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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추출 후 약 99.8%의 커피박이 남겨진다.
 에스프레소 추출 후 약 99.8%의 커피박이 남겨진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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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현대인에게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여러 기능을 하고 있다. 바쁜 생활 속 커피 한 잔은 잠깐의 여유를 선사하며, 때로는 사람들과 만남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카공족', '카페맘'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카페에서 일상을 지내는 게 당연해졌고 심지어 유명한 카페를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생겨났다. '커피의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실제로 어느 정도일까? 성인 한 명이 1년간 소비하는 커피양은 세계 평균보다 3배 높은 328잔. 2015년 이후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페 수 또한 마찬가지다. 2012년 4만 2458개에서 2018년 8만 3445개로 6년 만에 약 2배 증가했으며, 2019년 한국의 카페 시장 규모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약 5조 4000억 원)를 차지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속에서도 커피전문점은 오히려 늘어났고,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RTD(바로 마실 수 있게 포장된) 커피, 홈카페, 무인 카페 등의 형태로 커피 소비는 계속되었다.
      
점심 식사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우리에게 남기는 건 즐거움 말고 또 있다. 커피를 추출한 후 남겨진 커피박(粕, 커피 찌꺼기)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들어가는 원두 15g 중 14.97g, 그러니까 99.8%가 커피박이 된다.

이 커피박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만큼 중요하다. 땅에 버려진 커피박이 메테인(CH4)이라는 온실가스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메테인은 이산화탄소지수 34로 이산화탄소의 34배에 육박하는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커피박을 매립 및 소각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커피박 1톤당 338kg. 자동차 1만 1000여 대가 뿜어내는 매연의 양과 맞먹는 수준이다. 2019년 14만 9038톤의 커피박이 배출되었다. 2012년과 비교할 때 약 37% 상승한 규모로 커피박의 양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산화탄소뿐만이 아니다. 커피박은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종량제 봉투에 담은 뒤 매립·소각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세금이 들어간다. 2019년 발생한 커피박 기준, 커피박 종량제 봉투 가격만 41억 원이 들었다. 추가로 커피박 매립에 약 22억 원, 소각하는 데 약 14억 원이 들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커피박을 매립할 땅도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쓰레기 매립지가 2025년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군다나 매립지가 있는 인천시는 2026년부터 서울과 경기 지역의 쓰레기 매립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전했다. 버려지는 커피박은 점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커피박은 좋은 퇴비가 된다
 
안성퇴비영농조합법인 박문재 대표
 안성퇴비영농조합법인 박문재 대표
ⓒ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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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지 못하는 커피박. 그렇다면 '커피 매출 부동의 1위' 스타벅스 커피박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스타벅스는 커피박을 비료 공장에 무상 제공하고 그렇게 탄생한 커피박 퇴비를 농가로 보내고 있다. 커피박이 친환경 퇴비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한 스타벅스가 2015년부터 커피박 친환경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일각에선 커피박 재자원화를 위한 활발한 연구를 진행했고 곧이어 커피박은 친환경 퇴비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커피박은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질소, 탄소 등이 풍부하고 중금속 성분이 없어 퇴비로 적합하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의 실험 결과, 커피박은 항균력으로 토양병을 예방하고, 식물병 해충을 억제하며, 작물 생육을 촉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박을 받은 대한다업 농가는 "커피박 퇴비가 유기질 함량이 높아서 적은 양의 퇴비로도 많은 소출을 낼 수 있었어요. 당시 차 판매가 저하되던 시기라 걱정이 많았었는데 다행이었죠"라며 커피박 퇴비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커피박은 퇴비 냄새를 잡는 데도 효과적이다. 스타벅스로부터 받은 커피박으로 퇴비를 제조하고 있는 안성퇴비영농조합법인 박문재 대표는 "역한 냄새가 한결 부드러워졌어요. 일반 퇴비는 냄새 때문에 민원이 심했는데 커피박 퇴비를 쓰고 나서는 확실히 민원이 줄었어요"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6월 경북도보건환경연구원은 "커피박에 유용 미생물을 배양해 보니 악취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천연 퇴비로 인정받았음에도 여전히 많은 양의 커피박이 재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문재 대표는 커피박이 일반폐기물로 분류된 점을 꼽았다.

"일반폐기물로 분류돼서 일반 수거차로 운반할 수 없어요. 폐기물 수거업체를 통해 수거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해요." 

커피박은 생활 폐기물로 분류되어 허가받은 폐기물 차량으로만 수거할 수 있다. 2018년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어 동·식물성 잔재물에 포함되긴 했으나 여전히 자유로운 수거 체계가 확립되지 못해 재활용하는 데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커피박의 수거가 자유로워지려면 순환 자원으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상황이 어렵다. 

커피박이 퇴비가 되기까지 멀고도 험난한 여정 
 
커피박 퇴비 제조과정을 설명하는 박문재 대표
 커피박 퇴비 제조과정을 설명하는 박문재 대표
ⓒ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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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박을 쓰려면 폐기물 관리 허가를 받아야 해요. 그럼 폐기물 관련 서류도 써야 하고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따로 점검도 받아야 해요."

힘든 점은 수거뿐만이 아니다. 커피박 퇴비를 만들기 위해선 '폐기물 처리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퇴비 성분 함량표에 커피박을 넣으려면 폐기물 관련 사업계획서, 수집·운반 계획서 등 복잡한 서류 과정을 통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허가받은 후 퇴비 공장은 폐기물 업체로 분류되기 때문에 '폐기물 처리 적합성'에 관한 점검과 정기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좋은 퇴비'가 될 자격이 있는 커피박이 퇴비가 되는 데까지의 여정은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커피박 비료를 만든다고 해서 공장 매출의 변화가 있지는 않아요. 커피박이 들어가도 퇴비 가격은 동일하거든요. 이외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박을 무상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커피박 무게당 운반비를 저희가 지불해요. 그럼 스타벅스는 운반비만큼 커피박을 구매해주죠. 커피박을 사용해서 생기는 추가 수익은 결국 제로인 거예요."

박문재 대표는 커피박을 사용해서 얻는 경제적인 이득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유기물이 풍부하고 냄새가 덜한 퇴비를 만들어 뿌듯하고, 무엇보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타벅스가 수거하는 어려움을 덜어 주어서 고맙기도 하다"며 친환경 사업에 힘쓰는 기업이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전했다.

스타벅스 이외에도 다양한 기업 및 기관에서 커피박 재자원화를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대제철은 2018년부터 한국생산성본부, 환경재단과 함께 '커피박 재자원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씨유(CU)는 지난 7월 업사이클링해 만든 커피박 데크를 점포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커피큐브, 탐킨, 회사트래닛 등 커피박을 재활용하는 스타트업도 대거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주도하에 이뤄지는 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 동작구, 성동구 등 일부 지역구에서 커피박 재활용을 시작했으나 여전히 지방자치단체 수준으로 머물고 있다. 영국과 스위스처럼 정부의 주도적인 시스템 운영을 통해 커피박을 재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태그:#커피박, #커피박퇴비, #커피찌꺼기, #퇴비, #환경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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