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시사교양예능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이하 알쓸범잡)이 약 3개월 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4일 방송된 <알쓸범잡> 최종회에서는 방송국 본사가 있는 상암동과 경기도 캠핑장을 오가며 MC 윤종신,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법무심의관 정재민, 물리학자 김상욱, 영화감독 장항준 등 출연자들이 모여 그간의 에피소드들을 돌아봤다. 방송에 나오지 못한 뒷이야기나 그간의 소회를 밝히는 '총정리' 시간을 가졌다.

박사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최고의 1분'을 이야기하는 시간에서 박지선은 방송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장항준이 시를 낭독했던 에피소드를 꼽았다. 시를 좋아한다는 장항준은 "우리가 학창시절 시를 배우지만, 학교 교육은 시를 분해하는 방법만 배우지 즐기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한다"며 교육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로 전문적인 범죄이야기를 다루던 <알쓸범잡>의 내용과는 조금 결이 다른 내용이었지만 삭막한 우리 사회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박사들에게 여운을 남긴 장면이었다.

'방송에 나가지 못해 아쉬웠던 장면'에서 김상욱은 '대구에서의 시험부정'이야기를 꼽았다. 김상욱은 시험제도의 역사와 발전과정을 하나하나 짚으며 '지금 우리가 하는 실험이 과연 그 목적에 걸맞은 사람을 뽑는 게 적합한 방식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김상욱은 마이클 샌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인용하며 개인능력을 우선시하는 능력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상욱은 "지나치게 과장된 능력주의는 사회 불평등을 유발하고 패자들에게 굴욕감을, 승자들에게 오만함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며 "능력에 대한 오랜 믿음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박지선은 '범죄자의 열등감'을 설명하며 <오셀로>속의 악역 이아고의 명대사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다(I am not what I am)'를 언급했다. 오셀로의 의심과 질투를 교묘하게 부추겨 파멸로 몰아가는 이아고의 모습이 범죄심리학에서 '범죄자적 성격이론(자아가 없기 때문에 그 상태를 직시할 용기가 없어 거짓말과 정당화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실제 연쇄살인범인 정남규와 유영철의 사례와 비교하기도 했다.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 tvN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이야기도 다루어졌다. 정재민은 "정식 명칭은 성충동 약물치료"라고 설명하며 "법적으로 성도착증 환자에게만 할 수 있다. 현재 49명이 집행됐다. 보호관찰관이 주사를 놓는데 남성호르몬을 먹어버리면 끝이라 거짓말탐지기로 확인한다. 표본이 적지만 재범이 없고 일부는 약물치료 연장을 희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상욱은 "성욕만 없애면 되는 걸까. 상대를 지배하고 싶은 욕구, 심리적 욕망이 성욕으로 발산되는 것뿐이라면 폭력성 등은 남아있기 때문에 다른 형태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며 화학적 거세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전설 이야기도 나왔다. 서동요 설화에 따르면 선화공주의 청으로 미륵사와 석탑을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9년 석탑 보수과정에서 발견된 고문서에 따르면 미륵사지를 추진한 백제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명문가인 사택씨 가문의 딸이라고 나와있어서 국내 역사학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정확한 진실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김상욱은 사료 하나가 역사를 뒤흔든 사례라고 설명하며 "사료를 조작할수 있다면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덧붙여 일본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 한국의 황우석 교수 사태 등을 언급하며 '전문가의 조작'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악영향에 대하여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잡학박사들은 궁금했던 시청자 질문을 받고, 서로 권유하는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출연자들은 서로에게 주는 선물을 교환하며 마지막 방송의 아쉬움을 달랬다. 장항준은 정재민과 대화를 하면서 법 체계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히며 "법이 균형을 잃으면 사회가 위험해질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정재민 역시 "법조인이 아닌 분들이과 이야기하면서 왜 사람들이 형량이 낮다고 이야기 하는지 (일반 대중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상욱은 "알쓸범잡에 나오기 전만해도 범죄는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서 "범죄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박지선은 "범죄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게 가능할까 처음엔 모두 걱정했다"면서도 "관점도 전공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매주 즐겁게 녹화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장항준은 "진지하고 중요하고 끔찍한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심리적으로 많이 괴로웠다. 하지만 선생님들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얻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MC 윤종신은 "<알쓸범잡>이 교양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살이 쪄서 가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정리했다.

예리한 분석력과 높은 완성도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 tvN

 
<알쓸범잡>은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범죄를 분석하고 그 이면에 담긴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현상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2017년부터 시즌3까지 방영된 인문학 교양예능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리즈에서 파생된 스핀오프작품이기도 하다.

원작이 여행과 역사를 통하여 인문학적 교양지식을 이야기하던 것과 비교하여, 아무래도 '강력범죄' 혹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들'라는 무겁고 진지한 분야를 위주로 다루다 보니 방송의 결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쓸범잡>은 밀도있는 주제와 구성, 전문가 패널들의 차분하면서도 본질을 파고드는 예리한 분석력을 바탕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시사교양예능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이라서 딱딱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뒤집은 잡학박사들의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모습들도 미소를 짓게 했다. <알쓸범잡>에 쏟아진 시청자들의 호평은 오히려 팩트체크와 출연자 자격-발언 논란 등에서 잇단 구설수도 많았던 원작을 훨씬 뛰어넘는 속편이라는 증거다.

<알쓸범잡>은 13회 방송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총 81곳을 방문했고, 무려 178건의 사건을 다룬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이나 안전사고, 가스라이팅, 자살 같은 한국 사회의 사건사고에서부터 해외의 제노사이드 같은 국제범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뤘다. 각 분야에서 검증받은 전문가 패널들만 출연한 <알쓸범잡>은 때로는 전문가적인 냉철한 시각에서, 때로는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기도 하면서 최고 시청률 5%를 돌파할 만큼 높은 화제성과 인기를 자랑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화제와 논란을 낳았던 유명 사건들을 다시 조명하는 시사교양과 예능을 결합한 정보전달형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알쓸범잡>이 다루는 범죄 이야기들을 파고들어 가다 보면, 결국 우리 사회의 화려한 외형적 성장 뒤에 가려진 어두운 치부들과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알아두면 쓸데있는'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 <알쓸범잡>이 다룬 이야기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불편해도 알아야만 하는' 내용에 가깝다. <알쓸범잡>에서 다루어진 수많은 범죄들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사건으로 3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2위가 '어금니아빠 이영학 사건', 1위로는 총 305만건의 조회수를 올린 '강력범죄자들의 특성'이 뽑혔다.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잊지 못할 사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은 사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언제든 그런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심리나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그런 일들이 왜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가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알쓸범잡>은 우리 사회에 일어난 수많은 범죄들이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러한 비극을 막고 정의를 지키려는 '선한 인간들의 노력과 의지'가 있기에 우리 사회가 균형있게 유지되고 있다는 교훈도 동시에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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