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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역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효원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수도권 지역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효원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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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어보니 기말고사의 결과도 중간고사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성적의 극단적인 양극화. 정규 분포 곡선으로 나타낸다면, 점수를 나타내는 가로축과 평행선을 그리게 될 듯하다. 일반적인 정규 분포라면 평균 점수 주변이 볼록한 게 정상이다.

이번 기말고사는 출제 과정에서부터 신경이 곤두섰다. 성취 기준에 충실하되 최대한 쉬우면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 문항을 개발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사실 이 둘은 '동그란 네모'처럼 모순된 조건이다. 문항의 난이도와 변별력은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주는 게 필요하다. 더러 반마다 '답안지만 필요한'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의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답안지만 필요한' 아이란, 시험지가 배부되기도 전에 이미 찍고 엎드려 자는 경우를 말한다.

특별하달 게 없는 방법이지만, 일단 문항 수를 늘리고 배점을 낮췄다. 삼척동자도 알 만한 쉬운 내용을 위주로 출제하되, 상위권의 변별을 위해 이른바 '킬러 문항'을 중간에 몇 개 꽂아놓았다. 수능 시험의 국어 영역이나 수학 영역과 유사한 출제 방식이다.

상대평가 방식이 지닌 근본적 한계

문제의 '질'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성취 기준에 맞춘다고는 해도 시험을 통해 역사의식과 비판적 사고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하기엔 적잖이 민망하다. 솔직히 동점자를 최소화하며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줄 세우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담이지만, 이는 상대평가 방식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다. 겹치지 않도록 한 줄로 세우려면 누군가는 틀려야 하고, 그러자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캐묻거나 곳곳에 함정을 파두어야 한다. 수능 한국사는 매번 1등급인데, 내신성적은 채 3등급도 안 되는 아이들이 허다하다.

더욱이 기말고사는 100% OMR 카드를 사용하는 선다형 방식이다. 다른 교과는 몰라도, 역사 시험만큼은 교육 목표를 고려할 때 서술형이 제격이지만, 자칫 공정성 논란이 빚어질 수 있어 피하게 된다. 부분 점수에 대한 채점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OMR 카드 리더가 채점하는 선다형 방식은 신뢰해도, 교사가 점수를 매기는 서술형 시험엔 심심찮게 문제를 제기한다. 채점 과정에서 교사의 주관이 개입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보다 수능을 더 신뢰하는 심리와 흡사하다고나 할까.

대신 중간고사를 100% 서술형으로 출제한다. 드문드문 단답형 문항도 끼워 넣곤 하는데, 이는 백지 답안지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아이들이 체감하는 단답형과 서술형 문항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서다. 하긴 어떻게 해도 한 반에 10% 남짓은 백지 답안지다.

100% 선다형 시험에서 0점이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한 번호로 긋든, 지그재그로 찍든 몇 문제는 걸리게 돼 있다. 다섯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니, 정답을 맞힐 확률은 20%인 셈이다. 아이들은 누군가 20점 미만이라면 0점과 마찬가지라면서 차라리 찍으라고 비웃는다.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낳다

심사숙고해 시험 출제를 했건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커녕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0점과 다를 바 없다는 20점 미만 학생이 네 명 중 한 명꼴이나 됐다. 반대로 90점 이상의 고득점자도 스물네 명 한 반에 대여섯은 되니, 그다지 어려웠다고 할 순 없다.

더욱 놀라운 건, 점수 분포상 가운데인 50~60점대가 반마다 고작 서너 명뿐이라는 점이다. 양극단인 20~30점대와 80~90점대가 많고 중간이 텅 비어있는 기형적인 형태다. 비율로 치면, 백지 답안지가 많았던 중간고사 때보다 되레 양극화가 더 심해진 양상이다.

반성하건대, 100% 서술형과 선다형 방식의 차이로 본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선다형에 익숙한 데다 글쓰기에 서툴러 서술형 시험을 지레 포기한 것일 뿐이라는 판단은 틀렸다. 그게 아니라, 아이들도 선선히 인정하듯, 그냥 공부를 손에서 놔버린 것이다.

