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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8시 25분이면 어김없이 통일 동아리 아이들이 한데 모인다. 각자 맡은 도서 카트를 챙겨 가기 위해서다. 통일 관련 도서를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각 교실을 옮겨 다니며 책 읽기를 독려할 목적이다. 지난 8월 말부터 시작했으니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우리 학교에선 매일 20분간의 아침 독서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등교 직후인 8시 30분부터 학급별 조회가 시작되는 50분까지다. 아직도 밀린 숙제를 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이 많긴 하지만, 담임교사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시나브로 정착되는 모습이다. 

귀찮아서인지 아침에 읽을 책을 가방에 넣어 오는 아이가 많진 않다. 그렇다고 등교할 때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오는 경우도 드물다. 애먼 교과서를 책상 위에 덩그러니 펴놓는 아이가 태반인 이유다. 그나마 교과서라도 읽으면 다행이지만, 십중팔구는 책상 위에 쓰러지고 만다.

아침마다 읽을 책이 없어 쭈뼛거리는 아이들에게 책을 건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공교롭게도 통일 교육이라는 네 글자가 포개졌다. 잘만 활용하면 매일 아침 20분간 통일 교육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자발적 책 읽기만큼 효과적인 교육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통일 교육의 한계를 절감한 시간들
 
책이 도착하는 날마다 동아리 아이들은 함께 모여 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책이 도착하는 날마다 동아리 아이들은 함께 모여 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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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지난 1학기는 혼선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연간 통일 교육 계획을 나름 그럴듯하게 세웠으나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물론, 코로나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은 탓이 크다 해도, '플랜 B'를 고려하지 않은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잘못이었다. 

겁 없이 통일교육 연구중심학교 공모에 신청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휴전선 155마일을 아이들과 함께 걷는다거나 자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아이들에게 맡긴다는 건 이 와중에 너무 나간 계획이었다. 머지않아 코로나가 종식되리라는 헛된 바람에 허황한 계획만 쏟아낸 것이다. 

무엇보다 일회성 행사와 특정 교과가 전담하는 통일 교육의 한계를 절감한 시간이었다. 요즘 아이들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부터가 패착이었다. 그들에게 통일은 당위는커녕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단계를 넘어 '굳이 통일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말 맞히기 퀴즈'나 '통일 백일장', '북한 사진전' 등의 행사를 아이들은 식상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즈음에 늘 해왔던 거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상품에 눈이 멀어' 참여는 했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고 이구동성 말했다. 

학교마다 사회나 역사 교과가 담당하는 통일 교육의 관행도 성찰이 필요하다. 비단 통일 교육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만, 특정 교과의 '업무'로 규정되는 순간 형식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인성 교육은 도덕 교과, 환경 교육은 과학 교과, 이런 식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통일 교육은 범교과적 접근이 필요한 대표적인 영역이다. 

통일 교육이 사회나 역사 교과의 울타리를 넘어서려면 '남북통일'의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통일이 지닌 의미를 넓히지 않고서는 통일 교육은 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관행을 피하기 힘들다. 설령 남북통일이 종착역이라 할지라도 '중간 정차역'을 거치지 않고서는 가닿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통일'이란 단어를 부담스러워하는 까닭
 
매일 아침 도서 카트를 끌고 책 읽기를 독려하는 통일 동아리 아이들이 대견할 따름이다.
 매일 아침 도서 카트를 끌고 책 읽기를 독려하는 통일 동아리 아이들이 대견할 따름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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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어릴 적 목놓아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요즘 아이들에겐 생소한 노래다. '우리의 소원'이라는 말에 '통일'을 떠올리는 아이는, 장담하건대, 단 한 명도 없다. 통일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다양한 가치를 공유하면서 통일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아이들은 통일이라는 단어를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이런 걸 묻는다는 것 자체가 당혹스럽지만, 통일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보면 찬반이 엇비슷하게 나온다. 그나마 아직 찬성이 한두 명이라도 더 많다는 점에 위안 삼을 뿐이다. 뒤집힐 날이 머지않은 것 같지만 말이다. 

차라리 통일과 의미상 '사촌지간'인 평화와 공존, 생명 등을 앞세워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게 낫다. 통일이라는 단어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야 한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공존을 모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통일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통일 교육은 공존을 위한 평화 교육이며, 반전을 넘어 생명 교육이라는 걸 일깨워주어야 한다. '평화통일'이라는 명명도 평화로운 통일이라는 뜻이라기보다 평화가 곧 통일이라는 '동어 반복'임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과거 냉전 시대에나 어울리는 낡은 용어일지도 모른다. 

