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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부부 무덤 앞에서 묵념을 드리다.
 김대중 대통령 부부 무덤 앞에서 묵념을 드리다.
ⓒ 이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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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시어머니가 오래 살자니까 며느리가 방아 동티에 죽는 걸 본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사람이 오래 살게 되면 '별 망측한 꼴도 보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내가 오래 산 탓인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거의 매일 질병본부나 강원도청, 원주시청으로부터 안전안내 문자를 받고 있다.

그 문자 요지는 타 지역 방문 자제, 지인 만남 자제 등 코로나 예방을 위한 안전유의사항들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2년째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했는데, 이런 안전 유의사항이 거의 매일 반복되니까 이즈음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하다.

올해 초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 갔다가 종로 2가 지하도를 지나가는데 대부분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어 마치 전시를 방불케 했다. 지난 일요일 원주시내 중앙시장을 갔더니 마침 상가가 노는 날 탓에다가 방문 및 만남 자제 권고 때문인지 거리도, 상가도 한산한 게 활기를 잃고 있었다. 어디 원주만 그러하겠는가. 아마도 이즈음은 지구촌 곳곳이 대동소이할 것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길었다. 게다가 모두들 마음 놓고 피서 여행도 못한 처지라 더욱 힘든 여름이었을 것이다. 8월 18일은 김대중 대통령 12주기 기일로 온라인 평화 추도식으로 대체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명색이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상임고문으로 그냥 있기 송구스러워 국립현충원에 참배하기로 했다.

아침 옷장에서 춘추용 검은 정장을 찾아 입었는데 주머니에서 뜻밖에도 돈이 나왔다. 웬 떡이냐고 세어보니 삼만 원이었다. 분명 내 돈일 테지만 잊어버린,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라 꼭 횡재한 기분이었다. 열차 시간이 잘 맞지 않고, 교통여건 상 강남고속터미널이 편리할 것 같아 평소와는 달리 고속버스를 탔다.

하필이면 나는 이즈음은 올 가을에 나올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었다. 오가는 길에 차 내에서 보고자 교정지를 가방에 챙기고 갔다. 버스에 오른 뒤 40여 쪽을 교정보는 새 강남터미널에 도착, 지하철을 환승한 끝에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이르렀다. 평소 같으면 충분히 여유 있게 출발했다.

그런데 그날은 비가 질금질금 내린 탓으로 시내버스도, 고속버스도, 평소보다 늦기에 시간이 빠듯했다. 다행히 정문에서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고 오신 조순열 이사장님을 만나 편승한 덕에 다행히 제 시간에 닿을 수 있었다. 
  
고인과의 만남
 고인과의 만남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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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타개에 기여한 분실

평생 정당에 가입해 본 적도 없고,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않았던 백면서생인 내가 뒤늦게 생뚱맞은 기념사업회 상임고문직을 수락하게 된 것은 그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초 남북정상회담을 이루었고 평화통일의 기초를 다졌기 때문이다. 6.15 공동선언문을 읽어 보면 한 자 뺄 수도 없을 만큼 우리가 나이가야 할 금자탑이다. 나도 눈과 귀가 있는데 왜 한 인물의 공과를 모르겠는가?

묘역 참배를 마치자 상주인 김홍걸 의원이 나에게 멀리서 왔다고 점심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손을 잡았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밥을 같이 먹으면서 사제 간 정담을 나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서울에서 이런저런 일을 보면서 지인도 만났을 것인데 때가 때인 만큼, 그리고 남은 교정 일을 부지런히 할 욕심으로 곧장 청량리역으로 가서 원주행 열차에 올랐다.

객차 내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오전에 못다 본 교정쇄를 보려고 돋보기안경을 찾는데 주머니도 가방도 두세 번을 뒤졌으나 끝내 보이지 않았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지하철 어딘가에서 빠트린 것 같았다. 칠칠치 못한 나 자신에 미워지다가 아마도 정신 건강상 좀 쉬라는 계시로 좋게 해석하면서 평소처럼 열차 차창 밖 초록의 산하를 마냥 즐겼다.

원주에 도착한 후 곧장 상지대 앞 단골 안경가게로 갔다. 그 가게는 10여 년째 단골로 2~3년 마다 돋보기안경을 갈았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반갑게 맞는 안경사에게 그날 일들을 대강 얘기했다. 아마도 안경사 밥 굶지 않으라고 잊어버린 듯하다고 말하자 그는 박장대소했다.

운수 좋은 날

그는 고객관리 파일을 열더니 그새 3년이 됐다고 말했다. 나도 안경 알에 흠도 생긴 듯하여 갈려고 벼라던 참이라 잃어버린 아쉬움을 달랬다. 적당히 잃어버리거나 새것으로 바꿔줘야 안경가게도 운영이 되고 이 나라 경제도 돌아갈 것 아닌가. 아무튼 이즈음 사람의 통행이 줄어들자 모두들 아우성이다. 거리마다 건물마다 빈 가게요, 임대 광고 딱지가 지천으로 붙어 있다.

시력 측정 후 얼마냐고 묻자 안경사는 7만3000원인데 7만 원만 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찻간에서 그날 하루를 결산하자 4만 원이 손해였다. 그래도 반가워할 고인과 만나고 보고 싶었던 사람과 만나 맛있는 점심을 나누고 건강하게 무사귀가하였으니 이만하면 '운수 좋은 날'이 아닌가.

그저 예사로운 일상의 삶이 그리운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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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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