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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리는 <자수살롱>展은 조금 특별한 전시다. 2019년 <자수신세계>展으로 <자수공간> <자수잔치> 그리고 외전격인 <안녕! 바다 씨!>까지 네 번에 걸쳐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해 현재 2021년 <자수살롱>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살롱에 참여한 열 명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기자말]
언어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건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같은 업계의 언어를 쓴다는 건 우리가 이미 동료라는 표식이었다. 그 계급의 언어를 알면 계층적 차이를 지울 수도 있었다. 이주자 연신에게는 불리한 지점이었다.

연신에게 도움이 된 것은 바느질을 하는 그 동네의 아줌씨들 할머니들, 그리고 가끔가다 젊은 여성들이었다. 퀼트샵이 연결해준 곳이 우리로 하면 마을회관이나 주민자치센터 같은 곳이었다. 쭈뼛쭈뼛한 동양의 젊은 새댁을 그들은 환대했다. 언어 이전에 서로는 통하는 게 있었다. 구획과 구분은 쉽게 지워졌다. 
 
액자 속 작품의 작가는 건축가 김동하다. 그로노블에서의 바느질문화와 모임을 나주에서도 공유하자는 것이 연신의 생각이다.
▲ 박연신 작가가 그의 작업공방 겸 카페 바실리에에서 나주의 풍경이 든 액자를 들고 있다. 액자 속 작품의 작가는 건축가 김동하다. 그로노블에서의 바느질문화와 모임을 나주에서도 공유하자는 것이 연신의 생각이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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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언어를 익혔던 프랑스의 자수 모임

도시계획을 공부했던 박연신 작가가 프랑스로 떠난 건 건축학을 공부한 남편이 유학을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주는 연신이 스스로 기획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처 준비할 틈이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학생비자는 방문비자로 바꿨다. 재정적 상황이 둘이 공부할 만큼 되지 못해서였다. 몸이 아팠기 때문에 연신은 그 중요한 초기에 언어를 배울 기회를 놓쳤다. 

"제가 처음 퀼트를 접한 건 광주서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접했는데 너무나 좋았죠. 프랑스 그로노블선 바느질 문화가 생활에 단단히 뿌리내린 느낌이었어요. 굉장히 실용적이었다고나 할까. 일상에서 자신들 옷을 고치고, 생활 소품을 만들고요. 그렇게 만든 '작품'들은 손주들 혹은 친구집에 갈 때 환영받는 선물이었어요. 십자수 해서 걸고, 예쁘게 장식만 하는 그런 문화가 아니었던 거죠. 차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떨면서, 저는 생존 불어를 배웠고요. 그런 바느질 문화를 여기에도 가져오고 싶었어요."

연신은 전라도 나주의 구도심에서 카페 겸 작업공방 바실리에를 열고 있다. 칸막이도 없이 툭 터진 덕수당 한약방 2층의 이 카페는 연신의 영업장이면서 작업장이다. 연신은 여기서 기막히게 맛있는 홍차를 내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기운이 도는 따뜻한 스콘을 구워낸다. 물론 간단한 요리도 만들어 낸다. 카페와 공방을 같이 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지만,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중요한 증표다.   

나주는 연신의 고향(같은 곳)이다.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이곳으로 이사해 왔다. 한약방을 하던 아버지의 영업장으로 처음 배정된 곳이 강진 옴천이었다. 완전한 '청정'지역. 군사 정권 시절엔 한약방도 지역을 정해 지정하는 게 나라에서 행하는 법에 따라야 했다. 궁벽한 곳이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부모는 광주로 이사를 한다.

부부는 슈퍼마켓을 차리고 함께 일한다. 지역을 옮기고도 제약이 풀릴 수 있었던 것은 이후 한참이 지나 지인의 도움을 받고나서였다. 광주에서는 안 되고 나주에서. 대대로 유서 깊고 주민들의 문화적 소양이 높은 이곳 나주-전주와 나주를 일러 전라도라 한다-로 이사를 온 것.
 
바실리에는 바느질 공동체의 모임 장소이자 지역 문화의 작은 허브이다.
▲ 박연신 작가의 작업공방 겸 카페 바실리에 파노라마 전경 바실리에는 바느질 공동체의 모임 장소이자 지역 문화의 작은 허브이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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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랐던 고향 나주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나주는 소경(小京)이라고 했어요. 한강처럼 영산강이 시내를 관통하고요. 한양도성하고 비슷한 나주읍성 석성이 있어요. 4대문이 있고 금성관 동헌에 향교까지 있는 도시죠. 영산포에 배가 들어오고, 너른 평야라 경제도 풍요롭고. 프랑스에 저희가 있던 곳이 낭시 그리고 그로노블이었는데, 그로노블은 알프스산맥 남쪽이라 지세가 우리나라와 비슷하죠. 문화적 자원도 많고."

