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기자였던 프랭크 허버트는 1959년 오리건 주 사막을 취재하다가, 사막을 배경으로 한 SF 소설을 떠올렸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65년 소설 <듄>이 세상에 등장했다. 이 작품은 인기 SF 시리즈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을 합친듯, 우주 전체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세계관으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진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1984년 <듄>을 영화화 했다. 그러나 원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시대를 앞서간 데이비드 린치라고 해도 혹평을 면치 못했다. 그 후 37년이 훌쩍 지난 2021년 <콘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철학적 화두를 던진 드니 빌뇌브 감독이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과연 드니 빌뇌브는 원작의 세계관을 제대로 담아냈을까?
 
 영화 <듄> 포스터

영화 <듄>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듀니버스'의 서막

영화 <콘택트>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건 외계인들이 타고 온 우주 비행선의 외양이었다. "우리 밖의 존재는 야만"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 드니 빌뇌브 감독은 비행접시를 세로로 세운 듯한 우주선을 통해 질문을 던졌다. 지구와 지구인을 초라하게 만드는 상징으로 등장했던 그 우주선과 같은 기구들이 <듄>에도 등장한다.

<듄>을 본 관객들을 사로잡는건 스토리보다는 1만191년의 우주를 채우는 신비롭고 압도적인 음향과 우주 공간을 구현하는 연출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영화는 드니 빌뇌브 식 '유니버스'로 보는 이들을 인도한다. 

영화의 제목인 '듄'은 아라키스 행성의 모래 언덕을 뜻한다. 하지만 이 모래 언덕은 평범한 모래 언덕이 아니다. 21세기의 문명이 특정 지질층에 매장되어 있는 화석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듯, 영화 속 '듄'에 매장된 환각제 '스파이스'도 전 우주가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물질이다. 석유, 석탄이라는 지하자원이 제국주의와 자원 민족주의의 시발점이 되었듯, 아라키스 행성의 스파이스는 행성을 둘러싼 전 우주적 차원에서 별들의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스파이스를 가졌지만 그 때문에 강대한 행성들의 식민지로 전락한 사막 민족 프레멘,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우주의 지배자 하코넨, 그의 명을 받는 아트레이더스 가문까지. 이들이 스파이스 자원 전쟁에 참전한 종족들이다.

영화 속 배경은 1만191년이라는 먼 미래이지만, 군인들이 칼을 들고 싸우는 모습이나 이들을 싸우게 만드는 권력 구조는 중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치 인류가 아무리 첨단 문물로 발전하더라도 결국 땅따먹기와 같은 혈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중에서 가장 풍요로운 부강을 누리고 있던 아트레이더스 가문은 갑작스레 지금까지 아라키스를 지배하던 하코넨 가문을 대신하라는 명을 받는다. 황제의 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레토 아트레이더스 1세는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아라키스로 향하지만 그건 나날이 세력이 커져가던 그들을 제압하려던 황제와 하코넨이 결탁한 음모였다. 

아라키스 행성에서 아버지 레토 아트레이더스 1세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사막 한 가운데 던져진 폴 아트레이더스. 영화는 그가 사막 종족 프레멘과 함께 떠나는 것으로 1부를 마무리 짓는다.
 
 영화 <듄> 스틸

영화 <듄> 스틸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사막으로 간 초인, 퀴사즈 해더락 

그렇다면 영화는 잃어버린 왕좌에 대한 이야기일까?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듄>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출간 이래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권력 그 이상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끊임없이 폴을 괴롭히듯 나타나는 그의 영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레토 아트레이더스 1세의 아들인 폴은 제국의 주요 지하세력인 베게 게네리트 조직원인 어머니 제시카에 의해 아들로 태어난다. 여성에 의해 승계되어 온 조직에서 태어난 아들은 '퀴사즈 해더락'이라는 메시아적 존재가 된다. 

<콘택트>에서 외계와 대화를 나누고자 했던 루이스는 지구와 다른 체계의 언어와 시간을 경험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듄>은 지배 세력 내에 암약하는 또 하나의 세력을 등장시켜, 그들의 자손으로 태어난 폴을 통해 '초인'의 탄생을 예견한다. 인간의 또 다른 영역, 무의식을 전면에 내세워 영적인 능력을 지닌 선지자로서의 '초인' 퀴사즈 해더락의 등장이 서막으로서의 <듄>이다.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예수가 사막으로 가서 고행을 통해 자신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듯, 그저 평범했던 귀족 가문의 아들 폴은 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잃고, 영적 지도자 그룹인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자신이 예견된 '초인'으로 제련되는 과정을 밟는다.

결국 퀴사즈 해더락은 아라키스 사막의 스파이스라는 환각 물질을 둘러싼 지배와 피지배를 둘러싼 권력의 쟁투, 그 끊이지 않는 지배를 향한 욕망의 악순환 속에서 등장한 초인이다. 실제의 권력과 그 이면의 '영적인 경계', 보이는 것과 보이는 경계 너머의 무의식, 그런 혼재된 세계가 '듄'의 세계관 '듀니버스'다. 과연 그 초인은 이 모든 갈등을 종식시킬 메시아일까? <블레이드 러너 2049>를 통해 인간과 문명을 회의했던 드니 빌뇌브 감독이 그려낸 메시아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듄2>가 그 바톤을 이어받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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