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연모> 포스터

KBS 2TV <연모> 포스터 ⓒ kbs2

 
'남장 여자'는 우리나라 사극의 스테디 셀러 콘텐츠다. 남존여비 사상이 당연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은 장옷으로 신체를 가리고 유교 관습법에 따라 자신을 남성에 의탁해 살아가야 했다. 그러기에 주체적인 사회 활동은 당연히 여성들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나마 신사임당, 허난설헌같은 여성들이 활약할 수 있던 조선 중기를 넘어 유교체제가 확고해진 조선 후기에 이르면 여성은 더욱 가문에 귀속된 존재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딜레마는 여성이 스스로 남성을 대신하게 되는 서사 탄생의 배경이 된다. 송중기, 유아인 등을 스타덤에 올린 KBS 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남장 여자 서사의 대표작이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가난한 선비 집안의 딸인 김윤희(박민영 분)는 아픈 동생 대신 성균관 유생으로 자원한다. 대리 과거를 볼 만큼 걸출한 그의 문재가 가족을 구할 그의 무기가 된 것이다. 그저 가족들 입에 풀칠만 하면 될 것을, 그의 기개가 그를 일개 유생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들면서 문제가 커진다. 

세자가 된 나인 담이

남장 여자 드라마의 묘미는 그저 여자가 남자로 분장한다는 게 아니다. 불가피한 삶의 조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남자가 되지만, 그는 걸출한 능력을 선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소영 작가의 만화 원작을 한희정 작가가 각색하고, 송현욱 PD가 연출을 맡은 KBS 2TV 드라마 <연모>는 아역 서사로부터 시작된다. 원작이 실제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것과 달리, 남장 여자가 왕이 된다는 소재적 부담을 덜기 위해 <연모>는 혜종시대라는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조선의 중종 반정을 연상케 하듯, 상왕은 신하들에 의해 옹립되고 왕은 자신의 소생인 쌍둥이 여아의 죽음을 용인한다.

여성이 가문의 부속물인 시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중신 한기재(윤제문 분)의 딸로 세자빈이 되었지만 딸의 생사조차 가문과 국가의 안위 때문에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빈궁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쌍둥이 여식의 생명을 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살아남은 여식은 비극의 빌미이자 구원이 된다.

자신이 왕가의 핏줄인 줄로 모르고 산사에 의탁해서 살아가던 담이는 절이 불타는 바람에 허드렛일을 하는 나인으로 궁궐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세자와 얼굴이 같다는 이유로 종종 궐밖에 볼 일이 있는 세자 이휘를 대리하게 된다. 세손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역할극은 담이와 세자, 사실은 쌍둥이인 이들 남매에게 비극의 씨앗이 된다. 사부가 권신들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목숨을 잃게 되고, 세자는 스승님을 찾아가기 위해 궐밖을 나선다. 하지만 담이의 존재를 알아챈 담이의 외할아버지이자 권신 한기재의 명을 받은 정석조는 담이 행세를 하던 세자는 목숨을 잃는다. 

졸지에 죽은 이휘 대신 세손이 된 담이, 빨래나 하던 담이에게 세손이라는 자리의 무게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그 자리를 벗어나려 애쓰던 담이는 자신과 함께 방을 썼다는, 자신을 찾는다는 이유로 가장 친한 동방생이 목숨을 잃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세자 이휘에 이어, 자신으로 인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걸 본 담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차갑고도 강한 세손으로 거듭난다. 
 
 KBS 2TV <연모> 포스터

KBS 2TV <연모> 포스터 ⓒ KBS

 
세자가 된 담이는 권신들이 좌지우지하는 허약한 왕권을 지켜야 하는 무거운 운명을 짊어진다. 심지어 그를 유일하게 지켜주던 세자빈마저 운명을 달리하고 인자하지만 유약한 아버지 혜종은 계비를 맞이한다. 계비의 소생으로 왕자가 태어나 후계 자리조차 보장받기 힘든 상황이다. 그저 남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목숨조차 부지하기 힘든 상황에 던져진 담이의 주도적 운명 개척기가 바로 <연모>의 줄거리다. 

왜소하고 아름다웠던 그는 성인 이휘가 되어 활쏘기, 말타기, 사냥에 능숙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물론 그 주변에는 이휘를 보좌할 주요 캐릭터 남성들이 포진돼 있다. 원작을 각색한 드라마는 원작에서 세자에게 이름을 받고 호위무사가 되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세 명의 남성으로 분산시킨다.

원작과 달리, 담이에게 연선이란 이름을 준 정지운(로운 분)은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담이의 목숨을 뺏으려 했던 정석조의 아들이다. 원작의 주인공인 호위무사 역시 비밀을 지닌 채 세자 이휘의 곁에 머문다. 왕실의 종친 지은군 이현(남윤수 분)은 조선판 '키다리 아저씨' 역할이다. 돋보이는 신인이었던 송중기, 유아인, 그리고 박보검을 '스타덤'에 올렸던 남장 여자 사극, 과연 이번에도 남장 여자 이휘를 지키는 신인 배우들에게 등용문이 될까.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히트작이 되었다. 성균관 유생이었다가, 내시이다가, 이제 세자가 된 남장 여성 이야기가 그 바톤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세자가 된 여성의 걸출한 활약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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