중위권의 붕괴가 뼈아프다. 중간고사 때 평균 언저리에 있던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하위권으로 주저앉은 모양새다. 상위권이던 아이가 중위권으로 내려앉은 경우는 드물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져, 교실에선 그들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처지가 됐다.

교실에서 중위권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수업의 붕괴로 귀결된다. 교사가 수업을 준비할 때 기준으로 삼는 이들이 중위권이다. 그들의 학업 수준에 맞춰 내용을 편집하고 적절한 단어를 고른다. 그들은 수업 중 모둠활동을 할 때도 상위권과 하위권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그들이 사라진다는 건 교사가 수업 중 방향타를 잃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수준을 상위권에 맞추면 하위권이 쓰러지고, 하위권에 맞추자니 상위권의 쏟아지는 하품을 막을 길이 없다. 모든 교사가 공감할 테지만,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야말로 교실에서 수업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23년 교직 생활 중 처음 겪는 일
 
부산 지역 모든 고교생이 전면 등교가 시행된 지난 6월 28일 오후 부산 동래구 용인고 3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부산 지역 모든 고교생이 전면 등교가 시행된 지난 6월 28일 오후 부산 동래구 용인고 3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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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교육의 수월성 운운하며 우열반을 나눠 수업하자는 해묵은 주장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영어 교사는 원어민 수준의 실력을 갖춘 아이와 알파벳도 모르는 아이가 같은 교실에 앉아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한다. 수학 교사는 인수분해도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무슨 미적분을 가르치냐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 과목이라고 다를 건 없다. 왜란과 호란을 구분하지 못하는가 하면, 안중근과 윤봉길을 혼동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8.15 광복과 6.25 전쟁 중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고등학생도 있다. 여기저기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은 온갖 사회적 갈등만 일으킨 채 이미 실패로 판명되었는데도 '좀비'가 되어 되살아날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수월성 교육이 지금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는 점이다. 실상 성적을 기준으로 한 강제적 분리 조치 아닌가.

물론,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벌어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올해처럼 중위권이 사라져버린 극단적인 양극화는 23년 교직 생활 중 처음 겪는 일이다. 한 동료 교사도 '2:8 교실'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열 명 중 여덟 명은 수업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단언컨대, 중위권의 급격한 소멸은 코로나의 확산에 기인한다. 거칠게 말하면, 학교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소수의 상위권과 하위권과는 달리, 그들 대부분이 공부를 학교 교육에 의존해왔다는 걸 방증한다. 교문이 닫혔을 때 중위권이 학습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는 의미다.

코로나로 그들의 일상은 '관리'를 받는 상위권보다 '방치'된 하위권에 가까워졌다. 들쭉날쭉한 등교와 비대면 수업은 그들의 생활 리듬을 순식간에 흐트러뜨렸다. 한 동료 교사는 일주일 간격으로 주야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격이라며 아이들의 무기력을 탓할 순 없다고 말했다.

비대면 수업 효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

등교하는 주의 1교시 수업은 취침 시간을 방불케 한다. 평상시에도 1교시는 모든 교사가 꺼리는 시간표다. 과목과 상관없이 1교시는 조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하물며, 일주일 내내 잠옷 차림으로 카메라만 응시한 그들에게 이른 아침 씻고 챙겨 등교하는 것 자체가 고문일 테다.

비대면 수업에 학습 효과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교사들은 그저 정시에 출석 체크를 하는 것,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전쟁이 나도 성적을 관리한다'는 상위권과는 달리, 중위권 아이들은 공부 습관이 흔들리며 성적이 급전직하한 결과가 초래됐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뭐든 무너지긴 쉬워도 다시 세우긴 어려운 법이다. 아이들의 흐트러진 일상을 회복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까지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하던 아이들이 이젠 비대면 수업 날짜만 기다린다. 심지어 굳이 학교가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아이들도 있다.

100점과 10점짜리 극과 극 성적표를 보면서, 다시금 학교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어쩌면 성적의 양극화 따윈 별다른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최고를 경신하는 마당에 섣불리 학교 교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조심스럽다. 하지만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가장 늦게 닫히고 가장 먼저 열리는 곳이 학교여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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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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