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놀이공원의 다양한 시설들에 열광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덩달아 뿌듯해진다. 물론 시작하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놀이공원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공간이다. 이처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다양하고 스릴 있는 놀이기구의 존재다.

그런데 만약 놀이기구가 가장 높은 곳에서 멈춰 버리거나 역주행해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더이상 스릴을 즐기기 위해 놀이공원을 방문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얼마든지 그런 스릴을 즐겨도 상관없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나 버스에 폭탄이 실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스피드>는 사고 위험을 걱정할 필요 없이 관객들이 편하게 몰입할 수 있는 속도감 넘치는 액션 스릴러 영화다.
 
 <스피드>는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히트했다.

<스피드>는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히트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좀처럼 늙지 않는 할리우드의 동안배우

1964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키아누 리브스는 어머니와 함께 1970년부터 캐나다에 정착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리브스가 처음으로 주목 받은 영화는 1989년 방학숙제를 위해 타임머신을 타는 10대 소년 테드를 연기한 <엑설런트 어드벤처>였다.

리브스는 <아이다호>, <폭풍 속으로>, <드라큘라> 등에 출연하며 다양한 연기 변신을 시도했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미완의 대기'로 20대를 보낸 리브스는 30대로 접어든 1994년 <다이하드>, <원초적 본능>의 촬영 감독이었던 얀 드봉 감독의 연출 데뷔작 <스피드>를 통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조금 길었던 단발형의 머리 스타일을 짧은 스포츠형 머리로 바꾼 것도 리브스의 인상적인 변신을 도왔다.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정의로운 LA경찰 잭 트래븐을 연기한 리브스는 <스피드>를 통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30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스피드>는 세계적으로 3억50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크게 성공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스피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상과 음향 효과상을 수상했고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은 MTV 영화제에서 최고의 콤비상을 받았다.

<스피드>를 통해 할리우드의 신성으로 떠오른 리브스는 <코드명J>, <체인 리액션>이 나란히 실망스런 성적을 거두며 슬럼프에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1999년부터 3부작으로 제작된 워쇼스키 형제(지금은 자매)의 <매트릭스>가 세계적으로 16억3200만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리브스를 부활시켰다. 연기력이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진 못하지만 워낙 풍기는 분위기가 멋있어 주로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액션 영화에서 큰 매력을 발산한다.

키아누 리브스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3편에 걸쳐 제작된 <존 윅>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으로 5억83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많은 시리즈 영화가 속편을 거듭할수록 제작비가 올라가는 반면 수익은 점점 감소하지만 <존 윅> 시리즈는 높아진 제작비만큼 점점 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멋진 액션배우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는 리브스는 내년 <존 윅>과 <매트릭스>의 4번째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액션쾌감
 
 산드라 블록(왼쪽)과 키아누 리브스는 <스피드>를 통해 배우생활의 전환점을 맞았다.

산드라 블록(왼쪽)과 키아누 리브스는 <스피드>를 통해 배우생활의 전환점을 맞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신인 감독과 신예배우들이 뭉쳐서 만든 영화가 신선함을 앞세워 크게 히트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그 감독과 배우가 모두 대성한 경우는 의외로 찾기 드물다. 그 점에서 보면 <스피드>는 영화 자체도 큰 인기를 얻었고 얀 드봉 감독과 주연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 산드라 블록이 모두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굳힌 흔치 않은 경우다(비록 얀 드봉 감독의 전성기는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지만).

