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20세기 힙합 소년'의 추억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이행되던 시절, 대중문화 개방과 경제적 풍요가 개화만발하기 직전 외국 문물을 자유롭게 접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은 구글 검색으로 모든 걸 찾아낼 수 있다지만 불과 30여 년 전, 딱 한 세대 이전에는 오늘 같은 상황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음악을 들으려 해도 국내 발매 대중가요 음반에는 '건전가요'라는 게 뜬금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건 대중적은 아닐지언정 찾아보고 듣는 이들은 곳곳에 섬처럼 점점이 존재했었다.
 
그 시절에 최신 서구음악을 듣는 통로는 몇 개의 FM 라디오 음악방송, 그리고 주한미군 방송인 AFKN, 몇몇 '성지' 같은 수입음반 가게나 대형 음반매장들에 국한되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같은 프로그램에서 빌보드 TOP 40 소개를 매주 진행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최신 유행을 따라가려 노력하던 시기다.
 
당시 음악 좀 듣는 체 하던 이들은 주로 록 기반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헤비메탈이 그 반항적 이미지와 함께 악기 연주에 관한 테크니컬 면모로 많은 소년(그리고 소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던 때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부터 빌보드 차트에서 기이한 변화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누구의 연주 실력이 더 뛰어난지 혹은 꽃 미남 용모가 출중한지에 꽂히던 당대 흐름에 반발이라도 하듯 두 개의 방향성이 감지되었다.
 
하나는 지금은 전설이 된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와 함께 도착한 '그런지' / '얼터너티브' 록의 심플하면서도 반항적이고 때론 지적 면모도 엿보이던 조류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흑인음악의 색채가 짙게 들어간 댄스 뮤직의 변종으로 생각하던 장르가 급속도로 진화해 등장한 '힙합'이다. 초반에는 여러 장르에 접목되는 양념 정도로 대접을 받는 데 불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전히 미국 사회 내에서 열악한 처지에 놓였던 흑인들의 삶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1982년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The Message'가 제목 그대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뒤를 이어 RUN DMC와 비스티 보이즈, 퍼블릭 에너미 같은 (이제 전설로 대접 받는) 그룹들이 속속 등장해 음악적 실험과 함께 사회적 면모를 결합시킨 성공작들을 잇달아 선보인다.

이미 80년대 후반이 되면 랩 메탈이나 하드코어 힙합 등의 이름으로 정치적 주장이 강렬한 사운드에 실린 미국 판 '민중가요'의 걸작들이 속출하게 된다. 흑백 인종차별의 실상을 생생하게 담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똑바로 살아라>의 주제곡인 퍼블릭 에너미의 'Fight the Power'이나 록그룹에 속하지만 거대한 족적을 남긴 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 등의 명곡이 그 대표 격이다.
 
그 중 또 다른 흐름이 L.A 인근에서 80년대 후반에 등장한다. "N.W.A.(Niggaz Wit Attitudes)"라 불리던 이 그룹에는 닥터 드레나 아이스 큐브 같은 거물들이 속해 있었고, 이들은 록/메탈/테크노 사운드와 결합하던 경향과 차별화된 형태, 오늘날 '갱스터 랩'이라 불리는 흐름을 선도하게 된다. 이후 '투팍'이나 '스눕 독', '에미넴' 등이 속속 등장하면서 현대 힙합의 거대한 주류로 자리매김한다.
 
국내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초기 댄스 및 록 사운드와 접목된 힙합을 소개했고 그 음악적 영향 아래 댄스 아이돌 그룹이라도 랩 소절은 들어가는 식으로 대중화된다. 그와는 별개의 흐름으로 90년대 후반 인디밴드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던 홍대 클럽의 일부가 자생적 힙합들을 취급하기 시작한다. 전 세계적인 힙합 장르의 융성과 함께 인터넷/MP3 등의 보급으로 최신 음악 보급이 간편해지고 PC통신/인터넷 동호회와 모임들이 구심점이 된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시초다.
 
그리고 2010년대 'SHOW ME THE MONEY' 같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언더에서 오버그라운드로 대거 진출하는 현상을 통해 힙합은 국내 대중가요계에서 거대한 지분을 차지하는 메이저 장르가 된다. 아이돌 래퍼라도 이제 실력이 만만치 않으며 언더그라운드의 저변은 엄청나게 넓어지고, 밴드 음악에 비해 개인 창작이 용이한데다 디지털 환경의 발달로 언더라도 활동할 영역이 넓어진 상황에서 당분간 힙합의 활황은 계속될 전망이다.
 