통일이 지닌 의미가 넓어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통일 교육은 일회성 행사나 교과 수업 시간에 한정되어서는 곤란하다. 학교생활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되, 무엇보다 지속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한 자극이 중요하다. 

통일 관련 책들을 모으다

그런 고민 끝에 시작한 게 '찾아가는 통일 도서관' 프로젝트다. 우선 도서 카트 석 대를 사무용품 업체로부터 임대하고 통일 관련 도서를 동네 서점의 협조를 얻어 구매했다. 학년의 교실이 두 개 층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카트 한 대만으로는 효율적인 운영이 불가능했다.

도서를 선정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당장 북한을 소개하는 책이 많지 않은 데다, 있어도 초등학생용이거나 논문 모음집 같은 전문 서적이어서 비치하기가 적절치 않았다. 서점에서조차 프로젝트에 대해선 십분 공감하면서도 선뜻 추천할 만한 책이 없다며 난감해했다.

북한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는 책은 죄다 그러모았고, 6.25 전쟁과 분단을 주제로 한 것도 빼놓지 않았다. 나아가 일제강점기를 포함해 현대사 관련 도서도 샀고, 통일교육원이 발간한 책들도 챙겼다. 부산 인디고 서원에서 간행한 비매품 책까지 통사정해서 구해 카트를 채웠다.

책마다 라벨을 붙이고 카트에 나눠 싣고 드디어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데면데면하던 아이들도 어느덧 매일 아침 카트를 끄는 친구들에게 고생한다는 말을 건넬 정도로 익숙해졌다. 책을 빌리는 수가 학급당 서너 명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동아리 아이들의 의욕만큼은 대단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여기서도 '편식'이 문제다. 아이들이 빌려 읽는 건 대개 웹툰을 엮어 만든 만화책이다. 아이들과 몇몇 동료 교사로부터 추천을 받아 산 건데, 앞다퉈 빌려 가는 통에 카트에 놓일 틈이 없다. 부러 찾아와 언제 빌려 볼 수 있느냐고 묻는 아이도 있다.

문제는 만화책만 찾는다는 점이다. 같은 날 산 책인데도, 만화책들은 모서리가 헤진 반면, 아예 펼쳐본 흔적이 없는 책도 여럿이다. 대개 두꺼운 데다 글자가 작고, 사진이나 그림이 적은 책들이다. 한 아이는 스마트폰을 몸의 일부로 여기는 영상 세대에게 만화책은 종이책에 대한 '수용 한계선'이라고 눙쳤다. 

10시간 수업보다 효과적인, 스스로 읽는 책 한 권
 
카트 석 대를 임대하여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통일 도서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만화책은 카트의 맨 아래에 비치하는데도 앞다퉈 빌려 가는 통에 놓일 틈이 없다.
 카트 석 대를 임대하여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통일 도서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만화책은 카트의 맨 아래에 비치하는데도 앞다퉈 빌려 가는 통에 놓일 틈이 없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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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독서 교육'이 아니라 '통일 교육'을 하고 있다는 걸 혼동해선 안 된다고 봐요."

만화책만 골라 읽는 건 막아야 한다는 나의 지적에 한 아이가 대뜸 이렇게 반박했다. 통일 교육에 도움이 된다면, 논문집이든 만화책이든 무슨 상관이냐는 거다. 나아가 만화책들을 독파하고 나면 카트 위 다른 책에도 손이 가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까지 덧붙였다. 

그의 말이 옳다. 조급한 성정 탓에, 실을 바늘허리에 맬 뻔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몇 년 치 성과물을 한꺼번에 얻으려는 욕심을 부린 셈이다. 매일 아침 교실에 불쑥 들어오는 카트를 낯설어하지 않고, 카트 위에 실린 책들을 궁금해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일이다. 

우연한 계기로 추진한 '찾아가는 통일 도서관' 프로젝트가 동아리 아이들의 열정과 헌신 덕에 나름 효과를 내고 있다. 섣부르지만, 좋은 책을 더 구비하고 아침 독서 시간이 활성화된다면 아이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건 시간 문제라 본다. 아무튼 10시간 수업을 듣는 것보다 스스로 꺼내 읽은 책 한 권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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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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