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재즈 디바라는 엘라 피츠제럴드와 사라 본 그리고 빌리 홀리데이. 대중음악과 재즈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각자의 고유한 개성으로 1940~1960년대를 수놓았던 세 인물 중에서도 '삶의 우여곡절'이란 측면이 특히 도드라지는 빌리 홀리데이에 관한 영화가 나왔다.

<몬스터 볼>,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의 리 다니엘스가 연출을 맡았고 뮤지션 겸 배우 안드라 데이가 홀리데이로 분했다. <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라는 흥미로운 원제를 가진 영화 <빌리 홀리데이> 속 다섯 가지 키워드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본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

영화 <빌리 홀리데이>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1. 목소리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들이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을 관통했지만, 종래엔 음악이 있고 그녀의 목소리가 있다. 단단한 기본기에 화려한 스캣이 더해진 엘라 피츠제럴드, 'Lover's Concerto' 속 사라 본의 낭창낭창한 가창에 비해 홀리데이의 음색은 할머니의 손처럼 꺼끌꺼끌하고 건조하다. 굴곡진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Solitude' 같은 곡들이 더욱 특별하게 가슴에 가닿는 이유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

영화 <빌리 홀리데이>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 사랑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운 삶에도 지미와 함께한 짧은 시간엔 사랑의 행복이 있었다. FBI 위장 요원의 정체를 숨기고 홀리데이를 속여넘긴 바 있는 지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친 영혼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는다. 하지만  비련의 운명을 타고난 여인은 행복의 정점에서 지미를 떠나 폭력적이고 돈만 밝히는 루이스 매케이를 남편으로 맞이한다. 지미에게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랑엔 익숙지 않아'라고 말하는 홀리데이. 불안한 삶과 비순수의 사랑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애처롭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

영화 <빌리 홀리데이>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3. 약물

약물은 홀리데이의 커리어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녀는 대마, 코카인, 헤로인 등의 마약류를 사용했다고 한다. 뒤로 갈수록 더 강도가 센 약물이라 그녀의 중독 증세가 심상치 않았음을 직감한다. 안 그래도 FBI의 눈엣가시였던 그녀에게 지속적 약물 사용은 수사의 빌미를 제공해줬고 결국 1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홀리데이의 절친인 미스 프레디(미스 로렌스)의 대사에 나오듯 십 대 시절 당한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견디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댔다. 그녀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

영화 <빌리 홀리데이>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4. 프로테스트 송

빌리 홀리데이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이유다.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가?' '사회 활동에 개입한 예술가들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하나?' 어려운 문제다. 다만 대중음악사는 존 레논과 밥 딜런처럼 사회 운동과 연관된 이들을 별표치고 많은 지면을 할애하곤 한다.

흑인 린치 사건을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묘사한 'Strange Fruit'은 그녀의 대표곡임과 동시에 일종의 금지곡 취급을 받았다. 청중은 이 민감한 노래를 끊임없이 리퀘스트했으나 FBI는 눈에 불을 켜고 쥐잡듯 노래의 가창 여부를 감시했다. 일찍이 홀리데이의 영향력을 감지한 기득권자들은 흑인들의 봉기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아티스트의 표현의 자유마저 억압했다. 박정희 정권의 금지곡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 지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수미쌍관으로 구성하는 '흑인 린치 관련 법안을 냈으나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는 대목은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투사들의 노력에도 아직 완전한 변화가 이룩되지 않았다는 좌절감 혹은 자조 섞인 분노로 들린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

영화 <빌리 홀리데이>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5. 안드라 데이

안드라 데이를 잘 몰랐다. 이름 정도만 들어봤을 뿐이다. 찾아보니 정규 음반 하나와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나온다. 국내에서의 인지도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음악과 연기가 두루 되는 멀티 엔터테이너로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사실 이런 부가 설명이 그리 중요하진 않다. <빌리 홀리데이>에서 보여준 퍼포먼스 하나로 안드라 데이 다섯 글자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상처로 얼룩진 영혼과 이를 극복하는 투사의 면모. 우울과 유쾌의 양극단을 가로지르는 내면 연기는 홀리데이를 21세기로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모든 걸 내려놓고', '혼신을 다하는'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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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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