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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던 이인제 후보 선거홍보 포스터 (자료사진)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던 이인제 후보 선거홍보 포스터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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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21일 신한국당은 대통령 후보로 이회창 대표를 선출했다. 당시 대선후보 경선은 이인제, 이한동, 김덕룡, 최병렬, 이수성 등의 후보가 2위 자리를 놓고 1%포인트 안팎의 초박빙 대결을 벌였다. 어차피 이회창 후보가 1위를 하더라도 과반 득표를 못 할 것으로 예상되자, 결선투표 진출을 위한 2위 경쟁이 치열했다. 피 말리는 2위 싸움의 승자는 이인제 후보였다. 결선투표에서 이인제 후보는 40%가 넘는 득표율로 선전했지만,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렇게 1997년 대선은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맞대결로 펼쳐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50일 뒤인 9월 13일 이인제 후보가 신한국당을 탈당하더니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인제 후보의 탈당과 대선 출마는 1997년 대선판을 크게 뒤흔들었다.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회창 후보가 강세를 보였던 영남권 표심이 이인제 후보로 인해 분산되면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게 된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에 이인제 후보가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셈이다.

5년 뒤인 2002년 이인제 후보는 두 번째 '경선 불복' 논란에 휩싸였다. 그해 3~4월 민주당 국민경선에 출마했던 이 후보는 대세론을 등에 업고도 '노풍'(노무현 바람)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그는 2002년 대선을 코앞에 둔 12월 1일 탈당을 발표하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돕겠다고 나섰다. '제2차 경선 불복' 시비에 대해서는 "내가 (대선후보로) 출마를 안 하지 않느냐. 어떤 비판을 받더라도 다 감안해 가겠다"고 일축했다. 이렇게 이인제 후보는 '경선 불복의 아이콘'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른바 '이인제 방지법'이 제정된 것은 2005년 8월 4일이다. 당내 경선 불복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57조의 2(당내 경선의 실시) 조항이 신설됐다. 정당이 당내 경선(여론조사 경선 포함)을 실시하는 경우 후보자로 선출되지 아니한 자는 (해당 선거의 본선)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2년 대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최종 후보가 되지 못한 사람은 무소속이나 다른 정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사실 '경선 불복 금지법'이 아니더라도 당내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독자 출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도전이다. '경선 불복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는 유권자들에게 환심을 사기 어렵고, 거대 양당 구도 하에서 제3후보는 본선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 정치 정당사는 '불복의 역사'였다.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 사례보다 불복한 사례가 더 많다.

1992년 대선 당시에도 민자당 경선에서 김영삼 후보와 경쟁하던 이종찬 후보가 경선 이틀 전 일방적으로 '경선 포기'를 선언하고 탈당한 뒤, 정주영 후보의 국민당에 합류했다. 2002년 민주당 대선에서는 최악의 불복 사태가 벌어졌다. 동교동계가 지지율이 떨어진 노무현 후보의 중도 사퇴 압박에 이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단일화를 종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가 성사됐지만, 정 후보는 대선 전날 노 후보 지지를 일방적으로 철회했다.
 
이낙연(왼쪽부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박용진,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앞두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이낙연(왼쪽부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박용진,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앞두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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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을 앞두고 한창 경선이 진행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내에 '불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재명·이낙연 두 대선주자의 네거티브 공방이 결국 '경선 불복'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낙연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인 설훈 의원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종 후보가 된다면 원팀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경선 불복이냐'라는 질문에 설훈 의원은 아니라고 펄쩍 뛰면서도 여전히 혀끝은 날카롭다.

또 다른 대선주자인 김두관 의원의 말대로 만약 이 지사가 최종 후보가 되면 반대하는 유권자를 설득하는 게 원팀 정신이다. 그런데도 설훈 의원은 설득할 자신이 없다는, 이낙연 후보를 지지하지만 이재명 후보가 최종 후보가 되면 지지를 못 하겠다는 '32%'를 내세운다.

'경선 불복'은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탈당 후 독자 출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당시 손학규 후보를 꺾고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는 논란 끝에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안 후보가 단일화 결과에 승복해 문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는지를 놓고는 여전히 논란이다.

대선후보 TV 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온 11일 밤, 이재명 지사는 페이스북에 "정치인의 숙명"에 관한 글을 올렸다. 그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은 온전히 제 몫"이라며 "상대 후보 지지자 일부가 끝까지 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도저히 저를 지지하라 설득하지 못하겠다는 타 후보 측 말씀,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만큼 더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다음날인 12일 오전, 이낙연 전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제 사전에 불복은 없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고 강조하면서 "나는 나의 승리를 위해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으로 심정적인 '경선 불복'까지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경선 결과에 실망해 돌아서는 것을 막는 것은 오로지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의 역량에 달렸다. 그래서 정치는 법을 넘어서는 것이다.

태그:#이재명, #설훈, #경선불복, #더불어민주당경선,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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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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