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은 어디에나 있다. 인터넷상에는 그가 쓴 많은 글이 넘실거리고 그를 주목한 기사도 한가득하다. 심심찮게 이랑이 그린 그림과 그가 작업한 영상 작업물을 만나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나왔다고 해도 다 몰라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라는 그의 말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랑은 때때로 쉽게 가려진다. 솔직한 그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궁금한 것을 거침없이 질문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가감 없이 목청을 높인다. 동시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두려움, 공포, 부담감을 숨기지 않는다. 다수가 마침표를 찍고 그저 멈춰 있을 때 그는 그 위에 갈고리를 걸어 물음표를 만든다.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에는 그런 그가 사회를 향해 던진 커다란 의문 부호들이 가득하다. '이랑' 대신 더 다정하게 '랑'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그를 만났다.

10월 중순 치른 수술 이후 별다른 휴식 없이 연일 일정을 소화했다는 랑에게서 투명한 피로가 스쳐 갔다.

"악플에 상처받는 건 당연"
 
 이랑

이랑 ⓒ 정멜멜 사진작가

 
-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쉴 겨를 없이 복귀한 거 같은데.
"이미 10월 일정이 다 차 있는 상태에서 수술할 날짜를 어렵게 뺐다. 소화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계속 메일이 온다. SNS 같은 데를 보면 '바쁘다고 하더니 다 하네' 싶기도 할 거다. 그래서인지 연락이 계속 오고 있다. 난감하다."

- 랑의 음악이 가진 메시지가 때로는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친 일 등 해석하기에 따라 제도권에 반하는 길을 가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고.
"'트로피 사건' 이후로 지금도 욕 댓글이 달린다. 제일 재미있었던 댓글은 '이번만 듣고 다시는 안 듣겠다'는 글이다. 싫어하기로 마음을 다잡는 건데 솔직히 좀 귀여웠다 (웃음)"

- 악플에 의연해 보인다.
"당연히 상처 입는다. 다만, 익명성을 가지고 공격은 쉽게 하는데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지지하는 게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어떤 논란으로 인해 공격을 받고 있으면 실명을 드러낸 분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준다. 문화가 그렇다. 나를 직접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시끄러운 상황이 있어도 믿고 지지해준다. '프라우드(자긍심)'를 갖게 된다. 특히 트로피 때는 욕을 많이 먹었는데 예정된 일이 하나도 끊기지 않았다. 신뢰를 주고 있음을 느낀다."

- 앞에서 어떤 목소리를 시원하게 내기도 하고 동시에 내면의 힘듦, 불안함을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이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매체에 노출이 되면 쉽게 '캐릭터'가 생긴다. 그걸 유지하기 위한 강박에 시달린다. 나아가 캐릭터가 밈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면 그 외의 수많은 면을 눈치껏 숨기고 자기 조절을 해야 한다. 내 캐릭터는 좀 시끄럽고, 그러니까 말을 자꾸 하고 의견을 내는 사람일 거다. '세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말을 하고 싶을 때 할 뿐이다. 그로 인해서 공격받으면 슬프고 무섭고 그런 걸 동시에 다 느낀다. '저 사람은 강하고 세니까 상처를 안 받겠지'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설리가 죽은 게 큰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부여한 캐릭터 때문에 특히 '노브라'를 가지고 정말 많은 얘기가 오갔고 그걸로 그를 괴롭혔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나. 그가 얼마나 다양한 면을 혼자 끙끙대면서 감추고 외로웠을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 음악 듣는 걸 인식"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의 전면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의 전면 ⓒ 정멜멜 사진작가

 
-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는 유독 사회적 메시지가 강하다.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1집 <욘욘슨>(2012)은 기존에 써뒀던 노래가 나왔던 거라 가수라는 직업의식도 없었다. 1집을 만들 때 20여 곡이 있었는데 실물 앨범에 12곡만 담겼다. '그냥 있는 노래를 다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할 정도였다. 1집에 안 넣은 곡들과 새로 쓴 노래를 집합해 2집 <신의 놀이>(2016)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실물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그런 식으로 경험들이 쌓이고 또 누군가 듣고 반응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책임 의식이 생겼다. 가장 듣는 사람을 고려하며 쓴 게 <늑대가 나타났다>다. 아티스트로서의 책임 의식, 프라이드를 반영했다."

