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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윤의 근본 없는 이장 일기'는 귀농 3년차이자 함평군 대각리 오두마을의 최연소 이장으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27살 한대윤 시민기자의 특별한 귀농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용천사 호수 주변 꽃무릇이 흐무러져 있다.
▲ 용천사 꽃무릇 용천사 호수 주변 꽃무릇이 흐무러져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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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일, 오두마을에 내려 온 뒤로 만 3년이 지났다. 이제 막 3년 1개월 차지만 9월만큼은 4번을 겪었다. 처음 내려온 9월에는 처음 보는 것, 처음 먹는 것, 처음 체험하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9월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꽃무릇이다. 꽃무릇은 9월 중하순에 피는 꽃으로 붉은 꽃잎이 여러 갈래 하늘을 보며 자라는 꽃이다. 잎과 꽃이 동시기에 피지 않아 상사화(相思花)라고 부른다. 꽃무릇이 많이 피는 용천사에는 '스님을 사랑한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일화를 기록한 표지판도 있다. 

나는 꽃무릇을 함평에 내려오고 나서 처음 봤다. 꽃무릇은 우리나라 남부권에서 자라는 꽃이기 때문이다. 남부권 중에서도 영광의 불갑사와 함평의 용천사에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두 절이 대표적인 꽃무릇축제 관광지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내는 오두마을 바로 옆 마을에 용천사가 자리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함평군) 해보면' 전체에서 꽃무릇 축제날 '해보면민의 날' 행사를 한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올해와 작년에는 축제를 하지 않았지만 길가에 피어난 꽃무릇을 보면 항상 2018년 처음 갔었던 해보면민의 날 (용천사 꽃무릇 큰잔치)가 생각난다. 지역 축제를 처음 경험하면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 

면민들의 잔칫날, 꽃무릇 축제 
 
함평군 오두마을 앞 꽃무릇이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오두마을 앞 꽃무릇 함평군 오두마을 앞 꽃무릇이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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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축제 시기가 되면 해보면의 10개 법정 '리'에서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곤 한다. 면민의 날 행사이기 때문에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이다. 면민의 날 행사는 주민들 내부적으로 준비한 행사이기 때문에 주민 누가 오더라도 앉을 자리 먹을 음식은 준비되어 있다. 지역민들이 삼삼오오 준비를 해 둔 것이다.

꽃무릇 축제는 한국 자연백경에도 들어가는 터라 나름 인기가 있다고 느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행사는 흔히 지역민들이 소외되고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들었는데, 꽃무릇 축제는 가장 좋은 자리에 면민들을 위한 천막,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는 걸 보고 좋은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한 간이 장터 및 시설, 무대도 마련되어 있지만 주민들이 함께하는 축제이기에 더 오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면민의 날 행사에 온 어른들은 음식을 바삐 나르기도 하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이웃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먹고 놀고 즐기곤 했다.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이런 축제가 아니면 다른 마을 주민들과 인사 나눌 자리가 마땅히 없다. 품앗이를 하는 경우도 많지는 않고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 등의 행사에도 보통 참여하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형편이다. 때문에 주민들이 이런 축제 자리에 참여할 동기가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첫 면민의 날 행사에 오니 마땅히 할 게 없었다. 같이 점심을 먹고 음식 수발도 들고 주변에 아는 분들 인사를 드리고 나니 크게 할 일이 없어졌다. 이런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걸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 아이들이 나보다 훨씬 지루한 것 같았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부모님이 다른 마을 주민들과 인사를 나눌 때면 마땅히 할 게 없고, 탁 트인 공간에서 혼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놀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20대이면서 상투도 틀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주민들이 나를 '성인'으로 인정해 주시지만 '어른'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고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곤 했다. 그 때문인지 평소에 어르신들과도 함께 자리를 함께 하지만 아이들이 있으면 항상 그들을 챙기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같이 용천사 한 바퀴라도 산책할 양으로 일어섰다. 옆 마을 아이도 눈에 밟혀 같이 챙기기로 했고 그 아이의 친구까지 챙기기로 했다.

