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아빠와 딸이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뒷자리에 탄 딸이 이런저런 장난을 치다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사이 사고가 일어난다. 아빠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뇌를 다친 딸 알렉시아는 뇌에 티타늄을 심는 대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을 마친 알렉시아는 자동차를 껴안고 키스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수술 후유증일까 아니면, 그저 어린아이가 보이는 여러 행동 중 하나일 뿐일까.

어른이 된 알렉시아는 자동차 전시장에서 춤을 추며 입장객들의 주목을 끄는 일을 한다. 사인도 해주는 걸 보니 꽤 인기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는 집에 가려는 자신을 따라온 어느 팬을 살해한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 샤워를 하는데 문 밖에서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가 보니 자동차 한 대가 서 있다. 그는 이내 자동차와 격렬한 성행위를 하고 임신한다. 회사에서 만난 다른 직장동료와 사랑을 나누던 중 상대를 죽이고 집안의 다른 사람들도 죽여 버린다. 그러곤 집에 가서 불을 지르고 부모님마저 살해한다.

알렉시아는 도망치다가 우연히 실종자 아드리안의 포스터를 보게 된다. 그는 머리와 눈썹을 밀고 코를 뭉개뜨린 후 헝겁으로 가슴과 배를 칭칭 감아 납작하게 만들고 경찰서를 찾는다. 그곳에서 아드리안의 아빠 르그랑을 만나 그의 집으로 향한다. 아드리안 행세를 하며 감쪽같이 모두를 속인 것이다. 소방관에서 일하는 르그랑은 스테로이드 약으로 늙은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는 아들을 소방관으로 기르고 싶어 하지만 아드리안은 경계만 하고 기존 소방관들의 텃세도 만만치 않다. 그러는 사이, 아드리안은 점점 임신의 끝에 다다른다.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천재성

4년 전, 우리나라 극장에 정식으로 개봉되지 못한 프랑스 호러 영화 <로우>를 접했다. 그나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국내 관객에게도 공개됐지만 당시에는 근래에 본 호러 영화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했다. 제목 그대로 '날 것'의 공포였고 할리우드 공포영화들과도 차원이 달랐다.

<로우>로 장편 데뷔했던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신작이자 두 번째 장편 <티탄>이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개봉했다. <로우>도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지만 <티탄>은 제74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칸 영화제 역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수상으로 손꼽힌다는 후문이다. 

쥘리아 뒤쿠르노는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감독 이후 칸 영화제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감독이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또한 <티탄>의 두 주연 배우 중 알렉시아/아드리안 역의 아가사 루셀은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신인 배우다. 르그랑 역의 뱅상 랭동은 제68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명배우이다. 알렉시아가 죽은 동료로 분한 가랑스 마릴리에는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전작 <로우>에서도 주연을 맡았고 그 이전의 단편 <주니어>에도 출연했다. 두 작품에서 모두 쥐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분한, 감독의 페르소나나 다름 없다.

우아하게 기괴한, 바디 호러

<티탄>은 크게 두 개의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하나는 감독이 보여 주는 충격적이고 기괴한 시각적 요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하며 미장센 너머의 스토리와 사건, 캐릭터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시각적인 면에 집중했을 때 이 영화는 기괴하고 폭력적이다. 자동차와의 관계로 임신을 해 피가 아닌 오일을 흘린다는 설정보다 더 기괴한 게 있을까? 주인공은 연쇄 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만큼, 난폭한 방법으로 스스로의 아기를 떼내려 하고 부모님까지 죽인다. 모든 장면장면이 오로지 육체적인 부분에만 천착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오히려 우아하게 느껴진다. '우아'는 사전적으로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는 의미의 단어다. 감독의 표현 방식이 그렇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신체 변형에서 오는 공포를 다룬 호러인 '바디 호러' 장르에 가깝다. 수많은 바디 호러 명작의 뒤를 훌륭히 이으면서도 순간적 장면의 충격에만 집중하지 않았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직접적으로 보여 줘야 할 때와 간접적으로 보여 줘야 할 때를 잘 구분할 줄 안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이 기괴함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가 왜 사람을 죽이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 그가 자동차와 사랑에 빠져 성관계를 한다는 점, 영화가 신체를 주요 무기로 삼았다는 점은 매우 낯설다. 특히 영화의 폭력성은 알렉시아이자 아드리안인 그가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의 한수, 심리 드라마의 감정선

반면 시각적 요소 이면의 해석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자. 알렉시아는 동석한 아빠의 관심을 끌고자 장난을 치다가 자동차 사고로 죽을 뻔 했지만 뇌에 티타늄을 심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세 가지의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왜 어린 알렉시아는 아빠의 관심을 끌어야 했을까? 가족과의 감정 교류와 유대감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사고로 죽을 뻔했지만 자동차 자재인 티타늄 덕분에 살아났기에 그는 자동차와 특별한 교류를 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뇌에 티타늄을 심으며 일반적인 감정과는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기이한 욕망에 휩싸이게 된 알렉시아는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이 상황에서 그에게 극단의 길을 보여 주고 그 길을 가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바디 호러가 아닌 감정선이 극한으로 농축된 심리 드라마 쪽으로 선회하는 듯하다.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지점 또는 아쉬움을 남기는 지점이다. 혹자는 이 지점에서 극단적인 바디 호러 쪽으로 더 나아가야 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감독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다고 영화가 바디 호러 쪽의 극한을 보여 주지 않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과 간접을 두루두루 사용했을 뿐이다. 거기에 심리 드라마의 감정선을 얹힌 게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발상으로, 이런저런 상황에 처한 아드리안에게 딱 맞게 다가온 르그랑과 그가 보이는 또 다른 류의 육체적·감정적 질감이 기괴한 한편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아드리안에게 희망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단순한듯 복잡하고 복잡한듯 직선적인 이 영화 <티탄>, 인상을 찌푸리게 하다가 의아함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다가 놀라움의 탄성을 내지르게도 만든다. 또 주인공이 가여워 하고 동조하게 되다가 결국 박수를 치고 만다. 내 평생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쉽게 찾아 보기 힘들 것 같다. 대단한 건 두 말 하면 잔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