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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은 4.3의 비극을 겪었다. 내가 집권하면 억울하게 공산당으로 몰린 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겠다." 1987년 11월 30일, 제13대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 <사진 = 전시 도록에서>
 "제주도민은 4.3의 비극을 겪었다. 내가 집권하면 억울하게 공산당으로 몰린 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겠다." 1987년 11월 30일, 제13대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 <사진 = 전시 도록에서>
ⓒ 강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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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 보름 여 남겨 둔 1987년 10월 29일 김대중은 통일민주당내 동교동계 의원 27명과 무소속 1명 등 54명과 함께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 당명을 가칭 평화민주당(약칭 평민당)으로 정하고, 창당을 준비하였다. 

1987년 10월 30일 오전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각계 인사 1천 6백 29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창당준비위를 구성, 김대중을 위원장에 추대했다. 발기인대회에서 채택한 발기취지문은 "민주화의 여명에 서서 민주통일에의 길까지 내다보며 가장 확실하고 명백한 민주세력의 집결체로서 평화민주당을 창당한다"고 선언하고, "우리는 수구주의와 급진적 개혁주의의 양극을 배제, 온건한 개혁노선을 표방해 중산층과 근로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민정당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재야민주세력의 연대, 군부 중립 아래 민주주의의 성패를 거는 정당이 필요해 정당을 창당하게 됐다"고 말하고, 당의 진로를 △ 민족민주정통성 확립 △ 온건개혁주의 정립 △ 중산층과 근로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 국민화해 △ 정의경제 △ 군부중립 △ 자주외교 △ 통일추진의 5대 공약 실현에 두겠다고 밝혔다.

창당발기인에는 현역의원 27명을 포함, 각계각층의 지도급 민주인사들이 망라되어 명실상부한 정통야당의 위상을 갖추고 출범하게 되었다. 창당발기인은 25명의 전직의원, 문동환ㆍ박영숙 등 다수의 재야민주인사, 민권회 이사, 민주당 및 민추협 국장ㆍ부국장ㆍ차장 다수,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주요회원 2백여 명, 지역구의원 추천 각 5명 등 다양한 인맥으로 구성되었다.

신인으로는 정 웅 예비역 육군소장, 조규삼 예비역 육군준장, 양대현 한남대교수, 박종철 동국대 교수, 최운상 전 자메이카대사, 조승형ㆍ이흥록 변호사, 신중식 등 전직언론인, 곽권옥 등 동양화가, 최재환 공인회계사 등 각계 인사들이 참가하여 정통민주정당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야말로 새 민주시대를 열 전위세력이 평화민주당의 창당과 더불어 형성된 것이다.

또 전직의원으로 이상돈ㆍ김판술ㆍ김응주ㆍ유청ㆍ양순직ㆍ김종완ㆍ최영근ㆍ박종태ㆍ박영록ㆍ감윤식ㆍ조윤형ㆍ김승목ㆍ오홍석ㆍ김창완ㆍ정대철ㆍ김원기ㆍ조세형ㆍ이석용ㆍ한광옥 등 19명과 다수의 지구당위원장, 민추협에서는 용남진ㆍ김충섭ㆍ정웅ㆍ송좌빈 등 부의장단과 권노갑 비서실장 등이 참여했다.  

창당준비위는 부위원장에 이중재ㆍ노승환ㆍ이용희ㆍ양순직ㆍ최영근ㆍ김종완 등 5명을, 고문에 이상돈ㆍ김응왕ㆍ김판술ㆍ유청 등 4명을 추대했다. 실무기구로 총무위원장 이재근, 조직위원장 김영배, 홍보위원장 조세형, 당헌ㆍ당규위원장 허경만, 정책위원장 허경구, 원내대책위원장 유준상, 대외협력위원장 김현수, 대변인 정대철이 각각 임명되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평화민주당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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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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