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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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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지 4개월 만에 대권에 도전하면서 헌정사에 새로운 기록이 남게 됐다. 유례가 없는 출마에도 불구하고 윤 전 총장은 야권 대선 후보들 가운데 지지율 1위에 올랐고, 그런 그의 출마 선언에는 어떤 국가 비전이 담겨 있을지 내심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윤 전 총장의 선언은 실망스러웠다.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자유'였다. 그는 선언문에서 '자유'를 22번이나 언급했다. 특히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실망을 너머 진부하게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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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독재? 고개가 갸우뚱

2021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민주국가가 아닌, 독재 정부라는 말에 사람들은 얼마나 동의할까?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라고 보는 청년 중에서도, 현 정부가 독재 정부이거나 대한민국이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는 청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군사 독재 정부에 맞서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청춘을 다 바쳤던 586 정치권과 달리, 흔히 MZ세대라 불리는 '요즘 청년들'은 이념 논쟁에서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청년은 2002년생이다. 한창 월드컵으로 국민 대통합이 이뤄졌던 2002년은,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라거나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이념 논쟁은 이미 종지부가 찍히다시피 한 시기였다. 과거 체육관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공개적인 투표를 강제하던 시절과 달리, 비밀투표가 너무 당연한 시대에서 성장한 청년들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시킨 경험도 가지고 있다.

일부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도 '공정'에 대한 부분일 뿐, 과거와는 그 양상이 다르다. 현 586 정치인들이 청년이었을 때처럼 '독재 체제를 바꿔야 한다'더니, '민주주의가 억압받고 있다'라며 분노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미 체제 싸움이나 이념 논쟁은 종결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29년을 살면서 정치를 하는 내게, '진짜 민주주의'와 '독재'를 설파하는 윤 전 총장의 선언문은 그야말로 올드했으며 구시대적이기도 했다.

과거 말고 미래를 이야기해야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후보 출마 선언을 하는 날 인상 깊게 본 기사가 하나 있다. 한국은행이 '현금없는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연구하는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8년 가계지출 중에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현금을 사용하는 비중이 19.8%에 불과했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발표처럼 요즘 현금 사용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특히 스마트폰에 익숙한 청년들은 거의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다. 현금 사용이 줄어들면서 두툼했던 지갑은 카드지갑으로 바뀌었고, 카드지갑은 다시 스마트폰 케이스 지갑으로 바뀌었다. 각종 페이들이 등장하면서 최근에는 케이스 지갑마저 아예 사라졌다.

내가 현금을 사용하는 유일한 때는 일주일에 한 번 복권인 로또를 살 때뿐이다. 로또를 제외하면 현금을 사용할 일은 없다. 요즘은 스타벅스 매장에서도 현금을 받지 않는다. 모든 결제가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며,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은행이 등장하면서 은행 업무도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다.   

'현금없는 사회'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사회다. 유럽 최초로 지폐를 발행했던 스웨덴은 이미 오래전에 '현금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스웨덴에서 몇 해 전부터 교회 헌금이나 자활 잡지를 파는 노숙자에게도 '스위시(Swish)'라는 앱으로 결제한다고 한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1위인 우리나라 역시 이대로라면 조만간 스웨덴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편에는 현금없는 사회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스마트폰과 익숙하지 않은 노인세대이다. 스마트폰의 가장 기초 기능이라 할 수 있는 '길 찾기' 조차도 버거운 노인들에게 스마트폰 결제는 어려운 기능이기 때문에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각종 '페이'앱, 키오스크 등으로 인해 현금 결제가 줄어들면서, 현금 결제가 익숙한 노인세대는 돈이 있어도 방법을 몰라 구매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는 통상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해 온라인에서 거래가 이뤄지는데, 기계에 익숙치않은 노인들의 경우 구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자료사진).
 전자상거래는 통상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해 온라인에서 거래가 이뤄지는데, 기계에 익숙치않은 노인들의 경우 구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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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자유민주주의를 되찾거나 독재로부터 저항하는 일이 아니다. 현금없는 사회, AI에게 빼앗기는 일자리 등 앞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될 사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마련하는 것이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다.

이처럼 시대는 월급날이면 아버지가 현금이 가득 담긴 두툼한 봉투를 가져오던 과거에서 현금이 사라지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건만 정치는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최근 미중 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새로운 냉전이 도래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냉전도 체제 싸움하던 과거 냉전이 아닌 미래기술 싸움이다. 겉으로는 체제에 따른 무역전쟁처럼 비춰졌지만 실제로는 5G와 같은 미래기술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G2 국가도 더 이상 이념이나 체제로 갈등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2021년에, 아직도 1980년대에나 있을 법한 대선출마 선언을 보고 있노라니 진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필요한 자유가 있다면 진부한 정치를 그만 볼 자유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성윤씨는 미래당 서울시당 대표입니다. '정치권 세대교체'와 청년의 목소리가 의회에 좀 더 반영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6년 12월 청년정당 미래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고, 2017년에는 만 23살의 나이로 1기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서른을 6개월 앞둔 지금은 미래당 서울시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윤석열, #미래당, #이성윤, #청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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