<스피드>는 퇴직금에 불만을 품은 전직 경찰 하워드(데니스 호퍼 분)와 그의 테러를 막으려는 LA 경찰 잭(키아누 리브스 분), 그리고 버스 잘못 탔다가 험한 꼴을 당하는 애니(산드라 블록 분)가 벌이는 액션 스릴러다. 영화에서 하워드는 엘리베이터와 버스, 그리고 애니의 몸에 폭탄을 설치해 잭과 치열한 대립각을 세운다. 마치 폭탄을 소재로 한 세 편의 단편 영화를 묶어 놓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각 에피소드가 주는 재미가 풍부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피드>의 백미는 역시 영화의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버스 질주 장면이다. 50마일(시속 80km)이하로 떨어지면 폭탄이 터지는 버스에 탄 잭과 승객들은 도심에서 위험천만한 질주를 한다. 특히 끊어진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점프하는 장면은 <스피드>를 상징하는 명장면이자 극에 몰입한 관객들이 가장 가슴 졸이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액션이 펼쳐지지만 그 사이에서도 선남선녀의 알콩달콩한 러브라인은 존재한다. 애니가 버스 운전대를 잡으면서 잭과 애니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진다. 특히 잭이 대책을 세우기 위해 버스에서 내릴 때 애니는 잭을 향해 "이봐요, 우릴 잊지 말아요"라는 말로 잭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 밖에도 잭과 애니는 위험천만한 순간마다 서로를 격려하고 끌어 안으며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하지만 <스피드>의 대사처럼 특별한 상황에서 시작되는 사이는 오래 갈 수 없는 모양이다. <스피드>로 슈퍼스타가 된 키아누 리브스는 <체인 리액션> 출연으로 속편 참여를 고사했고 얀 드봉 감독은 제이슨 패트릭을 새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속편을 제작했다. 하지만 리브스가 빠진 <스피드2>와 리브스가 <스피드2>대신 선택한 <체인 리액션>은 사이 좋게 흥행 참패했다. 당연히 <스피드> 시리즈는 그대로 마무리됐다.

퇴직금에 불만 품은 전직경찰의 분노
 
 3번의 폭탄 인질극을 벌인 전직경찰 하워드 페인의 목적은 결국 '돈'이었다.

3번의 폭탄 인질극을 벌인 전직경찰 하워드 페인의 목적은 결국 '돈'이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액션 영화 속 빌런들 중에선 가끔 고상한 이유나 이념을 가지고 주인공과 대립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더 록>의 하멜 장군(에드 해리스 분)으로 그는 군사작전 수행 중 전사한 부하들의 명예회복과 유가족들의 적절한 보상을 위해 악명 높은 형무소 알카트라즈를 장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빌런들은 결국 돈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스피드>의 전직경찰 하워드 역시 적은 퇴직금과 연금에 불만을 품고 인질극을 벌인 전형적인 빌런이다.

잭 때문에 2년을 공들여 준비한 엘리베이터 인질극이 좌절된 하워드는 버스에 폭탄을 설치하고 잭과 게임을 벌인다. 하워드는 우체통 밑에 땅굴까지 파며 어렵게 돈을 탈취했지만 가짜임을 알게 되면서 이성을 잃고 애니를 납치해 잭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하워드를 연기한 배우 데니스 호퍼는 <지옥의 묵시록>, <블루벨벳>, <이지라이더> 등에 출연했던 베테랑 배우로 지난 2010년 5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잭의 파트너이자 LA경찰서의 폭탄전문가 해리(제프 다니엘스 분)도 <스피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초반 엘리베이터 인질극에서 잭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아 부상을 당했는데 이는 그만큼 잭과 해리의 신뢰가 강하다는 뜻이다. 다리를 다친 후에는 현장 대신 사무실에서 잭에게 폭탄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는데 하워드의 신변을 파악한 후 하워드를 잡으러 출동했다가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해리를 연기한 제프 다니엘스는 골든 글러브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4번이나 오른 검증된 배우다. 물론 국내 관객들에겐 짐 캐리와 함께 엄청난 바보연기를 선보였던 <덤 앤 더머>로 가장 익숙한 배우다. 2013년 미드 <뉴스룸>에서 검사 출신의 앵커 윌 매커버이를 연기하며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니엘스는 최근까지도 <마션>, <스티브 잡스>, <갓레스>, <코미 룰: FBI 폭로 스캔들> 등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키아누리브스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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