연신은 결혼전에 광주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결혼 후엔 지역개발연구소와 도시재생 사업에도 깊숙이 참여했다. 전공과 무관치 않은 일이었다. 남편 김동하 건축가에게 나주읍성의 사대문과 여러 나주 풍경을 그리게 한 것도 연신이었다.

남편을 만난 계기는 고등학교 때 유네스코 내고장 순례대행진이었으니, 나주라는 땅은 연신이 성장의 자양을 얻은 곳이었다. 부부는 '렉서스'를 타고 떠나지 않고, '올리브나무'처럼 여기에 뿌리내렸다. 

"공방 이름 바실리에는 바늘과 실 그리고 리에, 프랑스어로 잇다라는 뜻이에요. 제가 하는 자수는 쥬흐모던이라고 프랑스의 전통적 자수기법이고요. 제가 2017년 프랑스서 돌아온 후 널리 알리고 함께 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주흐모던은 천의 올을 잘라 남은 올을 실로 감는 기법이에요. 그래서 공간이 드러나요. 그 뒤에 다시 배경천을 대 풍경을 보일 수도 있고요."

쥬흐모던은 그가 프랑스에서 프랑스 선생에게 배운 jour라는 프랑스 전통 바느질 기법. 그의 선생은 그걸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나무를 표현하던 사람이었다. 연신의 목표는 그 자수를 알리며 본인을 알리고, 이를 통해 여러 사람들이 나주를 기억하고 찾아오도록 만드는 일! 그게 바실리에를 운영하는 목표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 연신은 국가무형문화재 115호 정관채 염색장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쪽풀이 많은 나주가 이 땅에 선사한 선물이 쪽물염색이었다. 이것을 배운 전국 12명의 작가들과 함께한 전시 '숲을 이루다'는 연신이 작가로 삶의 방향을 튼 결정적 계기였다. 
 
나주의 전통 중 하나인 쪽염색에 쥬흐모던 기법으로 자수한 브로치 작품들. 박연신 작. 화목 연작들_쪽염색모시,린넨실,자개_5x5cm_2021
▲ 자수살롱 전시장에 걸린 박연신 작가의 작품들 나주의 전통 중 하나인 쪽염색에 쥬흐모던 기법으로 자수한 브로치 작품들. 박연신 작. 화목 연작들_쪽염색모시,린넨실,자개_5x5cm_2021
ⓒ 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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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자수를 한국에, 나주의 자수를 바깥에

"쥬흐모던 기법은 계속 응용하고 있어요. 퀼트하고도 결합하고요. 등작업도 주흐모던을 적용해봤죠. 자수살롱에 참여한 작품은 화목(華木) 시리즈예요. 자작나무인데, 빛이 나는 나무니까, 이 나무를 화목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해요. 나주서 쪽염색한 모시를 썼고, 프랑스서 가져온 린넨실 그리고 잎으로는 전통 자개를 붙였어요." 

연신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쥬흐모던과 니람, 당그레질 같은 단어가 그렇다. 그건 자수의 언어이고, 땅에 배인 인간들의 무늬 문화의 언어다. 나주에 와서 동점문, 서성문, 남고문, 북망문을 배웠고, 자수를 하면서 퀄트와 오간자와 패치워크를 익혔다. 카페와 공방의 새이름 바실과 리에라는 이름은 길냥이와 샴 고양이에게 주었다. 이름은 새로 나고 익숙해지고 길들여진다.

"나무를 하는 이유는 그게 편안해서죠. 나무는 가지를 어떤 곳으로 뻗든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잖아요. 손가는 대로 표현할 수 있어요. 제가 빠진 이유죠. 참 니람이라고 아세요? 쪽을 며칠 물에 담궈 쪽색소를 추출하여 구운 굴껍질 가루(석회)를 섞어 당그레질(젓기)을 해요. 그러면 쪽 색소는 소석회와 같이 남색의 쪽 침전물이 만들어져요.

침전물을 모아 시루에 헝겊을 깔고 침전물을 여과시키면 진흙처럼 니람 상태의 첨염료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난후 잿물과 발효를 해야지 쪽염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참 번거로운 일이지만 우리의 전통 방식이죠. 얼마전에 서울엔 프랑스에서 온 보자기 작가가 있었어요. 프랑스 사람은 우리 것을 배우고, 저는 우리 것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거죠. 새로운 걸 계속해보려고 하는 거고요."


[관련기사 : 천 위에 펼쳐진 무한한 세계... 이런 자수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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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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