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인 박서준의 드라마 데뷔작은 <드림하이2>였다. <드림하이2>는 김수현과 수지 등 신예스타들을 대거 배출하며 인기리에 종영한 <드림하이>의 후속작으로 강소라와 2AM의 정진운, 티아라의 지연, GOT7의 JB, 시스타의 효린 등이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방영기간 내내 한 자리 수 시청률에 그치며 전편의 인기를 이어받지 못했다.

<드림하이2>에서 그룹 이든의 보컬 시우를 연기한 박서준은 이후 <킬미,힐미>,<그녀는 예뻤다>,<쌈,마이웨이>,<이태원 클라쓰> 등에 차례로 출연하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 중 한 명이 됐다. <드림하이2>의 조연배우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에서 앞 다투어 캐스팅을 원하고 <캡틴마블>의 속편격인 <더 마블스>에도 출연이 예정됐을 정도의 대형스타로 성장한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캐스팅 당시 그리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 못했던 신예 배우가 시간이 지난 후 대스타로 성장해 상대역으로 나왔던 배우보다 훨씬 잘 나가는 스타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잘 나가는 스타배우였던 빌리 크리스탈과 신인급에 불과했던 맥 라이언이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기점으로 인지도가 뒤집힌 사례가 있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90년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지금은 어느덧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됐지만 90년대 맥 라이언은 전 세계가 사랑하던 '로맨틱 코미디의 아이콘'이었다. 80년대 초반부터 조, 단역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맥 라이언은 1986년 <탑 건>에서 구즈(안소니 에드워즈 분)의 아내 역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이너스페이스>, <죽음의 카운트다운> 등에 출연했던 맥 라이언은 1989년 자신의 인생을 바꾼 운명 같은 작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만났다.

당시 롭 라이너 감독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남자 주인공 빌리 크리스탈과 호흡을 맞출 여자 주인공으로 좀 더 유명한 여성 배우를 원했다. 하지만 샐리 역에 큰 매력을 느낀 맥 라이언은 라이너 감독에게 끈질긴 구애를 보낸 끝에 샐리 역을 따냈고 라이너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이 환상적인 호흡을 과시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북미에서만 9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이는 비중이 작았던 <탑 건>을 제외하면 맥 라이언의 역대 3번째 흥행작이다. 맥 라이언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스타덤에 올랐지만 <볼케이노>, <도어즈>, <키스의 전주곡> 등 후속작들의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맥 라이언은 1993년 톰 행크스와 호흡을 맞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통해 세계적으로 2억27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리고 '로코퀸' 맥 라이언의 전성시대는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맥 라이언은 마이클 볼튼의 노래로 더 유명한 <남자가 사랑할 때>, 국내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은 <프렌치 키스>, 니콜라스 케이지와 호흡을 맞춘 <시티 오브 엔젤>, 톰 행크스와의 재회로 화제가 된 <유브 갓 메일>을 차례로 흥행시켰다. 특히 국내에서는 <프렌치 키스>의 흥행과 함께 맥 라이언의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면서 국내 화장품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해 미 토크쇼에서 한국을 무시하는(정확히는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고 이는 곧 맥 라이언의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라이언은 현지에서도 비슷한 시기 전성기가 빠르게 저물었고 2015년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타카>를 끝으로 활동이 뜸하다.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조디 포스터가 여전히 톱배우의 이미지를 지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맥 라이언의 빠른 몰락은 아쉬운 면이 많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을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이후 맥 라이언(왼쪽)은 9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이후 맥 라이언(왼쪽)은 9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풀리지 않는 많은 질문 중 하나는 '과연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성친구의 존재는 필요해 보이지만 '남녀는 7살만 되도 같은 자리에 앉지 말라' 했는데 과연 남녀가 사심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남녀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해리(빌리 크리스탈 분)는 남자는 여자를 보면 성적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에 절대로 여자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샐리(맥 라이언 분)는 친구의 남자친구인 해리가 자기에게 수작을 거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해리와 샐리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계속 마주치게 되고 해리가 이혼을 당하고 샐리 역시 파혼을 당해 공통의 관심사가 생겼을 때 비로소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이 알게 된지 무려 10년이 지난 후였다.

10년 만에 간신히 친구가 됐지만 해리와 샐리는 누구보다 마음이 잘 맞았다. 밤새도록 통화하며 서로의 이성고민을 털어 놓기도 하고 연말 파티를 함께 가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잠자리에서 남녀가 느끼는 흥분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샐리가 식당에서 흥분하는 연기를 선보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그리고 샐리의 명연기에 감동(?)한 옆 테이블 손님은 샐리와 같은 음식을 주문한다(옆 테이블 손님 역의 배우는 바로 롭 라이너 감독의 어머니다).

해리와 샐리는 친구 커플의 결혼식 날 크게 다투며 친구 사이마저 멀어진다. 하지만 해리는 12년 동안 깨닫지 못했던 감정을 깨달으며 샐리 혼자 외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송년 파티에 찾아가 샐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샌드위치를 시키는데 한 시간씩 걸리는 당신을, 날 볼 때 미친 놈 보듯 인상 쓰는 당신을, 헤어진 후 내 옷에 배어 있는 향수의 주인인 당신을, 잠들기 전까지 얘기할 수 있는 당신을 사랑해."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역시 영화 전반을 타고 흐르는 재즈풍의 감미로운 음악이다. 이 영화의 음악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어 스프레이>로 유명한 마크 샤이먼과 젊은 재즈 뮤지션 해리 코닉 주니어가 함께 참여해 만들었다. 특히 해리 코닉 주니어는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을 자신이 직접 불러 앨범을 발표했는데 엔딩곡으로 쓰인 <It Had to Be You>는 영화의 인기와 함께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로코물에 도전했던 <스타워즈> 레아 공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마리를 보며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를 떠올리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마리를 보며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를 떠올리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197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4 – 새로운 희망>이 개봉했을 때 대중들은 의아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해야 할 SF대작에 이름 모를 신예급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됐기 때문이다. 특히 레아 공주 역의 캐리 피셔는 1975년 <바람둥이 미용사>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였던 사실상의 '초짜 신인'이었다. 하지만 <스타워즈4-새로운 희망>은 북미에서만 4억6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레아 공주 이미지가 강했던 캐리 피셔의 배우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여러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배우 생활을 이어가던 피셔는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샐리의 절친 마리를 연기했다. 미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SF대작의 주인공이 신인급 배우가 주연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 '친구A' 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지만 피셔는 샐리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 마리 역을 무난하게 소화하며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머리스타일도, 말투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아마 마리가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라고 눈치 챈 관객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후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활동을 이어가던 피셔는 2015년 <스타워즈 7 : 새로운 포스>에서 저항군의 총사령관 레아 역으로 컴백했다. 하지만 피셔는 2016년 12월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흔히 코미디에 기반을 둔 로맨스물에서는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이 서로 눈이 맞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도 해리의 친구 제스와 샐리의 친구 마리가 서로를 소개해 주러 나간 자리에서 눈이 맞아 살림까지 차린다. 해리의 유쾌한 친구 제스를 연기한 브루노 커비는 <대부2>, <버디>, <굿모닝 베트남>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지난 2006년 만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맥 라이언 빌리 크리스탈 캐리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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