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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이 무척이나 높게 느껴지는 가을 아침이네요. 아니 정확히는 정확히 20년 전 당신과 내가 하나의 가족이 된 아주 의미 깊은 날입니다.
     
연애 때부터 너무나 소원했던 당신과의 결혼에 난 20년 전 오늘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답니다. 그렇게 결혼할 때만 해도 당신 눈에 눈물 날 일 만들지 않고,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게 만들어 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답니다.

하지만 산다는 게 모두 뜻대로 되지는 않더라고요. 가끔은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있었고, 의도치 않게 당신 눈에 눈물이 나게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은 20년간 순간이 늘 당신을 위한 진심이었고, 앞으로 더 오랫동안 그 마음은 변함이 없을 거라는 겁니다.

우리의 신혼여행보다 둘만의 첫 제주 여행이 생각납니다. 아마 첫 번째 결혼 기념 여행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학창 시절에, 회사에 다니면서 찾았던 제주 여행과는 무척 다른 모습으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여행의 즐거움이 느껴졌었어요. 당연히 당신과의 둘만의 여행이라 더 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난 운전을 못해 렌트하고도 초행인 당신이 운전하며 그 넓은 제주섬을 사흘간 여행했었죠. 그때만 해도 네비게이션이 있었던 시절이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 넓은 지도책을 들여다보며 여기저기를 둘러봤었죠. 지도책을 보며 제대로 안내를 못한 내 탓에 안 그래도 작은 차만 몰았던 당신에게 처음 운전했던 중형차가 더 낯설게 느껴졌었을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찾은 제주도였지만 단 둘이 갔던 제주도 여행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싶습니다. 사실 올해에도 결혼 20주년을 맞아 제주도 여행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입시생인 아들 생각에 발걸음이 무겁기도 했고, 코로나로 인해 아직까지는 자제해야 할 듯싶어서 잠깐 들었던 생각을 접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기념일을 마주하니 당장 당신과 떠나지 못했던 여행이 아쉽기만 하네요.

처음 나만 믿고 서울살이 하던 때에 많은 눈물을 흘린 당신 얘기를 나중에 듣고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랑해서 함께 한 당신이 그렇게 슬퍼했다는 생각에 그걸 눈치채지 못했던 내가 미련하게 느껴졌고, 그런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너무도 미안하고, 미안했습니다.

또 큰 아이 출산 때도 그렇습니다. 회사 일에 야근으로 잡혀 있던 날 정작 발은 동동 구르고, 마음은 당신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정작 당신의 출산에 내가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에 지금도 가슴 한편이 저려옵니다. 일이 뭐라고, 책임이 뭐라고 그 순간 아쉬운 소리를 못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내겐 일보다, 업무에 대한 책임감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신과 아이였음을 왜 몰랐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아이를 출산해 준 당신에게 너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고부간의 갈등, 이미 결혼 전 예견된 스토리였음을 잘 알았기에 늘 당신에게 더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은 마음 가득 있었지만 결국 어머니와의 갈등은 내가 키우고, 정작 당신이 그런 시어머니와 저 사이에서 더 마음 졸이고, 중재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것 잘 압니다.

처가에 가려고 할 때마다 시어머니에게 혼이 날까 늘 노심초사 얘기도 쉽게 꺼내지 못하던 당신을 보며 난 어머니에게 '어머니 당신은 누군가의 딸이 아니셨나요'라고 반문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만류에 함께 마음 졸이며 허락을 구하기 위한 타이밍만을 찾았었죠.

그렇게 어려워하던 시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누웠을 때도 힘은 들어 했지만 당신은 5년 세월 동안 어머니에게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것 너무도 잘 압니다. 어머니의 평소 편식도 문제였지만 항암으로 더 짧아진 입맛을 맞추려고 얼마나 고민을 하고, 요리를 내어놓았는지 잘 압니다.

짧게는 4주, 길게는 6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을 때마다 5일간 우리 집에 머물렀던 그 시간 당신은 시부모가 아닌 그냥 부모를 대하듯 진심이었음을 너무도 잘 압니다. 당신의 그 큰 사랑을 잘 알기에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영희씨, 우리 이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함께한 시간보다는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길 욕심내 봅니다. 내겐 여러 가지 소망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깝게는 올해 아들 입시가 모두 끝나면 둘만 함께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또 멀게는 40년쯤 더 당신과 오늘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건강하게 말입니다.

영희씨, 최근 2주간 당신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곁에서 잔소리는 하지만 마음은 정말 당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당신의 짜증과 잔소리에 마음 생채기를 입을 때도 있지만 내 큰 사랑으로 그 생채기는 금세 아물고 당신을 향한 나무를 하루하루 키워갑니다.

20년 동안 날 사랑해주고, 아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웃으며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결혼기념일 20주년 오늘 너무 축하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 함께 연재됩니다. 기사 속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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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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