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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무슨 통일 타령이에요."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통일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줘야겠다고 말했더니, 한 동료 교사가 내게 짐짓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코로나가 언제 잦아들지도 모르는 데다 요즘 남북 관계도 험악하지 않으냐는 거다.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2018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어림없다고 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백두산에 올라 손을 맞잡은 당시에는 사실 통일 교육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땐 남북 화해를 소재로 한 TV 화면과 언론의 보도가 쏟아졌고, 그것이 곧 최선의 통일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교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놀라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선하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발표했다. 서명을 마친 두 정상이 포옹하고 있다.
▲ 남북 정상 "판문점 선언" 서명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발표했다. 서명을 마친 두 정상이 포옹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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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년여가 지난 지금,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속엔 통일이라는 단어는 없다. 이젠 불가능의 영역이라 치부한 채 일말의 기대도 없고, 설령 통일을 이룬다고 해서 득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이념 갈등을 비롯해 통일을 향한 힘겨운 과정을 굳이 겪어야 하느냐며 이대로가 더 낫다고 여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더더욱 놀라운 건, 북한에 대한 아이들의 맹목적인 증오다. 북한이라면 '무조건 싫다'는 아이가 적지 않다. 북한과 미국이 축구 경기를 벌이면 어디를 응원하겠느냐는 조금 유치한 질문에 미국을 편드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물어보나 마나였던 질문이다.

상대가 일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북한을 응원하는 아이들이 드물다. 그들에게 같은 핏줄이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공동체니 떠들어봐야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반문이 돌아올 뿐이다. 북한을 소 닭 보듯 하는 건 태반이고, 심지어 은연중에 적개심을 드러내는 아이도 있다. 통일의 필요성을 '당위'로 설득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20년 넘게 한국사를 가르쳐온 교사로서, 남북 분단의 현실과 통일에 대한 아이들의 무관심에 민망하고 참담했다.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타성에 젖은 학교 교육의 결과일 뿐, 그들을 탓할 순 없다. 사실상 교육과정에서 통일 교육은 찬밥 신세다. 교과서의 맨 뒤에 부록처럼 살짝 언급되어 있을 뿐더러, 시험에서조차 잘 다뤄지지 않는 단원이다.

아이들이 북한에 궁금한 건.... '쟤들도 몰래 담배 피울까?'

아이들과의 대화 도중 깨닫게 됐다. 통일을 목적지 삼은 교육은 '필패'라는 사실을. 기존의 '기-승-전-통일' 식의 교육 방식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교과서가 도리어 통일 교육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권력 세습과 열악한 경제 상황 등을 소개하고, 평화 통일과 공동 번영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내용이 전부다.

시나브로 호기심의 불씨조차 꺼져가고 있지만, 아이들이 북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건 정작 따로 있다. 북한의 TV에서도 쇼 프로그램을 하는지, 식사 메뉴는 주로 무엇인지, 학교 성적표에 점수와 등급은 어떻게 매기는지, 그들도 학벌과 서열로 줄을 세우는지, 나아가 북한의 또래 청소년들도 몰래 담배를 피우는지 등을 궁금해한다.

한번은 아이들에게 지금 북한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열 개만 적어보라고 했다. 그들이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정관념과 편견 등도 대강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내가 떠올린 열 가지와 대조해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날 테고, 통일 교육 방식을 설계하고 보완하는 데 보탬이 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이들은 열 칸 채우는 걸 의외로 힘들어했다. 대개 두세 칸은 비어 있고, 그나마 적혀 있는 단어는 친구 것을 보고 베꼈다고 할 만큼 거의 같았다.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백두산, 금강산, 공산당, 핵무기, 이렇게 일곱 단어는 빠지지 않았고, 평양과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개마고원 등의 지명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안타까운 건, 지명을 제외하곤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간첩, 6.25 전쟁, 아오지 탄광, 우상화, 가난, 옥수수죽, 탈북자, 빨갱이 등의 단어가 이어졌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북한은, 거칠게 말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반공 만화 영화 <똘이 장군>을 의무적으로 관람하게 했던 수십 년 전 당시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올해 주위로부터 생뚱맞다는 시선을 무릅쓰고 통일을 주제 삼아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자 마음을 먹은 것이다. 우선 통일에 관심을 보이는 몇몇 아이들과 동아리를 꾸린 뒤 그들이 궁금해하는 북한 사회에 관해 꾸준히 공부해나가기로 했다. 관련 영화도 보고, 책도 구해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함께 공부하며 알게 된 내용을 유튜브 등 SNS에 탑재하여 다른 친구들에게 공유할 계획도 세웠다. 공부하고 토론하는 건 팩트 체크 과정이고, 영상을 제작하고 홍보하는 건 수업 과정이다. 교실에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보다,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에게 SNS 등을 통해 설명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언택트 시대' 아닌가.

