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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리는 <자수살롱>展은 조금 특별한 전시다. 2019년 <자수신세계>展으로 <자수공간> <자수잔치> 그리고 외전격인 <안녕! 바다 씨!>까지 네 번에 걸쳐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해 현재 2021년 <자수살롱>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살롱에 참여한 열 명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기자말]
아오키, 샤샤, 나오미. 아오키는 개, 샤샤는 고양이, 나오미는 개인지 고양이인지 필자는 모르는 정희기 작가의 '가족'이다. 샤샤는 얼굴에 혹이 생겼고, 결국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는 없었다. 가족 전체와 유대감이 강했던 아이였다. 아오키는 자연수명을 다하고 갔다.

죽어가고 있는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이 드디어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을 본다는 것은 아주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나오미는 올해 21년 7월 28일, 갑자기 죽었다. 꽃을 꺾어 묻힌 곳에 꽂아주었다. 포천 할아버지의 집 주변 들판에 코스모스가 피어있었다. 
 
<바라보다> 이후 생명의 이야기를 계속 해 오고 있다. <연결> 시리즈 작품들과 함께.
▲ 자수살롱 전시회 작품들과 함께 정희기 작가 <바라보다> 이후 생명의 이야기를 계속 해 오고 있다. <연결> 시리즈 작품들과 함께.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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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눈을 바라보고 쳐다보아야 

"2017년 당진의 아미미술관서 진행했던 개인전 시리즈가 <마주하다>였어요. 기억을 표현하는 일, 슬픔과 대면하는 작업이었어요. 죽은 대상들을 두고 떠올리고 추억하고 추모하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똑바로 두 눈을 쳐다볼 수 있어야지만 잘 보내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야지만 우리가 인생의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했었던 같아요."

정희기 작가를 만난 것은 도봉구, 방학천 2층 작업실에서였다. 오빠 민기가 열고 있는 작업실. 정희기 작가가 임시로 작업을 하고 있는 서울공간이었다. 민기 작가는 같은 섬유작업을 하고 있어, 공간은 희기에게도 자연스럽고 또 작업에 효율이 높은 공간이다.      

"당시에 손바느질을 많이 했었는데요. 오래 경험하신 분들은 더 잘 아시겠지만, 바느질하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져요. 저절로 감정이 치유되기도 하고... 일부러 천을 선택한 이유도 저를 치유하자는 것이었었고요. 딱딱한 돌 이런 소재가 아니고 부드러운 천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그런 질감 때문이라도, 이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도 그 안에서 치유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천으로 만든 어미 원숭이가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철사원숭이 엄마보다 붉은털원숭이의 애착 형성에 더 결정적이었다는 실험이 나온 건 1950년대였다. 희기의 엄마도 오빠와 더불어 이미 오래전부터 퀼트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희기에게 천은 삶의 굽이굽이마다 펼쳐지고 감싸온 또 다른 옷이요 이불이었다. 희기는 그동안 만나왔던 천 이야기를 백 개쯤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천일까? 유화도 아니고? 그 생각을 했었는데, 어릴 적부터 부드러운 천의 촉감을 좋아했어요. 별명을 붙인 베개도 있었는데, 손을 쑥 넣으면 편안해졌던 기억이 나요. 씨실 날실 직조해 이루는 게 천인데요. 결국 이야기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천은 시간이 가면서 헤지죠. 세탁을 해도 흔적이 묻어있는 느낌도 그렇고. 저는 약간 먼지 낀 소재를 찾아요. 드로잉에는 수채 색연필을 이용하는데, 또렷한 선이 아니라 약간 떨어져 숨 쉴 수 있는 그런 재료거든요. 천에서는 먹과 아크릴의 깊이감도 달라요."
 
정희기_파랑새와나눈대화_나무,거즈,실,인형솜,아크릴물감,오일스틱,못_60x18x6cm_2021
▲ 정희기 작, 파랑새와 나눈 대화 정희기_파랑새와나눈대화_나무,거즈,실,인형솜,아크릴물감,오일스틱,못_60x18x6cm_2021
ⓒ 정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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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태어나 천에 싸인다 

희기는 8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기쁠 희(喜) 터 기(基). 외과의였던 외할아버지가 직접 희기를 받아냈다. 보름쯤 세상에 나오기를 미루고 있는 아이였기에 그리 됐다. 엄마의 친구들이 내려왔고, 사촌언니는 계단에 앉아서 아기가 세상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친지들도 초조히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때도 깨끗하게 빨아낸 흰 천이 희기를 받아냈을 터였다. 

