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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밥 먹으러 갔다 올게."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가 열렸듯 수현씨 가정에도 '뉴노멀'이 생겼다. 가족의 일원을 제외한 식문화가 생긴 것. 외식할 때도, 집밥을 먹을 때도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식탁 옆엔 두 개의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다. 액젓이 들어간 김치와 그렇지 않은 김치, 익숙한 라면 봉지와 어딘가 낯선 라면이 구분되어 있다. 한 지붕 두 살림이다.

작년 1월,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수현씨는 비건을 선언했다. 가족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너  얼마나 가나 보자" 하며 농담하는 아빠, "아 그래?"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엄마,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무관심한 동생. 왜 그런 걸 하냐는 그들의 질문에 "동물과 환경을 위해서 하는 거야"라는 간단한 답변만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갔다. 수현씨는 내 친구다. 

가족과 밥 먹는 시간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족 중에서 특히 엄마는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현씨를 혼자 두고 외식하러 나가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가끔은 그도 외로운 마음이 들 때면 가족이 식사할 때 자신의 음식을 따로 차려 앉는다. 아빠는 "그냥 같이 먹으면 되지 왜 사서 고생을 하냐" 하고 애꿎은 농담을 던진다.

고기와의 '즐거운' 결별 선언
 
직접 만든 비건 음식
▲ 청양고추 두부 덮밥 직접 만든 비건 음식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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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씨가 비건이 되기로 한 건 유튜브에서 본 단편영화 <더 허드>(The Hard)때문이었다. 유제품에 숨겨진 인간의 동물 착취와 폭행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 이상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작년부터 비건이 각종 미디어와 서적에 자주 등장하던 터라 비건이 동물성 식품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켜 여러 권의 책을 구매했다.

비건을 지향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동물권 보호, 환경 보호 그리고 건강. 수현씨는 동물권 보호를 위해 시작한 비건이지만 지금은 복합적인 이유로 비건 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비건을 정의했다.

비건이라고 하면 고기와의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치믈리에'라 불릴 정도로 치킨을 좋아했던 수현씨도 비건이 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웬걸. 그동안 동물권에 관한 글과 영상을 자주 접한 영향인지 치킨이 치킨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맛있던 삼겹살도, 갈비도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았다. 

육식을 끊은 후 다음 타깃은 해산물, 달걀, 유제품이었다. 한 번에 끊는 건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해산물, 달걀, 유제품을 식물성 식품으로 하나둘씩 대체하기로 했다. 채식주의자 유형으로 말하면 페스코에서 락토-오보, 락토-오보에서 비건으로 단계를 높여간 것이다. 수현씨는 "시중에 대체 음식이 많이 나와 있어 빠른 시일 내 비건이 될 수 있었다"며 "음식을 신경 쓰다 보니 오히려 식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사람들 속 '걱정 더하기 걱정'
 
친구와 함께 간 비건 카페
▲ 비건 케이크 친구와 함께 간 비건 카페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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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씨가 고기를 끊는 것보다 더 걱정했던 건 따로 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우리가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첫 질문은 "뭐 먹을래?" 아닌가. 그만큼 식사는 만남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자 중요한 자리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식사를 같이 하지 않거나 친구에게 비건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들이 이해해 줄까?" 

먼저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건 선언과 함께 간략한 설명도 덧붙였다. 다행히 비건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이 높아진 터라 친구도 어느 정도 비건에 대해 알고 있었고 오히려 비건을 실천하는 수현씨를 지지해주었다. 

대신 음식점 선정은 수현씨 몫이었다. 매번 비건 음식이 있는 음식점 리스트를 찾아 제시했다. 혹여나 비건 음식이 맛없다는 편견을 가질까 노심초사하며 가장 맛있는 비건 음식점을 열심히 엄선했다.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건 아니었다.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이번에만 먹으면 안 돼?"라고 물었을 땐 정말 난감했다. 비건이 아닌 시절을 회상하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가슴 한 켠 억울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나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을 고려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비건은 고기를 '못' 먹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함께 먹기 '불편한' 대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차라리 한약을 먹는다고 하는 게 더 편할 것 같다고 수현씨는 말했다.

여행할 땐 또 어떨까. 그 지역의 특색이 물씬 느껴지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고민에 빠진다. "나는 그거 못 먹어"라며 분위기를 깨고 싶진 않기에 잠자코 따르기로 한다. 수현씨도 누구보다 여행을 즐기고 싶다. 

불완전해도 괜찮아
 
친구와 함께 간 비건 식당
▲ 비건 피자 친구와 함께 간 비건 식당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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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생활을 완벽하게 하고 싶은데...'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치 못할 상황이라는 게 있다. 회식과 같은 단체 모임 그리고 성분 표시가 없는 식당. 떡국을 시켰는데 고기 육수에 떡이 담겨 나오면 수현씨는 수만 가지 고민에 빠진다. '내가 시켰으니 어쩔 수 없지..' 우연치 않게 고기를 먹게 되면 죄책감을 느꼈다. 반복되는 실수에 점점 지쳐갔다. 

'이게 의미가 있나' 하는 심리적 박탈감이나 허탈감이 예고치 않게 찾아온다. 온라인상에서 '자기들도 고기 먹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동물 보호한답시고 난리냐', '위선자 행세하지 마라' 등 비난하는 댓글도 눈에 띈다. "비건인데 살은 왜 안 빠져?", "비건은 하면서 왜 일회용 컵 사용해?"라며 의도치 않게 마음에 비수를 꽂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환경을 위해 잘못한 행동은 수현씨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비건을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어느 날, 책 <아무튼, 비건>을 통해 완벽한 비건 생활보다 지속 가능한 비건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 너무 몰아가지 말자'고 다짐했다. 경우에 따라 락토-오보 또는 페스코까지 허용하자는 수현씨만의 기준을 세웠다. 유연한 비건이 되는 대신 비건의 목적을 스스로 분명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그만 관심이 주는 기쁨

주변 사람들에게 비건을 권해본 적은 없다. 괜한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반대로 먼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느낀다. "이 제품은 비건이야?", "비건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하는데..." 작은 관심 하나도 내심 기쁘다. 

이젠 '비건'이라는 문구만 봐도 수현씨를 떠올린다. 밥을 먹을 땐 "이 식당은 너 먹을 거 있어?", 선물을 줄 땐 "이거 비건 제품인지 확인하고 산 거야!", 비건 상품이 출시하면 "이거 새로 나왔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수현씨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수현씨가 비건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음식을 먹지 못한 아쉬움보다 환경을 돕는다는 기쁨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수현씨는 "모두가 비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만은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 하나씩은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끊을 수 없는 치킨의 유혹을 끊지 못하겠다면 비건이 아니어도 좋다. 즐거움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환경을 지키려는 이들을 깊이 한 번 생각해보는 것. 그것부터가 출발이다. 

"세상과 환경을 사랑하는 '당신만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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