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밤> 스틸컷

<흩어진 밤> 스틸컷 ⓒ 씨네소파

 
<흩어진 밤>이란 영화의 제목은 함께 한, 그리고 함께 할 시간의 소멸을 의미한다. 수민과 진호 남매는 어느 날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겪게 된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상실감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 하지만, 아이들은 피부로 냉기를 느낀다. 밤은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이자 새로운 하루를 꿈꾸는 순간이다. 가족은 같은 지붕 아래에서 밤을 보내며 하나가 된다. 그 밤이 흩어지면서 수민의 가족은 붕괴를 겪는다.  

작품은 수민의 시점으로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미디엄 쇼트와 정지된 카메라를 통해 공간과 인물의 거리감에 주목한다. 인물과 배경 사이의 거리를 통해 수민과 진호가 부모에게 느끼는 거리감을 보여준다. 어린 수민의 입장에서 갑작스런 부모의 이혼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영화는 수민이 자신에게 닥친 변화를 낯설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카메라의 거리감을 통해 관객이 체감하게끔 유도한다.

이런 체감은 부모의 직업과 집이란 공간에서도 나타난다. 엄마 윤희의 직업은 학원강사다. 수민과 진호는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이 가르침의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 자신들이 잘하면 엄마와 아빠가 다시 합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더 잘 나갈 수 있었던 윤희가 아빠 승원을 만나고 아이를 가지면서 인생이 풀리지 않았다는 외할머니의 말은 이 교육의 시간이 관계의 회복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아빠 승원은 박물관 학예사다. 박물관은 역사를 담은 공간이다. 승원이 아이들에게 자신이 일하고 있는 박물관을 구경시키는 장면은 그들 가족이 함께 가족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암시를 준다. 가족의 결합은 지난 추억에서 비롯된다. 함께했던 추억은 기억을 다시 꿰맬 수 있는 열쇠가 된다. 허나 승원이 '아빠와의 추억은 매번 박물관'이라 불평하는 진호에게 '다음에는 네가 가고 싶은 장소를 알아오라' 말하는 장면은 승원에게 가족과 함께 보고 싶은 추억이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흩어진 밤> 스틸컷

<흩어진 밤> 스틸컷 ⓒ 씨네소파

 
작품은 수민의 심리를 3단계로 나눠서 보여준다. 첫 번째는 불안이다. 갑자기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평소와 다른 모습에 수민은 변화를 눈치 챈다. 집이 부동산에 올라오고 부모가 이혼 사실을 두루뭉술하게 말하면서 아이는 불안을 느낀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수민과 진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주는데, 침대에 누워 인형을 안은 수민의 모습은 현실이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불안한 바람을,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게 걸터앉은 진호의 모습은 사태의 파악과 변화의 체념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희망이다. 진호와 수민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은 두 사람이 노력을 하면 부부의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수민이 진호의 드론을 날리는 장면은 이런 희망을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희망찬 미래를 그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드론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희망을 품었던 심리는 뒤틀린다.

세 번째는 분노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허나 사랑을 잃은 부부에게서 아이들이 온기를 느낄 리가 만무하다. 피크닉을 떠나기로 한 날, 진호는 시험을 핑계로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 어색한 식사를 하던 수민은 희망의 상징이었던 드론으로 엄마와 아빠를 위협하는 행동을 한다. 이 행동은 수민의 심리 역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연출과 방향성에 있어 호불호가 갈릴 영화지만 수민 역의 문승아가 선보인 집중력 있는 연기는 꽤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이 없었음에도 그 변화를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수민이란 캐릭터를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때문에 차분한 영화의 분위기 속에서도 격렬하게 움직이는 내면의 갈증을 보여주며 극적인 몰입을 높이는 힘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흩어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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