- 영상감독, 작가, 만화가 외에 '가수'라는 직업 정체성도 받아드린 걸까?
"딱 부여받은 정체성만 보여주소서 하는 분위기를 못 참는다. 공연할 때도 '지금 무섭다', '객석이 안 보여서 무섭다'라고 자주 말한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서 찬양받는 존재가 되는 걸 못 참는다. 객석에 불을 밝혀서 어떤 사람들이랑 만나고 있는지 알고 들어가면 좀 편안한데 쥐 죽은 듯 고요하고 껌껌한 곳에서 다수가 나만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럽고, 무섭다."

- 이유는?
"실수했을 때 돌이킬 수 없지 않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부담이 제일 크다."

- 지난 2집 <신의 놀이>와 달리 이번 음반은 실물 CD를 제작했다.
"사실 한국판은 CD 없이 (지난 음반처럼) 다운로드 코드만 있어도 된다. 일본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문화적 차이를 생각했다. 일본은 아직 아날로그를 지향하기 때문에 CD가 없으면 안 사려고 한다. 다운로드 코드만 있는 앨범을 낯설어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 노래마다 곡이 쓰인 배경이 확실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2집처럼 에세이를 포함한 앨범을 기대했다.
"따로 책 계약을 해놨다. (웃음)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이랑의 가사-말'과 새로 쓴 분량을 합쳐서 책을 만들고 있다. (언제 발매되느냐 물으니) 내년에 내야 하는데 아직 원고를 다 쓰지 못했다." 

바쁘다, 쉬고 싶다, 너무 바쁘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그는 올해 이미 5권의 책을 계약했다. 코로나 19란 상상 불가의 팬데믹이 불어 닥치며 일감이 줄어든 탓이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올라 그는 "1월 수입이 42만 원"이었음을 밝히며 트로피를 즉석에서 팔았다. 한 달 치 월세였던 50만 원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랑의 활동은 계속됐다. 나름 이름도 알렸다.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타이틀 '늑대가 나타났다'의 한 가사가 그리 녹록지 않은 현실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듣고 나누며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
 
 이랑

이랑 ⓒ 정멜멜 사진작가

 
- 전작보다 목소리를 긁고 강하게 표현하는 식의 창법 변화도 느껴졌다.
"목소리가 어떤지에 대한 생각은 안 했었다. 어떻게 부르겠다 의도하지 않았으니까 듣는이가 동요 같이 부른다, 담백하게 부른다고 얘기 해주면 그냥 그렇구나 했다. 점점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지면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고 그들과 이야기 나누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말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멜로디에 얹어서 부르는 정도였는데... 목소리를 진짜 악기처럼 생각하고 작업하는 분들을 보니까 완전히 접근 방식이 달랐다. 나는 가사가 제일 중요한데 이들은 소리가 가장 중요하고. 아직은 어떻게 접근해야 목소리를 악기로 쓰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여기서는 좀 더 크게 부르고, 더 긁으며 부르고 이런 것을 조금씩 시도 중이다."

- 음반의 시선이 나에게서 사회로보다 넓어졌지만 음악을 채우는 핵심 질료들은 전과 같다. 첼로의 혜지, 코러스의 혜미 등이 특히 각별할 것 같다.
"내게 늘 힘을 주는 조력자들이다. 대학생 때부터 기타 치고 노래를 불렀다. 학교 게시판에 음악 할 사람을 찾는 글을 올렸는데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훌륭히 활동하고 있는 이길보라 감독만 답을 줬다. 둘이 한참 공연을 하다가 우연히 혜미가 내 공연을 보러 왔다. 이길보라가 떠났던 차여서 혜미를 막 꼬셨다. 코러스라도 해달라고.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을 하면서 드러머를 만났고 혜지를 만났고 프로듀서인 대봉이도 만났다. 그렇게 꾸려졌다."

