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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는 곳에 언론이 있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코로나19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확진자 수로 대표되는 방역과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백신은 가장 큰 국민적 관심사기도 했죠. 언론이 코로나19 대응을 책임지는 정부에 대해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감시해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특히 백신 보도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주제보다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 기사를 써야 합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 보도가 백신 접종 계획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결과로 이어질 경우, 백신 접종률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언론은 독감 백신 접종 당시 인과관계가 없는 사망자까지 모조리 '백신 접종 후 사망'으로 포함시켜서 공포를 조장하는가 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화이자·모더나 백신보다 한참 질이 떨어지는 것처럼 묘사해 백신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습니다.

한동안 정부의 백신 접종 계획을 비판하는 기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지난 6월에 1500만명에 대한 1차접종을 마치며 목표를 초과달성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차 대유행이 진정되지 않고, 모더나 백신의 수급 문제가 발생하면서 다시금 요즘 은어로 '억까'(억지로 까기) 기사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률이 낮고 수급이 불안한 것은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고,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한다거나, 백신 접종 전략을 정파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든가, 통계를 뒤틀어서 상황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보도 행태입니다.

백신접종률 향상에 도움되지 않는 기사들 
 
머니투데이의 10일자 지면 기사 <백신 보이콧 하는 2030>. 9일에 동일한 내용으로 온라인판에서는 <오늘부터 '백켓팅' 시작인데… 백신 보이콧 하는 2030>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머니투데이의 10일자 지면 기사 <백신 보이콧 하는 2030>. 9일에 동일한 내용으로 온라인판에서는 <오늘부터 "백켓팅" 시작인데… 백신 보이콧 하는 2030>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 머니투데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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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백켓팅' 시작인데… 백신 보이콧 하는 2030> (머니투데이 8/9)
<"치명률 0%라는데 불안한 백신 맞아야 하나요?"…18~49세 예약 안한다> (매일경제 8/12)


일부 누리꾼들은 "종종 언론이 백신 접종 안 되라고 굿을 하는 것 같다"고 지적합니다.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들 때문입니다.

먼저 머니투데이의 기사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2030세대 일부는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을 보이는 사례가 나오는 것과 접종 후 돌파 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꼽는다." 그리고 백신 인센티브와 선택권이 없는 것도 백신을 거부하는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돌파감염은 애초에 백신을 접종 안하는 근거가 될 수도 없고, 인센티브와 선택권이 없는 것은 2030이 아닌 세대들도 매한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사의 큰 문제는 몇몇 사람의 발언만 있을 뿐 2030이 백신을 보이콧하는 경향성이 나타난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젊은층에서 백신 접종의 동기를 부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코멘트만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이 기사는 18~49세 예약이 시작되기 전에 쓰인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기사는 18~49세 백신 예약률이 저조한 이유를 분석한 기사입니다. 그런데 일단 '저조한 것'이 사실인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10부제를 통한 예약률은 첫째 날 59.4%, 둘째날 51.0%, 셋째 날 49.6%이었고, 이는 표면적으로는 예약률 80%를 넘어간 50대나 60~74세에 비해서는 낮아보입니다. 

문제는 현재까지 18~49세에겐 고작 하루의 예약 시간만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다른 연령대의 첫날 예약률을 찾아봤습니다. 53~54세는 첫날 예약률 53.9%(다음날 낮12시 기준), 50~52세는 64%(다음날 낮12시 기준)였습니다. 60~64세는 18.6%, 65~69세는 21%, 70~74세는 11.5%였습니다. 18~49세 예약률이 특별히 낮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기대보다 저조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대가 높았을 수 있죠. 하지만 젊은층 백신 접종률은 외국도 낮은 편입니다. 실제로 기사에서는 예약 10부제에 대한 안내 부족과 여름휴가철이라는 변수까지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치명률 0%라는데 불안한 백신 맞아야 하나요?"…18~49세 예약 안한다>. 이런 제목의 기사가 백신 접종률 향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뒤늦게 아스트라제네카가 아깝다는 <조선일보>
 
8월 13일 조선일보 1면 <델타 퍼지는데… 백신이 버려지고 있다> 기사
 8월 13일 조선일보 1면 <델타 퍼지는데… 백신이 버려지고 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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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퍼지는데… 백신이 버려지고 있다> (조선일보, 8/13)

