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방학 때 지방에 있는 친척 집에 놀러가면 서울에서 온 조카들을 대접하신다며 인심쓰듯 '극장'에 보내주셨다. 덕분에 그 시절 개봉한 007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로저 무어가 주인공인 작품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조카들에게 보여줄 만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당시만 해도 007은 방학을 맞이해 개봉되는 대표적인 '텐트폴' 액션 히어로물이었기에 폼나는 선물같은 영화였다. 

그렇게 청소년 시절의 히어로물 007을 오랜만에 봤다. 007로써 다니엘 크레이그의 퇴장 작품이라는 소식을 듣고서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각인된 007은 '로저 무어' 의 모습이라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007에 대해 굳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가장 007 답지 않은 외모로 가장 007스러웠다는 평가를 받았던 다니엘 크레이그가 퇴장한다니 새삼 궁금해졌다. 사실 다니엘 크레이그도 그렇지만 <1917>의 샘 맨더스 감독이 연출하는 007을 큰 화면에서 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007 노 타임 투 다이 ⓒ 유니버설 코리아

 
몇십 년 전 극장에서 마주했던 사자가 여전히 포효하는 유니버설 픽쳐스의 로고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시나 이스턴이 부르던 'for your eyes only'가 울려 퍼지던 몽환적인 뮤비같던 오프닝에 대한 기억을 빌리 아일리시의 'no time to die'가 소환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생존을 넘어 건재한 레전드였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등장한 문구,  다시 돌아오겠다는 제임스 본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문 부호가 남겨진다. 

미소 냉전 시대를 기반으로 하여 첩보전 소설인 이언 플래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007 시리즈 영화는 소련이라는 적대 국가 대신, 그에 버금가는 악의 축 '스펙터'라는 전세계적인 조직을 상대로 첩보 작전을 벌인다. 또한 정의의 대변자는 미국의 CIA가 아니라 영국 정보부, 그중에서도 살인면허를 받은 00으로 시작된 스파이들이다. 

세상이 변했다

<노 타임 투 다이>에서 M으로 분한 랄프 파인즈는 '회의'한다. 나노봇과 DNA 조작을 이용한 생물학적 신무기를 무작위적 대중을 향해 살포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인 면허를 앞세운 첩보전은 이제는 몸에 맞지 않은 옷과 같은 처지이다. 즉 여전히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거대한 악의 조직은 존재하지만 그들의 무기는 살인 면허를 지닌 스파이 007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국 정보부가 은밀하게 연구하고 있던 생물학적 신무기를 빼내 그걸로 007을 죽이려 했던 작전, 그러나 연구학자의 조작으로 정작 그 자리에 있던 적들을 압살하고 마는 장면이라던가, 그저 목을 조르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적의 목숨을 거두게 되는 미필적 고의의 상황을 빚어내는 생물학전의 세상에서 과연 007이라는 살인 면허를 가진 스파이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007 노 타임 투 다이

007 노 타임 투 다이 ⓒ 유니버설 코리아

 
그런 면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의 결심이 아니라도 007이라는 첩보원은 존재론적으로 '시대'와 엇물리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적과 맞부딪치는 상황에서 007의 존재는 여전히 신출귀몰하다.

스피디하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진행되는 액션신은 007의 여전함을 과시한다. 불에 타 수장되는 배에서 살아나는 장면이나 고전미 물씬 풍기는 애스턴 마틴을 비롯한 카 체이싱 신들, 그리고 스펙터의 기지에 홀로 남아 미션을 완수하기까지 007은 여전히 007이었다. 

이제 <노 타임 투 다이>를 통해 장렬히 퇴장하는 007과 함께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어울리는 첩보물로서의 과제를 물려 받게 되었다. 과연 다중을 상대로한 맹목적인 생물학적 범죄가 난무하는 세상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개인'은 해결사로 유효할까. 

제임스 본드는 어떤 캐릭터여야 할까? 

또한 그런 시대적 변화와 함께 007이란 스파이의 캐릭터적 특성 역시 과제로 남게 된다. 늘상 007 영화가 개봉을 앞두면 이른바 본드 걸의 존재가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더는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바람둥이와 같은 캐릭터가 환대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의 007은 순애보의 역사를 새로 써나갔다. 

별처럼 쏟아지는 미사일 아래 굳건하게 서있는 007, 늘 리버벌한 개인주의자였던 영국 정보부 요원 007이 숭고한 애국주의 대신, 지켜야 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모습은 그래서 더 007다웠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007 노 타임 투 다이 ⓒ 유니버설 코리아

 
매 시리즈마다 여성 편력 아닌 편력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007이 다시 돌아오기 위해선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남성 캐릭터에 대한 고심이 더해져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그의 부재를 채운 신입 007이 흑인여성이라는 사실은 신선하다. 다음에 돌아올 007이 여성이거나 흑인이면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변두리 출신의 사투리를 쓰는 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킹스맨>의 변주와 같은 방식도 있다. 물론 제임스 본드라는 '전통'을 지켜가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누가 다음 007이건 <노 타임 투 다이>를 통해 가능성을 엿봤다는 데 의미가 있겠다.

007의 마지막 연인이 된 스완(레아 세두 분) 역시 그저 사랑스런 여성을 넘어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총을 들 수 있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설정됐다.

어린 시절 만났던 로저 무어의 007은 그저 턱시도를 입은 '멋진 척'하는 남자였다.하지만 다시 본 007은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입혀진 새로운 모습이었다. <노 타임 투 다이> 네 편의 시리즈를 통해 새로운 007 배역을 탄생시킨 다니엘 크레이그에 대한 전적인 헌사에 다름없다. 스펙터도, 사핀도 이름만 무성할뿐 다니엘 크레이그의 '커튼콜'을 위한 그럴 듯한 소동극으로 자리매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007 노타임 투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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