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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커플
▲ 커플 아름다운 커플
ⓒ pixabay (상업적 무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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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낮 금정역. 10월이지만 조금은 더운 날씨였고, 난 금정역 개찰구를 통과해 4호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려던 중이었다. 계단 아래를 보니 스크린도어를 통해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고, 난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단을 두세 개씩 성큼성큼 내려갔다. 평소 같으면 열차를 타느라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열차 속으로 스며들어야 했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열차를 타려던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모습들이 보였고, 열차를 타는 데도 조금 시간이 걸리는 모습이었다.

내가 계단을 모두 내려갈 때까지 열차의 문과 스크린도어는 닫히지 않았고 계단을 모두 내려와서야 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을 부축하여 일으키는 한 젊은 남녀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넘어졌다 일어난 듯한 할아버지는 자신을 일으켜준 젊은 커플에게 열차를 놓칠까 얼른 타라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고 계셨다. 그러면서 열차에 오르는 커플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잊지 않고 건넸다.

상황을 유추해보면 할아버지께서 금정역에서 하차하시다가 아마 출입문 앞에서 넘어지셨고, 이렇게 넘어진 할아버지를 지하철을 타려던 한 커플이 부축하며 일으킨 것 같았다. 주말이라 열차를 타려던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이 열차를 타고, 내렸다. 열차를 타고, 내리던 많은 사람들은 그 커플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일이 아닌 양 넘어진 할아버지를 피해서 타고, 내렸다.

계단 위에서 바라본 내 시선으로는 그 모습이 지극히 이상하고, 아름답지 않게 보였다. 팔과 어깨를 부축받고 일어난 할아버지는 마스크 위로 고맙다는 눈인사를 커플에게 연신 보내셨고, 열차 문이 닫힐 때까지도 그 시선을 거두시지 않으셨다. 그 할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을 훔쳐본 덕분에 내 마음까지도 훈훈하게 느껴진 주말 오후였다.

인터넷 기사나 뉴스에서 보면 아름다운 기사들은 차고 넘쳐난다. 길을 가던 한 중년 남자가 갑자기 쓰러지자 그 앞을 지나던 한 남자가 심폐소생술로 숨을 거둘 뻔한 사람을 살려낸 기사, 위중한 환자를 싣고 가는 구급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도로 위 차들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내어주는 모습들과 같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보다 그냥 외면하고, 내게 피해가 없다면 방관하는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렇게 길을 가다 쓰러지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가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자신이 한 행동에 조금은 후회하는 마음이 생길까.

방관, 외면하는 모습들이 법을 어기는 행동이거나 범죄라는 잣대로 측정할 기준은 없다. 다만 사람들의 행동들을 모두 법으로, 규칙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도덕, 양심 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적어도 난 방관, 외면의 자세가 인간 본연의 의지나 욕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구태의연한 얘기이겠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사람은 선하게 태어난다고 믿는다. 바빠서, 귀찮아서, 몰라서 등과 같이 방관과 외면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핑계는 있을지언정 '왜'라는 의문을 갖고, 부끄럼조차 잊고 살 거라는 생각까지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다만 방관과 외면에도 자신의 마음속 양심의 소리에서 울리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행동이 외면과 방관보다 쉽다는 걸, 그리고 자신에게 당당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한다.

수년 전에 나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으로 주저앉아 고통으로 힘겨워하던 순간이었다. 지하철 안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지금과 같이 코로나 비상사태가 아니어서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구 하나 내게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았고, 결국 119 신고까지 내가 직접 하고 나서야 난 지하철 역사 내 벤치에 쓰러질 수 있었다.

아마 눈으로 확인은 못 했지만 오늘 지하철에서 넘어진 할아버지를 피해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난 다행히 쓰러져 신고를 한 위치가 지하철역이어서 구급대원들이 빨리 찾을 수 있었고,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따뜻한 뉴스나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훈훈해지다가도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들곤 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게 당연한 세상이면 이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뉴스나 기사가 되지 않을 텐데 이 가슴 훈훈한 이야기들은 현실보다는 매체를 통해 보는 게 아직까지는 익숙하다.

당장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일 같겠지만 사람 일이란 게 살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우리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생길 수도 있는 어려움을 생각해보고 조금은 주변에 관심을 갖고, 종종 행동하는 앞으로가 되면 지금 사는 세상보다는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오늘 난 지하철에서 한 커플에게 내 시선을 뺏겼다. 슬쩍 훔쳐보기도, 때로는 노골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면서 내 눈에는 따뜻한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그 커플이 하차할 때까지 몇 정거장을 내 머릿속 저장 위치에 고스란히 담아봤다. 금정역에서 봤던 젊은 커플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여 당분간은 그 모습을 두고두고 기억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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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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