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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내내 더위도 잊은 채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출판에 매달렸다. 지난 주말 마지막 OK 교정쇄를 출판사로 보내자 갑자기 몸과 마음이 텅 빈 듯 허탈했다. 그대로 집에 있기도 따분하고 그동안의 피로도 풀고자 평소 자주 갔던 풍기 온천을 머릿속에 담고 원주역으로 가니까 열차 시간이 빠듯했다. 이즈음은 열차표를 SNS로 끊으니까 곧장 플랫폼으로 나가는 도중에 승차권을 구입했다.

1번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2번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뿔싸! 순간 내 착각에 아찔했다.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자 열차 기관사가 그런 나를 보았는지 창을 열고 말했다.

"어르신! 철길을 바로 건너오면 위험하니까 지하도로 돌아서 건너오십시오."

나는 승차를 포기하려는데 그의 말을 듣고는 지하도로 통해 건너편 플랫폼까지 달려갔다. 마치 50년 전 학훈단 후보생 시절처럼 구보로.

이즈음 새로 문을 연 원주역 플랫폼은 KTX 열차용 고상(높은) 플랫폼과 이전 열차의 저상(낮은) 플랫폼이로 돼 있기에 그 길이가 무척 길었다. 반은 구보로, 반은 속보로 지하도를 통해 반대편 플랫폼에 이르러 열차에 오르자 그제야 나를 기다려 준 승무원이 출발 신호를 보냈다. 곧 열차가 출발했다.

나는 달리는 열차 좌석에 앉아 구보로 인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앉아 있는데 다른 승객에 대한 미안함, 열차 기관사와 승무원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하행을 상행으로 깜빡 착각한 나 자신에 대한 미움과 부끄러움 등이 엄습했다. 문득 '늙으면 죽어야 돼'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이 시대에 오래 사는 게 죄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후 매사에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나 스스로 다짐했다.
      
1950. 8. 18. 미8군 하사관 포로심문관(오른쪽)이 가장 나이 어른 북한 인민군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그의 이름은 김해심, 가운데 통역비서의 이름은 이수경이다).
 1950. 8. 18. 미8군 하사관 포로심문관(오른쪽)이 가장 나이 어른 북한 인민군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그의 이름은 김해심, 가운데 통역비서의 이름은 이수경이다).
ⓒ NARA/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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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한 작품에 평생을 바친 단테

무궁화열차를 탄지 1시간 남짓 만에 경북 풍기역에 도착, 역 앞 정류장에서 온천행 버스를 탔다. 10여 분 뒤 온천탕에 도착하여 벌거벗고 야외 탕으로 가서 몸을 뜨거운 물에 푹 담갔다. 내가 이 소백산 풍기온천을 좋아하고 자주 가는 것은 1시간 남짓한 적당한 열차여행, 소백산 기슭의 조용함과 산세의 수려함, 그리고 가장 으뜸은 야외 온천탕 속에서 벌거벗은 채 소백산 정상을 바라보는 상쾌한 즐거움 때문이다.

소백산 산줄기를 한참 바라보다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나 자신을 반추했다. 지난 가을, 내 책을 10여 권 내준 눈빛출판사로 재고를 문의하자 6년 전에 펴낸 장편소설 <약속> 초판은 아직도 100여 권이 남아 있다는 말에 큰 충격과 함께 속이 무척 상했다. 출판사 직원은 '그래도 선생님 작품 재고는 양호한 편'이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일평생 작품에만 매달려온 내 지난 70 평생 생애에 대한 결과가 너무나 초라한 것 같아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그때 문득 대학시절 '세계문학'을 강의하신 노희엽 교수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단테는 27세에 신곡을 집필하여 56세에 완성한 뒤 그해 눈을 감았다."
 
단테는 필생으로 그 작품을 쓴 뒤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였다. 최근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된 바다. 그는 이 작품을 '200회 이상이나 되풀이해서 읽고' 여러 차례 가필과 수정을 한 끝에 드디어 1년 후 완성, 발표했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크게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지난해 연말부터 새로이 집필에 들어가 올 여름에 아예 제목까지도 <전쟁과 사랑>으로 바꾼 다음 이 작품을 탈고했다. 그런 얘기를 들은 눈빛 이규상 대표가 개정판도 자기가 펴내겠다고 서슴없이 나서기에 그에게 다시 맡겠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 마을 내 집으로 찾아온 눈빛 이규상 대표(오른쪽)와 흙집 서재 '박도글방' 앞에서(2009. 9. 26.).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 마을 내 집으로 찾아온 눈빛 이규상 대표(오른쪽)와 흙집 서재 "박도글방" 앞에서(2009. 9. 26.).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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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나 출판사 대표나 미쳐 사는 당신들이 부럽소"
 

지난 여름, 이 얘기를 전해들은 전 이대부고 김영숙 교장선생님의 촌평이다.
 
"이 출판 불황에 6년 동안 초판도 다 나가지 않은 작품을 다시 개작한 작가나 그 작품을 다시 책으로 엮어주는 출판사도 미쳤다고 할까? 바보라 할까? 아무튼 한 가지 일에 미쳐서 사는 당신들이 부럽소."
 
이 작품은 내 어린 시절에 겪었던 6.25전쟁에 대한 기억을 담은 것이다. 또, 2004년 2월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성원으로 미국 문서기록관리청(NARA)에 가서 사진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한 어린 인민군 포로 사진을 본 게 집필 동기가 됐다.

그리하여 2013년 6월 24일부터 오마이뉴스에 <어떤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제1회 '오마니, 내레 꼭 살아서 돌아오갓시오'부터 매회 평균 1만여 이상 독자들의 열독이 이어졌고 그해 12월 13일 제99회로 연재를 마쳤다. '340만여 글자 한자 한자에도 정성을 다 바쳐 썼다'는 소감으로 마무리한 작품이다.

그리하여 2014년 2월 22일 문학 분야 우수 기여로 오마이뉴스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었다. 이를 눈빛출판사에서 '어떤'을 삭제한 뒤 <약속>이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2015년 2월 9일 펴낸 바 있다.

이번에 펴내는 <전쟁과 사랑>의 말미에 해설을 쓴 고명철 평론가는 "박도의 <전쟁과 사랑>은 '차원 높은' 전쟁소설로서 손색이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유산인 분단의 현실을 창조적으로 넘어 민족의 평화적 일상을 향한 통일 미래에 대한 소설적 실천을 보인다"고 평했다. 

또, 북한을 20여 차례 드나든 대북전문가이자 재미언론인 진천규 '통일TV' 대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서 70여 년 전에 시작된 6·25전쟁….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그 지긋지긋한 전쟁상태를, 이제는 끝장내야 하는 이유가 이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추천의 말을 붙였다.

두어 시간 소백산 온천물에 몸을 담근 뒤 열차를 타고 원주로 돌아오면서 지금 영원히 눈을 감으면 딱 알맞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실을 다 뽑은 누에처럼.

덧붙이는 글 | * 졸작 <전쟁과 사랑> 은 이즈음 제작 중으로 곧 출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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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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