2_21세기: 힙합이 지하에서 뛰쳐나오기 직전

"N.W.A."는 퍼블릭 에너미와 함께 정치사회적 주제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대표적 힙합 그룹이지만 둘의 경향성은 퍽 다르다. 물론 그들이 토해내는 거칠고 강렬한 메시지는 당대 현실에서 출발한 것들이지만 퍼블릭 에너미가 좀 더 정치적 구호와 단결을 강조하는 '좌파'적 입장에 가깝다면 N.W.A.는 노력으로 극복하기 힘든 빈민가 흑인의 일상과 경험을 폭로하는 식에 가까웠다. 그리고 국내에서 크게 호응을 얻고 현재 한국 힙합의 아이콘이 된 건 명백히 N.W.A.와 그 후예들의 경향이다.
 
이들은 동네에서 거친 일상을 겪으며 자신들의 체험에 바탕을 둔 거칠고 과시적인, 하지만 'Black CNN'이라 불릴 만큼 생생한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마약과 총기와 갱스터, 경찰과의 실랑이는 그들에겐 평범한 일상이었던 셈이니 그들의 삶이 여과 없이 가사와 라임으로 흘러나올 때의 직설화법은 그 어떤 강렬한 사운드보다 더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과거엔 반항의 상징이던 게 록 음악에서 힙합으로 위치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은 얌전하게, 하지만 기본 틀은 당대 미국 힙합 계 주류적 경향을 그대로 이식하는 식으로 힙합 문화가 형성된다. 2000년대 초반의 풍경이다.
 
여기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힙합이 주요 배경이자 결정적 소재인 해외 작품들은 여럿 있다. N.W.A.의 흥망성쇠를 담은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2015)와 레전드가 된 백인 래퍼 에미넴의 자전적 이야기 <8마일> (2002)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힙합 문화 자체를 온전히 구현한 작품이랄 게 없었다(이준익 감독의 <변산>은 윗세대의 시선에서 전향적으로 힙합을 응시하는 데 가깝다). 이제 국내에서도 제대로 힙합 문화에 기반을 둔 영화를 내세울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승환, 유재욱 공동감독의 <라임크라임>이 바로 그 최초의 결과물이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동구에서 만난 두 소년은 '라임크라임'이란 힙합 듀오를 결성한다. 물론 이들은 메인스트림으로 데뷔하지 못했고 누구도 이제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는다. 두 소년은 힙합듀오로는 아마추어 활동에 머물렀지만 영화과에 함께 진학하게 된다. 그후 십여 년 넘게 공동작업을 진행해 왔다. 어느새 30대가 된 둘은 소년시절의 일부였던 듀오의 이름을 자신들의 첫 장편영화 제목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들이 경유해온 청소년기를 오롯이 담아낸 성장영화를 선보인다. 바로 이것이 <라임크라임>의 탄생설화다. 본 작품은 몇 갈래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2_1. 1단계: 랩에서 문화로 확장되는 힙합
 
"라임크라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라임크라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우선 첫 번째로 <라임크라임>은 단순한 배경이나 소재로 활용하려는 단편적 시도를 넘어 본격적으로 이제 젊은 세대에겐 친숙해진 하위문화, '힙합'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시도다. 조금 앞서 도착했던 이준익 감독의 <변산>은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이 새로운 조류에 따라가려 노력했지만 이성으론 소화해도 감성으로 온전히 체화하기 힘들었을 힙합문화의 본령을 제대로 압축해낸다.

<라임크라임>은 힙합이 그저 랩이란 음악 장르에 그치는 게 아닌, 새롭게 대두된 아직 형성과정에 위치한 대중문화로서의 정체성을 종합적 면모로 구현한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온전히 그 문화를 소화하는 경험치가 필요할 텐데, 아마추어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했던 두 감독은 이 지점을 성공해내기 위한 조건을 딱 맞게 갖춘 셈이다.
 
공동감독들의 활동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영화 속에 담긴 한국 힙합문화의 태동기 풍경은 참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성공적인 출발이라 해도 좋을 만큼. 1990년대 초중반에 바다 건너에서 인터넷과 PC통신, AFKN을 통해 넘어왔던 수입문화는 본토와는 다른 의미에서 와일드한 정글, 그 자체라 할 21세기 초반 한국 사회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현지화 되기 시작하는 바, 본 작품에선 그 태동기 시절의 핵심요소들이 골고루, 그리고 아주 세심하게 빼곡히 들어차 있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영화가 그저 음악 스타일을 보여만 주는 게 아니라 해당 문화와 정신의 한국적 기원과 토양을 사회학적 자료 마냥 충실히 화면에 복원해낸 성취다. 거리의 시인이란 칭호를 받던 '투팍'처럼 무의미한 입시지옥과 유년기부터 존재하는 사실상의 계급사회 속에서 출구 없는 청년세대의 암담함이 영화 속 주인공인 두 소년의 엇갈리는 관계를 통해 극화된다. 힙합문화의 유래를 설명하는 공식이 마치 하이퍼 리얼리즘처럼 스크린을 캔버스 삼아 거대한 역사화로 그려지는 듯하다.
 