먼저 말 걸어주고 이끌어 주는 무리가 없었는지 처음보는 아이들도 금방 나를 따르곤 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늘어나다보니 산책길에 나선 아이들이 나를 빼고 6명이나 되었다. 우리 마을 아이들 3명, 옆 마을 아이 1명, 옆 마을 아이 친구 1명, 모두 처음 보는 서울 사는 아이 1명 이렇게 6명이었다.
 
해보면민의 날 용천사 주변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 용천사 구경 해보면민의 날 용천사 주변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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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는 아주 넓지도 좁지도 않아 산책하기가 좋다. 가운데 큰 호수를 끼고 있고 꽃무릇 축제 시기에는 여기저기 무리지어 핀 꽃들 덕분에 어디를 봐도 보기 좋은 풍경을 가졌다. 아이들과 같이 꽃무릇 구경도 하고 용천사도 한 바퀴 돌어보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아이들은 날씨가 좋아서인지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않았고 활 쏘는 시늉도 하고 물가에 손도 씻어보고 맨손으로 여치를 잡는 등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이들끼리 다툼이 날 때면 팔씨름을 시켜 중재하기도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나를 포함해 모두 즐거워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쉼 없이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그것을 마칠 때쯤 서울에 살던 아이가 '수제어묵'을 파는 가게에 가자고 했었다. 나는 아이들이 배고프다는 줄 알고 주머니를 더듬거렸지만 '아차' 싶었다.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뜻 밖에도 어묵을 사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 우리 할머니 가게니까 삼촌도 어묵 같이 먹어요." 갑작스럽게 서울아이의 할머니를 만나 뵙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손자랑 같이 놀아줘서 고맙다며 어묵을 하나 튀겨주셨다. 원래 파는 것에 1배 반은 되는 크기였다.

왜 서울 사는 아이가 여기 놀러 오게 되었을지 상상이 됐다. 할머니가 함평 분이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리라. 왠지 먼 곳까지 와서 부모님이랑 떨어져 있는데도 거리낌 없이 놀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나이가 한 자릿수밖에 되지 않더라도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보람차고 행복한 시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축제를 통해서 이게 농촌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시골농촌엔 청년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일은 청년들이 해야 잘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이 말엔 반만 동의한다. 내 생각은 "청년들도 있어야 잘 된다"이다.

지역엔 마을의 역사를 잘 알고 오랫동안 이 땅을 보존해 오신 어르신들이 계신다. 또한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추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신 중장년 어른들도 계신다. 또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뛰놀고 즐기면 그것으로 흡족한 일이다. 청년들은 새로운 일들을 해나고 또 물려받아나갈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이들과 더 가까운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더 잘 뛰놀 수 있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청년의 역할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이 오기 불편한 행사, 중장년층이 준비하지 않은 행사,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없는 행사, 청년들이 아무도 없는 행사. 이중 어떤 하나만 걸리더라도 그것은 충분하지 못한 지역 행사라고 생각한다. 나도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이런 축제에 함께해서 즐거웠고 이런 자리에 함께 올수 있게 해 준 마을 분들, 힘써준 면민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생겨났다.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쓸모가 있다 
 
오두마을 주민들이 용천사 호수앞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 용천사 호수 오두마을 주민들이 용천사 호수앞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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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이란 식물 뿌리엔 리코린이라는 마비독이 있다. 그래서인지, 관광객들이 쉬이 꽃을 꺾지 않는다. 이런 위험한 식물을 왜 절간에 많이 심었을까 궁금했는데 다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뿌리의 독을 섭취하면 위험하지만 뿌리독을 약으로도 사용가능하다고 들었다. 특히 절에 그리는 그림에 섞어 방부제 역할도 하고 독성 덕분에 들쥐나 해충들이 적다고 한다.

마을에 막 내려왔을 땐 나를 경계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아직도 싫어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에겐 내가 독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것, 모든 사람은 각자 쓸모가 있을 거란 것을 꽃무릇을 통해서, 꽃무릇 축제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무릇 축제를 하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사람이 오지 않아도 와도 꽃무릇은 핀다. 모든 일엔 상승과 하락, 성장과 노쇠함이 있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흐름은 순환한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온다고 봄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시 또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고 계절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꽃무릇 축제도 곧 다시 돌아오리라. 아직 꽃을 만개하지 못한 나도 이곳에서 더 활짝 피어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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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 오두마을에서 시골살이를 시작한 마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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