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장면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장면 ⓒ 파라마운트 픽처스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괴생명체의 공격으로 일상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인 '리(조 크래신스키)'의 희생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은 '에블린(에밀리 블런트)', '마커스(노아 주프)', '리건(밀리센트 시몬스)'. 갓 태어난 막내까지 소리 낼 수 없는 사투를 이어가던 네 가족은 집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고요함만이 무겁게 깔린 가운데 그들은 자신만의 은신처에 숨어 지내던 과거 이웃 '에밋(킬리언 머피)'을 만나지만, 깊은 상실감에 빠진 그는 도와달라는 이들의 요청을 거절한다. 이에 리건은 자신이 파악한 힌트를 조합해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고, 더 큰 위험을 마주한다. 

2018년에 개봉한 존 크래신스키 감독의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힘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규칙 덕분에 이전까지의 공포영화와는 차별화된 환경을 조성하는 게 가능했고, 그 안에서 가족애로 무장한 주인공들이 펼치는 명료한 생존기는 모두를 몰입시킬 수 있었다. 

3년 만에 돌아온 속편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조금 다르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여전하다. 단, 그 규칙이 활용되는 방식이 달라졌다. 전편에서 주인공들을 옭아매고, 그들을 위기로 밀어 넣었던 그 규칙은 이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보다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위계를 세우는 강력한 힘이자 도구로 작동한다. 구체적으로는 영화 안에서나 현실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은 갑과 을의 관계를 전복시킨다. 

강자가 된 사회적 약자

우선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리건과 다른 이들, 리건과 사회와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괴생명체가 등장한 세상에서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는 리건은 큰 핸디캡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본인이 소리를 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괴생명체의 습격으로부터 가장 취약하다. 당장 그녀의 시점인 장면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먹먹함은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괴생명체가 등장하기 전부터 등장인물들 중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다. 사회언어학자 데이비드 모랜드(David Morand)는 권력과 언어 예절에 관한 연구에서 언어적 행동에 따라 권력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화에 참여할 때 평등하거나 불분명한 권력관계에 놓인 상황이라면 언어적으로 더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화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말을 걸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리건은 거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명백한 약자다. 야구 경기를 구경하는 오프닝 장면에서 리건과 에밋의 대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약자다.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정보를 수용하고, 가공하여 자신의 고유한 의견을 생성하는 프로세스가 타인에 비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는 역사적으로 글자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약자였고, 인쇄술의 발달로 교육기회가 늘자 문맹이 줄면서 시민혁명이 촉발되었던 이유다. 최근에 백신 접종 예약 시 인터넷이나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중년층이 고생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귀를 통해 듣는 것은 그 어떤 수단보다도 기본적이고 직관적인 정보 수용 방식이라는 점에서 특히나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괴생명체가 막 지구를 습격한 오프닝 장면에서 리건이 항상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지시를 받아야만 움직이는 이유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바로 이러한 리건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키며 그녀를 약자에서 강자로 바꾸고,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올려놓는다. 우선 공간적 배경이 집과 그 근방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된 결과, 말을 해서도 소리를 내서도 안 되는 규칙의 중요성은 더 강조되고 그녀의 발언권은 오히려 강화된다. 리건의 입장에서는 불공평한 환경이 비로소 동등해진 것이기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간다. 그녀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마커스가 듣던 라디오 음악이 피난처를 암시하는 힌트라는 사실을 추론해낸 뒤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은신처를 떠나 피난처를 찾으러 나서고, 다시 은신처로 데려가려는 에밋에게도 끝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한다. 

이 관계의 역전은 리건의 보청 장치 노이즈가 활용되는 방식에도 멋지게 반영되어 있다. 사실 전편에서도 보청 장치의 잡음은 괴생명체들에게 약점으로 작용했고, 리건의 가족은 이를 무기로 활용했다. 다만 이 시점까지 노이즈는 괴생명체로부터 벗어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수동적으로 활용되는 도구였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위에 선 리건은 이제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녀는 라디오를 통해 그 잡음을 가능한 한 멀리 퍼뜨리면서 이를 괴생명체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다르게 활용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는다.

듣지 못하고 말 못 하는 이가 세상에 처음으로 먼저 외치는 소리에 지구를 구할 가장 강력한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특히 보청 장치의 노이즈가 그녀를 세상과 단절시켰던 귀를 상징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이러한 전개는 인상적이다. 사회적 약자의 약점을 강점으로 치환하는 아이디어의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쉬움 있지만 잘 만들어진 후속 편

이에 더해 등장인물의 구성을 들여다봐도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흥미롭다. 전편과 달리 괴생명체를 주도적으로 물리치는 이들은 모두 청소년, 학생이고 그들에게 보호받는 이들이 성인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나 학생은 아직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만 여겨지는 경우가 흔하다. 꼭 십 대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1편에서 아버지 리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이번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리건을 보호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구른 이유이기도 하다. 에블린이 두 아들들이 안전한지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 유사 부녀관계를 이루는 에밋이 리건의 목숨을 수차례 구해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서 리건과 마커스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리건은 본인이 음악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라디오 음악이 피난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을 추론해낼 수 있었고, 그 추론을 뚝심 있게 실행으로 옮긴다. 이처럼 소통의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녀는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져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에밋이 세상을 향해 다시 문을 열자고 마음을 고쳐 먹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괴생명체로부터 지구를 되찾을 가능성과 그 세상을 채워나갈 미래도 지켜낸다. 그 결과 가족애와 기성세대의 희생을 통한 구원으로 끝맺은 전편과 달리 신세대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결말은 명백한 대조를 이루며 강렬히 뇌리에 남는다. 많은 속편들이 전편과의 차별점을 두려는 시도를 하곤 하는데,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기능적으로나 메시지적으로나 그 과제를 훌륭히 수행해낸 셈이다. 

이처럼 장애인과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약자에게 놓인 두 개의 갑을관계를 뒤집는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전편에 비해 전통적 호러 영화보다는 호러 영화의 요소가 삽입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로 느껴지는 이유다. 단지 집과 그 주변만을 오가던 동선이 더 넓어지고 주인공 가족 외에 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기존의 질서와 체계가 사라진 공허한 세계(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와 체계로 채우는 과정을 짜임새 있게 제시한 덕분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새로운 등장인물 중 에밋을 제외하면 생산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없다. 부둣가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기도 전에 휘발적인 위기를 만든 후 바로 퇴장해버린다. 괴생명체가 없는 섬사람들의 행적도 세계관과 따로 노는 듯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안일해 보이는 측면이 있어서 몰입을 저해한다. 장르 영화의 관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편에서 괴생명체의 약점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난 나머지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는 점도 만족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이상 신선하지도 않을뿐더러, 호러 영화를 표방하는 작품치고 그렇게까지 강렬한 스릴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본 메시지와 주제의식 외에도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대목들이 즐비하기에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매우 잘 만들어진 후속 편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괴물들의 괴력을 묘사하며 어떻게 전 지구가 그토록 빨리 초토화되었는지, 전편이 남긴 의문을 해소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그중 <칠드런 오브 맨>을 떠올리게 하는,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자동차 장면은 압권이다. 서로 다른 공간으로 주인공들이 흩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는 공통된 장면을 이리저리 이어 붙이면서 극의 간장감을 유지하는 편집도 눈을 사로잡는다. 결말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데도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자칫 난잡해질 수도 있는 영화에 끈끈한 통일감과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와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콰이어트 플레이스 2 공포영화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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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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