했다. 거기에 더해 우리 소리는 그 슬픔을 승화시켜 풍자와 해학을 담아내기도 한다.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쳤던 장구, 집에 있는 유일한 우리 악기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쳤던 장구, 집에 있는 유일한 우리 악기 ⓒ 임명옥

 
# 풍경 1 
한 소리꾼이 나와 북을 치며 소리를 한다. 음악은 신명나고 소리는 듣기에 편안하다. 몸이 불어 살찐 사진이 화면에 올라와 있다. 소리꾼의 옛날 모습이다. 그리고 날씬해진 사진이 보인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이다. 이것을 북 장단에 맞추어 소리로 풀어낸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메가폰을 들고는 트럭에서 계란 파는 아저씨가 내는 억양과 속도 그대로 흉내내어 "계란이 왔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요요가 왔어요"를 말한다. 순간 화면 속 참가자와 심사위원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이 소리꾼은 <풍류대장>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웃음을 준다. 판소리의 특징인 풍자와 해학을 자신의 경험과 접목시켜 듣는 이에게 재미와 웃음을 선사한다.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희화화해서 시청자에게 감동을 준다. 그렇게 그는 우리의 소리인 국악을 현대적으로 살아 숨쉬게 만든다.

# 풍경 2 
어린 심청이는 인당수에 뛰어들기 전에 소리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 죽기 일보 직전이니 그 설움이 오죽 할까. 아버지에 대한 효성과는 별개로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이 왜 없었을까. 그 슬픔, 그 한, 그 서글픔을 소리로 내지른다. 어린 소리꾼은 심청이에게 빙의라도 된 듯 통곡을 소리로 풀어내는데 듣고 있는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벌써 십오육 년 전 일이지만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어린이 창극 <심청전>은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어린이날을 맞아 딸아이에게 들려 주고 싶어 같이 봤던 공연이었는데 직접 들은 그 판소리 공연은 너무 특별한 경험이었다.  

<풍류대장>은 국악의 대중화에 대한 실험의 장이다. 무관심해서 소외받고 있던 우리 국악을 정성스럽게 손 봐 멋진 공연으로 내놓았다. 국악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제 발걸음을 뗀 것으로 본다. 그래서 포르투갈에서 파두가 일상적으로 공연되는 것처럼 우리 판소리나 정가도 전용 공연장에서 언제나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요즘 들어 생긴다. 

국악이 대중음악과 크로스오버 되고 대중음악 속에 국악이 스며 들어서 서로 융합하고 섞이면서 새로운 음악이 탄생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국악인들이 그만큼 설 자리가 많아져 그들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하기를, 그래서 대중들이 국악 또한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를, 그래서 아이돌을 꿈꾸는 아이들만큼 국악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이 나와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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