'희귀 혈전' 논란으로 50세 이상만 접종하도록 원칙이 변경된 아스트라제네카 잔여백신이, 잔여백신을 접종할 사람이 없어서 폐기되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입니다. 50대 이상은 이미 접종 간격이 더 짧은 mRNA 백신을 예약했으므로, 아스트라제네카를 굳이 접종할 이유가 없는 상황. 당연히 아스트라제네카 잔여백신이 남아돌 수밖에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필요한 지적입니다. 백신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백신이 폐기되는 일은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요. 그런데 과거 <조선일보>를 생각해보면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신문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지금과는 판이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백신 접종 초창기, 아스트라제네카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정부의 초창기 백신 접종 전략의 주 백신으로서 정치적인 공격을 받았고, 안전성 논란도 언론과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제기됐죠. 5월 '잔여백신 접종 돌풍' 이전까지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낮은 백신 신뢰도가 접종률을 떨어질까 우려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조선일보>는 <독일서 '찬밥 신세' 아스트라 백신, 교사·군인·노숙자에 먼저 맞힌다>(2/25), <"젊은층엔 아스트라 백신 부작용이 코로나보다 더 위험">(4/9), <태권도 전 챔피언 AZ 맞은 후 다리 절단, 붓더니 다리 폭발>(5/9) 등 노골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깎아내렸습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2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연령 제한에 결정에 대해 "그때 심리했던 전문가들이 대부분 질병관리청이 (아스트라제네카를 공격하는) 언론에 너무 시달려서, 그냥 50대 이상으로 결정한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질병관리청은 13일 잔여백신 접종에 한해,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연령을 30세 이상으로 수정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얀센(30세 이상 접종) 같은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아스트라제네카만 50세 이상에게만 접종하도록 강제해서 폐기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백신이 남아돌고 폐기되는 사태에, 과연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들의 책임은 없는 걸까요?

언제는 모더나 백신 필요하다 그러더니...
 
한국일보의 11일 보도 <잘못 꿴 백신 전략 첫 단추... "애초 화이자에 전력 쏟았어야 했다"> 캡처
 한국일보의 11일 보도 <잘못 꿴 백신 전략 첫 단추... "애초 화이자에 전력 쏟았어야 했다"> 캡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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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꿴 백신 전략 첫 단추... "애초 화이자에 전력 쏟았어야 했다">(한국일보, 8/11)

모더나의 수급 불안은 기자로서, 또 한 명의 시민으로서 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 그럼에도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습니다. 제목으로 뽑힌 내용이 어떤 전문가의 말인지 살펴봤지만, "화이자에 전력을 쏟아야 했다"라고 말한 전문가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국일보가 임의로 뽑은 핵심 문장인거죠.

그간 꽤 많은 전문가들과 만나고 전화통화를 해봤지만, 누구도 한 회사의 백신에 전력을 쏟으라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엄청난 위험 부담을 지닌 일이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한국이 아스트라제네카 중심으로 접종 전략을 짠 것이, 결과적으로는 백신 접종에 차질을 빚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도입을 계획할 단계까지만 해도, 아스트라제네카는 3상 임상시험이 제일 빠르고, 가격이 싸며, 한국에서 위탁 생산까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의 미국 3상 임상시험이 늦어지고, '희귀 혈전' 논란이 일어나면서 일이 꼬였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다양한 플랫폼 전략'이 백신의 안정적 수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 백신 수급 상황은 더 처참했을 겁니다. 모더나를 포기하고 화이자에 집중한다고 해서, 더 많은 백신을 확보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이전에 한국일보는 <화이자·모더나 없는 한국 … 판단착오로 '백신 절벽' 부딪혔다>(4.16) 라는 기사를 통해 모더나 백신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한 적도 있습니다. 결국 모더나 수급 불안에 대한 결과론적인 지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기사들은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고, 백신 수급에 관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주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불안감만 키울 뿐입니다.

백신 보도는 달라야 한다

감염병보도준칙의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는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무엇보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보도해야 한다."

조회수 지상주의와 자극적이고 강렬한 헤드라인의 유혹에서 가장 벗어나야 할 보도 영역이라면, 바로 코로나19와 백신 보도일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더 올바르고 안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책무' 중 하나라면, 언론이 적어도 코로나19와 백신 보도에서만큼은 더 강하고 이목을 끄는 '억지 비판'의 관성을 탈피했으면 합니다. 일단 저부터 더 노력하겠습니다. 

태그:#언론보도, #백신, #백신접종,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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