2_2. 2단계: 관념이 아닌 체험 삶의 현장으로서 힙합
 
"라임크라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라임크라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두 번째는, 흔히 독립영화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해 가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모순 가득한 사회시스템 앞에서 보잘것없는 개인들의 고뇌가 상투적이지 않고 공감이 갈 수 있도록 하면에 구현됨은 물론, '좋은 친구들' 관계의 몰락이 틀에 박힌 듯 비극성을 띄기보다는 실제 인생에서 겪을 법한 개성을 획득하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투박하고 관습적인 연출과 확실히 <라임크라임>은 차별성을 획득한다.
 
영화는 감독들의 자전적 체험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을 기반으로 영리하게도 극중 주인공들에게 중3이라는 시간적 배경설정을 부여한다. 자아가 아직 완성되기 직전의 과도기이자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기 직전의 시기다. 아직은 편견과 차별이 각자의 내면을 장악하기 이전, 순수한 우정과 끌림이 보다 더 가능했던 때이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질풍노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너무나 상반되는 배경을 가진 두 소년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은 성장 다큐멘터리를 보듯 사실적으로 전개된다.
 
DJ '아돌'과 MC '쿠딕'은 아마 1-2년만 더 뒤에 만났다면 같이 활동하기 힘들었을 테다. '아돌' 주연은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고 수입 CD를 구매하며 동료에게 힙합의 계보를 해설할 수 있다. 모범생으로서 힙합을 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과 발언의 경로로 삼기 위함이다.

반면에 '쿠딕' 송주는 다세대 연립주택에서 카센터를 하는 (별거중인) 아버지와 마트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지낸다. 친구들과 함께 '삥'을 뜯거나 사소한 절도 행각에 가담하기도 한다. 대학입시나 세계평화는 송주와 '상희'를 위시한 친구들에겐 너무나 먼 일이다.
 
송주는 주연을 통해 접하는 세계와 상희(와 동네 친구들)의 세계 사이에서 부유하곤 한다. 주연은 상희가 구질구질한 삶에서 탈출해 자신과 함께 날아오르자는 소박하지만은 않은 욕심을 드러낸다. 반면에 송주는 주연이 리드하는 흐름에 끌려들어가지만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둘은 첫 무대에서 자신감을 얻고 성취의 희열을 느낀다. 그 결과 명문고 힙합 동아리 선배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더 큰 무대의 꿈을 갖게 되지만, 주연과 닮은 그들의 엘리트적 면모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같은 건 찾을 수 없는 상희네 그룹과도 이제 온전히 섞일 수 없다.
 
송주는 힙합 뮤지션 '이센스'의 팬이다. 이센스는 특유의 비정형적 랩과 신랄한 디스전으로 잘 알려진 존재다. 어쩌면 국내 힙합계에서 가장 그 원형질이라 할 미국 갱스터랩에 가까운 스타일이라 할 법하다. 반면에 주연은 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오버그라운드에 가까운 정교하고 각이 딱딱 맞는 라임과 메시지를 선호한다. 영화는 둘의 음악적 성향차이와 서로 다른 계층을 대비시켜 인위적 대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설정으로 둘의 미래를 암시하게 이끈다.
 
2_3. 3단계: 비전문 배우의 기용으로 화룡점정을 이끌다
 
영화는 공동감독의 자전적 체험이라는 강력한 이점에 더해 비전문 배우의 대거 기용으로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킨다. 연기자가 힙합을 따라하거나 흉내 내는 게 아니라, 힙합 뮤지션이 생활연기를 펼치는 데 가까운 연출이다. <8마일>에서 에미넴이 실제 자기 과거를 섞은 연기를 펼치는 장면, 소노 시온의 <도쿄 트라이브>에서 주연을 실제 일본의 힙합 뮤지션 '영 다이스'가 맡았던 부분과 겹쳐지는 대목이다.
 
주연 역의 장유상 배우는 전문 연기자이지만 그 외에는 다수가 실제 힙합 뮤지션이거나 크루의 일원들이다. 또한 공동감독의 홈그라운드라 할 동네 출신들이 대거 등장한다. 송주 역 이민우 배우는 자신의 크루를 이끄는 현역 뮤지션이며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보성고 힙합 동아리의 주요 멤버는 한국힙합 좋아하면 대번에 알만한 프로들이다.

그런 명확한 연출 노선 덕분에 중3 나이를 소화하기엔 출연 배우들 거의 대부분이 예비군 연령대임에도 크게 위화감이 없다. 아역 청소년 연기자를 억지로 투입했다면 더 억지스러웠을 테다. 감독들의 단호한 판단이 영화의 사실성을 살린 예시라 하겠다.
 
