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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나의 파견 동기이자 함께 쉬고 있는 직장동료를 만났다. 그와 나누던 대화를 떠올려보다가 불현듯 우리가 나누는 대화 속 '말'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인에게 '힘내' '다 지나갈 거야' 등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실제로 그 말들은 크게 좌절했거나 역경에 부딪힌 사람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 가장 마음의 울림을 크게 받았던 메시지가 있다며 알려주었다. 어느 후배는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작은 선물인 기프티콘과 함께 단 한 줄의 메시지였단다.

"선배님은 제가 아는 보건교사 중에 단연 최고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날라온 메시지, '선배님은 단연 최고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날라온 메시지, "선배님은 단연 최고입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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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온도 차이

이 메시지를 회상하면서 문득 '말의 온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반드시 따뜻하고 온화한 말들만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비슷한 어감의 말일지라도 누가, 어떤 단어, 어떤 맥락 속에서 말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의 마음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얼어붙게도 하는 것 같다.

나의 일화에서 보자면 그랬다. 내가 들었던 문장은 비슷한 말인 듯 하지만 나에게 전혀 다른 감정과 생각 또는 결과를 불러왔다. 

"참 욕심도 많아."
"열정이 과다해."


약간의 표현의 차이는 있다. 어느 누군가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나를 지칭하여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들로 인하여 크게 상처를 받기도 했고 벅찬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늘 도전을 감행하는 편이었다. 그 도전에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이 바로 '욕심도 참 많다'는 말이었다. 상대방이 그 말을 어떤 의도로 한 것인지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리한 도전을 멈추기를 바란다' 혹은 '참 유별나게 산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꼭 해보고자 했던 일이었는데, 그 말 한마디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며 지레 포기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열정'이라는 단어는 왠지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오죽하면 난 나를 스스로 열정적이라 소개하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열정'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

내용만 보아도 '열정'이 '욕심'보다는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 '열정 과다'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맥락이 아주 중요하다. 예전에 나에게 여러가지 업무를 가르쳐주셨던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나와 같이 일하면서 느낀 점을 당시 나의 상사에게 그렇게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열정 과다'라는 말을 나에게 전해주는 상사를 보면서 난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그 말을 해주신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동일한 사람에게 행하는 말이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고 맥락이 다를 경우, 누군가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상반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사뭇 신기하다.

말이 주는 파장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언행일치' 즉 내 마음에 확고하게 새겨지지 않는 피상적인 말들, 인사치레의 말들은 애써서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경험해보니 누군가와의 친분의 깊이를 떠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의 울림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나는 인간관계에서 그것을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한다.

몇 달 전, 직장에서 우연히 만나서 점심을 사준 선배가 했던 말 한마디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다.

"내가 좀 툭툭한 선배라서, 후배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보는 건 잘 못 해. 자기는 엄청 꼼꼼한 성격이지?"  
 
나는 그 선배에 대한 고정관념과 불편한 마음으로 선배를 대하는 것이 어려웠고 쉽게 다가가지 못했었다.
 나는 그 선배에 대한 고정관념과 불편한 마음으로 선배를 대하는 것이 어려웠고 쉽게 다가가지 못했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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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랐다. 내가 그 선배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어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을 알고 있었나 싶었다. 게다가 한때는 나에게 그냥 툭 내뱉는 선배의 말에 혼자 오해를 하거나 의기소침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말 한마디로 인하여 꽤 긴 시간 내가 선배에게 갖고 있던 일부 고정관념과 불편한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그 한마디의 말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던 내 마음을 따뜻하게, 그리고 나에게 늘 차가워 보였던 그 선배를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한 선배로 다시 보게끔 해주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항상 따뜻한 말만을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차가운 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 역시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여 마음의 울림을 주는 말도 잘 하고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글도 수시로 쓴다. 반면 유독 비판적 자아가 높은 편이고 예민한 성격이기에, 냉철한 조언이나 강력한 주장도 잘 펼치며 비판적인 글도 자주 쓴다.

그렇다. 사람들이 하는 말의 온도는 수시로 따뜻하거나 차갑거나 미지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상황에 맞는 차가운 말이라 할지언정, 그 말의 파장으로 생기는 온도는 궁극적으로 따뜻할 것인지 늘 새겨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만약 내가 했던 차가운 말들이 선의를 목적으로 타인을 아프게 했다면 반성과 용서를 구한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에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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