- '늑대가 나타났다', '환란의 세대'에 힘을 보탠 합창단 '아는 언니들'은 어떤가?
"음악을 가르치면서 다 같이 노래하고 소리 지르는 일들이 많았다. 항상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언젠가 이런 합창팀을 꾸리는 게 나의 원대한 목표였다. 그러다 우연히 아는 언니들 쪽에서 워크숍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사랑스러움이 넘쳤다. 아마추어 합창단이어서 더 매력적이기도 했고. 앨범 작업에 참여해달라고 먼저 제안했다."

- 합창단을 꿈꿨다고?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 때 합창대회에 딱 한 번 나가 봤다. 가난한 축에 속했던 우리 학교만 빼고 모든 팀이 다 옷을 맞춰서, 그것도 화려한 성가대복 같은 가운을 입고 나왔더라. 우리는 각자 알아서 흰색 상의에 빨간 하의를 맞춰 입고 오는 거였다. 진빨강, 핑크에 가까운 빨강, 쿨톤, 웜톤 등 온갖 색이 다 섞인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느낀 어떤 부끄러운 감정이 생생하다. 이런 팀이 1등 하면 진짜 멋있는 건데. 우리가 노래를 잘 못 불렀나?"

- 합창대회가 다양성을 포용할 줄 몰랐나 보다.
"그래서 이번 '뮤즈스(MUZES)' 영상을 찍을 때 까만색 졸업가운 제일 싼 거를 빌려서 다 같이 입었다. 한 벌에 5천 원 정도 줬다. 예전에 옷을 맞추지 못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웃음)"

- 방금의 일화처럼 아픔을 끌어다가 작품을 만든다. 이런 식의 창작이 자신을 소모하게 하진 않는지.
"전혀. 내가 바라는 유일한 것은 내 얘기를 계속 들어주는 것뿐이다. 할 얘기가 너무 많고 살면 살수록 많은 걸 배우고 알게 되니까 어떻게 작품으로 낼지 정리가 안 될 정도다. 언젠가 어떤 이유로 내 이야기를 더 안 듣고 싶어 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를 느낀다. 어릴 때부터 내가 있는 곳에 누군가가 얘기하러, 얘기 들으러 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넓은 작업실을 쓰는 것 역시 지금처럼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이랑

이랑 ⓒ 정멜멜 사진작가

 
- 뮤지션 이랑으로 활동한 지 이제 10년 정도 됐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
"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늑대가 나타났다'를 만들게 된 계기를 꼽고 싶다. 강남역 살인 사건 관련한 여성 집회에 초대돼서 노래를 부르게 됐다. 공연 의뢰가 왔을 때 엄청 겁이 났다. 집회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당시 개인적인 일로 인해 일절 밖으로 나오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무대에 올라 다수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면 나중에 나를 도와줄 몇백 명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겠구나. 그날 기억이 좀 강렬하다. '신의 놀이'를 부르러 간 거였는데 그 곡을 따라 부르기 어려우니까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 노래가 주는 연대의 힘을 느낀 것 같다.
"자기 노래를 가지고 어떤 시위나, 집회 혹은 행사에 나와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물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한테는 '신의 놀이' 정도가 전부였을 땐데 그 곡은 한번 듣고 기억하기 어려우니까. 모두 싶게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를 써야겠다 한 거지. 후렴 정도는 따라부를 수 있으니 내게는 큰 성취다. (웃음)"

- 랑은 어디서 쉼과 위로를 얻는지.
"나는 쉴 줄 모른다. 그걸 못 배우고 못 해본 사람인 거다. 쉬는 날도 일정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미리 약속을 잡아 둔다. 조금만 시간이 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하는 성격이다. 영원히 못 할 것 같은 게 명상일 정도로. 말없이 조용히 생각을 비우고 이런 건 너무 괴롭다. 소용돌이치는 이야기 속에서 그냥, 살고 있다."

인터뷰 후 곧장 최소한의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그러니 (거절해도) 양해를 부탁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니나 달라, 며칠 뒤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랑이 만들고 나아가는 길에 사랑과 따뜻함만 놓여있기를 바란다. 상처를 덮고 '하하하하 웃으며 해해해해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미룰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별똥별 말고 계속 반짝이는 별이 되기를. 그가 써내는 작품들처럼 랑도 에너지를 잃지 않고 '신의 놀이'를 이어가기를 염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이랑 늑대가나타났다 인디음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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