코로나의 확산 여부에 달려 있겠지만, 주말이나 여름방학 등을 활용해서 아이들과 함께 전쟁 유적지를 답사할 계획도 있다. 아울러, 분단으로 인해 남과 북에서 모두 잊히고 버려진 인물의 자취를 찾아보려 한다. 마음 같아서는 방학을 통째로 할애해 휴전선 155마일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그보다 분단의 현실을 또렷이 각인시키는 경험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한편, 아이들과 동료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 함께하는 마을 음악회를 여는 것도 고려 중이다. 몇 해 전 세월호 참사 1주기와 5주기 때 근린공원에서 음악회를 겸한 조촐한 추모 행사를 개최해본 경험이 있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진 않다. 물론,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완화 여부가 관건이다. 만약 한 데 모일 수 없다면, 비대면 랜선 음악회도 괜찮을 성싶다.

계획은 나름 치밀하게 세웠지만, 거창한 결과를 기대하진 않는다. 그저 심드렁한 아이들에게 찬반을 떠나 통일에 대한 관심만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만족한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가십거리일지언정 북한 이야기로 수다 떠는 걸 볼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예전엔 수업 때 통일을 주제로 찬반 토론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는데, 어느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됐다.

때마침 통일부로부터 통일 교육 연구 학교에 공모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사실 연구 학교는 분야와 상관없이 교사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다. 수업과 기존의 잡무도 버거운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떠안는 건 제 무덤을 파는 짓이다. 연구 학교에 지원되는 국고보조금은 집행 기준이 워낙 까다로워 교육은 뒷전이고 서류 챙기다가 날 샌다는 말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솔직히 계획을 실행하자면 돈이 필요했다. 아이들과 답사를 다니고 음악회를 개최하려면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직접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다지만, 완성하기까지는 시간과 비례해 돈이 든다. 하다못해 관련 도서와 영화 등 함께 공부할 자료조차 돈이 없으면 구할 수 없다.

내불통 프로젝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응모했는데, 신청한 학교가 적었던 탓인지 연구 학교로 지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제출한 대강의 운영 계획을 기준으로 심사했을 테니, 그대로 실행하면 될 일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예산이니만큼 헛되이 사용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 물론, 제대로 쓰였는지의 판단 기준은 통일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고양됐는지 여부다.

계획이 수립됐고 예산도 확보되었으니 함께할 아이들을 모으는 일이 급선무다. 숫자보다 관심과 열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 사람의 관심이 두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들의 호기심이 네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분위기를 확산시킬 생각이다. 동아리 이름은 이미 정했다. 내 마음속 블루오션, 통일. 줄여서 '내블통'.
 
아이들에게 '북한'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대개 부정적이다. 때마침 통일부 공모 통일교육연구학교에 신청해 선정됐다. 동아리 이름은 이미 정했다. 내 마음속 블루오션, 통일. 줄여서 ‘내블통’.
 아이들에게 "북한"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대개 부정적이다. 때마침 통일부 공모 통일교육연구학교에 신청해 선정됐다. 동아리 이름은 이미 정했다. 내 마음속 블루오션, 통일. 줄여서 ‘내블통’.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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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블루오션이라는 어색한 단어를 끼워 넣은 건, '통일되면 우리의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느냐'는 아이들의 삭막한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다. 한편으론, 백지상태에서 편견 없이 들여다보자는 뜻도 담겨 있다.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인 북한을 여행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담긴 표현이기도 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첫발을 떼었으니 나머지 절반만 채우면 된다. 앞으로 틈날 때마다 '내블통'의 활동을 이곳에 '이 와중에 통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할 작정이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지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통일을 이야기할 것이다.

올해 말 통일부에 연구 학교 결산 보고를 할 때, 앞으로 차곡차곡 쌓일 활동 일지를 함께 제출할 생각이다. '내블통' 모집 공고를 내야겠다. 소풍 전날 마냥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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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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