"천에 대한 기억이요? 1990년대 초반 저희 가족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었어요.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으로 민간인들의 공산국가 입국이 허락된 즈음이었다고 오빠 민기가 답해 주었다.) 93년인가 쿠데타가 일어났어요. 외신에선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벨리돔이라고 백악관 같은 데로 탱크가 출동을 하고요. 당시 저흰 로컬아파트서 살고 있었고, 주변에 한국인들은 저희뿐이었어요. 새벽4시에 덜덜 떨리는 손을 서로 잡고 구역을 빠져나가는데, 총이라도 맞을까, 저를 이불로 둘둘 감싸 주셨던 기억도 나고..."

아버지가 러시아에 간 건 역사학도로서였다. 북한에서 음악대를 다니다 소련 차이코프스키 음대로 유학을 갔던 둘째 큰할아버지 정추, 영화를 찍었던 첫째 큰할아버지 정준채 등이 어찌어찌 아버지의 유학을 연결한 듯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음악가 정근) 역시 그분들의 삶에 이어지고자 하는 시도로 유학을 했을 터였다. 땅에 나무가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그 뿌리가 물을 길어 올려 가지와 잎새를 먹이고, 잎새가 다시 양분을 만들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이들 가족의 연대기는 횡으로 종으로 손에 손을 잡는다. 

연결이 되죠, 동물과 인간이 공예와 예술이

"이번에 자수살롱에 내는 작품들은 나무와 관계가 있어요. 어린이는 긴 나무막대기를 들고 있어요. 세상과 소통하는 안테나처럼. 동물과 사람, 사람과 인간과의 공존! 서로 공존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큰 바탕의 이야기예요. 연결이라든지 순환이라든지... 그런 생각이 늘 있어요. 그 중심에서 가지가 뻗어요. <연결>이란 시리즈의 작업이죠."

희기의 작품들은 이제 개와 고양이를 넘었다. 산양과 파랑새, 소년과 소녀, 부엉이와 정령들의 '인형'들이 방에 가득이다. 그들은 모두 나무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정희기 작가는 무엇에 의탁하고 있을까? 그는 올해 3개월쯤 당진에 머물고 있다. 아미미술관서 전시와 레지던시를 하게 된 건 오빠와 연결돼 있다. 민기는 미대 졸업 후 겁도 없이(4.19탑에서 가장 가까웠던 집을 얻어) 엄마와 같이 갤러리를 열었다.

경영에는 소질이 없다는 걸 4년여 기간 동안 여실하게 느꼈지만, 경험과 여러 작가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연결로 남게 되었다. 숲을 가꾸셨던 할아버지가 그 땅을 마치 설치미술 하듯 구상하던 기억들이, 매일 일기를 쓰던 뒷모습이… 그런 기억들도 희기가 길을 걸을 때마다 희기를 받치는 땅이 된다. 희기의 전시회 때마다 작품을 본 이들도 다음에 그들의 공간에, 그들의 작업에 희기를 기억해준다. 임태희 디자인스튜디오와 을지다락 등과의 협업 전시도 그렇게 전개됐다. 
 
정희기 작가는 옷에 자신의 작품을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이동하는 작품 전시이기도 하고, 목소리를 널리 알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빠 민기의 작업실에서
▲ 자화상 같은 모습의 소녀 앞에서 정희기 작가 정희기 작가는 옷에 자신의 작품을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이동하는 작품 전시이기도 하고, 목소리를 널리 알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빠 민기의 작업실에서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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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편견 없이. 봐주셨으면 해요. 바느질을 연약한, 힘없는 장르로 보는 분들도 계시죠. 공예적 특징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힘을 덜 느끼시는 부분도 있고요. 저 스스로 편견 없이 해야지 해요. 우리가 예술의 장르를 되게 많이 구분지어 놨어요. 조심스럽고 어려운 말이지만, 제가 글에서 여기로 왔듯(그는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서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경력 몇 년, 미대 어디! 그런 생각 없이 작품을 보시면 풍만히 이야기가 다가올 거예요."  

[관련기사 : 천 위에 펼쳐진 무한한 세계... 이런 자수 보셨나요?]

태그:#정희기, #자수살롱, #오매갤러리, #당진아미갤러리, #섬유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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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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