영화는 감독들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에 둔다면 2000년대 극 초반 시기이지만 작품 속에서 주연이 송주에게 강의하듯 정리해주는 작중 힙합음악의 역사로 보면 2010년대 전후까지 폭 넓게 시기를 아우르고 있다. 연대기적 정확성보다는 두 감독이 실제로 체험해온 시대상을 온전히 압축하려 한데 가까워 보인다.
 
또한 송주가 처음 어울리던 동네 친구들, 상희의 패거리가 겪게 되는 일들은 비록 본토 힙합 뮤지션들이 왜 어둡고 거친 가사만 쓰느냐는 질문에 졸업사진을 치켜들고 동창생 중 총에 맞아죽고 감옥에 간 친구들을 일일이 열거하던 유명한 일화를 '한국화'하는데 성공한 탁월한 묘사라 감히 추천하는 바이다. 이제서야 교과서적으로, 혹은 신문 스크랩 수준에서 끼워 맞추지 않고도 이만한 표현이 가능해진 셈이다.
 
3_'한국적' 힙합을 담은 영화의 선발대
 
누구나 조금씩은 가질법한 그 시절 기억과 누수 없이 접속되는 보편성의 미덕을 <라임크라임>은 거의 최초로 획득한 영화다. 힙합 음악을 통해 주인공 송주는 낯설지만 매혹적인 신세계(그리고 신분상승의 욕망)를 선사하지만 온전히 거기에 동화될 수 없는 주연의 공간과S 익숙하고 동질감을 느끼지만 비좁고 답답한 상희와 동네 친구들의 공간을 지속적으로 대차 대조한다.
 
송주는 끊임없는 시행착오 와중에도 소박한 꿈을 밀고 나가는 결단을 끝끝내 선보인다. 그리고 주연과 온전히 함께할 순 없지만 영화 초반 끌려가던 입장에서 먼저 어른이 되어가는 면모로 성장을 보여준다. 주연 또한 혹시나 둘이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그리고 송주에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작은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 선물처럼 날아든다.
 
"라임크라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라임크라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영화는 전반부에 한국 힙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이를 주인공들의 연습과 일상, 공연 풍경에 성공적으로 녹여낸다. 아마 힙합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몸을 들썩거리며 즐길 수 있을 테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힙합 음악 자체에 올인 하기보다는 하나의 문화적 체험으로서 두 주인공의 성장담에 복무하는 형태로 분위기는 바뀌어간다. 그 결과는 억지 해피엔딩도, 끼워 맞춘 비극서사도 아닌 결말로 향한다.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져가지만 가끔 생각나고 결코 잊히진 않는 한때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의 생생함이 돋보인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독립영화의 극단적 결말은 현실의 영화적 압축이란 이름으로 선보여지곤 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삶 대부분은 그런 결정적 파국보다는 반복되는 일상의 변주 속에서 조금씩 개별적 차이로 형태를 갖추는 게 대부분이다. <라임크라임>은 그런 풍성하고 다채로운 우리 삶의 리얼리티를 (주인공들의 불안한 심리처럼 설정된) 거칠게 표현된 흔들리는 화면과, 기성세대의 시선을 대신하는 홈-캠 및 CCTV 이미지 같은 시각적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구현한다. 한국 힙합 태동기를 압착해낸 듯 사운드트랙은 발매된다면 소장하고 싶다.
 
조금 시니컬한 표현이지만 두 감독의 다음 작업은 <라임크라임>의 성취와는 논외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그들의 지독히 개인적인 경험을 응축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폼 나게 만들겠다는 예술가적 욕망보다 자신들이 함께 공유한 체험을 동시대에 공감할 수 있는 세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소망에 기반을 둔 <라임크라임>의 색깔은 흉내 내기도, (어쩌면 감독 자신들도) 복제하기도 난이도가 꽤 세다. 그만큼 소박하지만 진솔한 진심이 담긴 영화다.
 
이제 <8마일>과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의 한국화된 모델을 찾는다면 본 작품 <라임크라임>이 당분간 첫 번째 자리에 호명될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작품정보>
 
라임크라임 LIMECRIME
2020|한국|드라마
2021.11.25. 개봉|82분|15세 관람가
감독 이승환, 유재욱
주연 이민우(송주), 장유상(주연)
출연 김최용준(상희), 이시하(호수) 손원익(재훈), 올티(MNG리더),
임호준(송주 아빠), 방인혜(송주 엄마)
촬영 유재욱
편집 유재욱, 이승환
제작 기린놀이터
공동제작 (주)시네마달
배급 (주)시네마달
 
2020 부산국제영화제 KBS독립영화상
라임크라임 한국힙합 이승환 유재욱 이민우 장유상 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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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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