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 포스터

<클라이밍>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임신과 출산은 '생명의 탄생'이란 측면에서 아름답다. 하지만 임신 중 여성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고통은 그 기쁨에 가려진 또 다른 이면이다. 최근 영화계에 여성영화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여성서사 영화가 늘고 있다. '클라이밍'은 임신과정에서 느끼는 복잡한 심리를 공포의 장르로 표현한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여성의 임신은 그 신체적인 변화와 가해지는 고통과 별개로 두 가지 측면에서 공포를 자아낸다. 첫 번째는 꿈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열심히 쌓아둔 커리어의 단절을 가져올 수도 있다. 프로 클라이머 선수 세현은 세계선수권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임신을 하게 된다. 그토록 이루고싶던 꿈 앞에서 아이는 그녀에게 그 무엇보다 오르기 힘든 언덕처럼 여겨진다. 
 
두 번째는 몸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배에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다. 작품은 이 '공유'를 두 가지 측면을 통해 공포로 바꾼다. 클라이밍의 끈과 탯줄은 생명을 잇는다는 점에서 같은 이미지로 등장한다. 탯줄은 어머니의 영양분을 아이에게 나눠주는 중요한 존재며, 클라이밍의 끈은 높은 곳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장치다.
 
 <클라이밍> 스틸컷

<클라이밍>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클라이밍과 임신은 이 '끈'을 매개체로 한다. 두 소재 사이에 공통점을 확보한 것이다. 소재를 끈끈하게 결합했으니 다음은 표현이다. 표현은 두 명의 세현을 통해 긴장감을 자아내는 식이다. 작품은 멀티버스의 형태로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두 명의 세현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 세현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후 세계선수권 대회를 준비 중이다. 그녀의 곁에서 남편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준다. 다른 세현은 사고로 몸의 자유를 잃은 대신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그녀는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한 세현은 아이를 잃었지만 클라이밍 대회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다른 세현은 꿈을 잃었지만 아이를 지켰다. 문제는 세 달 전 두 세현이 공통으로 겪은 사고 때 망가졌다 여긴 핸드폰이 작동되면서 시작된다. 이 핸드폰을 통해 두 명의 세현이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다른 세계의 두 세현이 연결된 순간, 꿈을 향해 나아가던 세현은 임신을 하게 된다. 그녀는 대회를 위해 다른 세현에게 아이를 포기하라 종용한다. 두 사람의 정신적인 동화가 육체로 연결되어 임신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세현에게 다가오는 공포는 꿈의 좌절이다. 갑작스레 실력이 향상한 후배 아인과 그런 아인을 밀어주려는 코치, 임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를 떠나는 남편 등 심리적인 압박이 계속 가해진다. 이는 임신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의 마음을 보여준다. 

아이를 임신한 세현에게 공포는 시어머니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포기하려는 세현을 집에 가두고 감시한다. 임신을 한 순간 여성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닌 거처럼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 모두 아이를 신경 쓰며 몸 관리에 신경을 쓰도록 압력을 가한다.
 
 <클라이밍> 스틸컷

<클라이밍>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임신의 두려움을 공포의 색깔로 표현한 이 작품은 개성이 강하다. 기괴한 작화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다만 서사적인 측면에 있어 꼼꼼함이 부족하다. 불안의 측면을 관객이 확실히 느끼게끔 제시하지 못한다. 남편의 부재나 시어머니의 강요는 여성이 임신 후 느끼는 생각을 보여주지만 상황설정이 극단적이다. 공포란 장르적 색깔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상황은 그 자체로 공포다.  

여기에 색깔을 더 더하려다 보니 기괴함이 과하다. 과한 기괴함은 이 기괴함의 색이 연할 때와의 차이를 크게 만들어 리듬감을 부드럽게 유지하지 못하게 한다. 아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힌트를 던지는 만큼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추리력을 자아내는 힘 역시 부족하다. 클라이밍을 상황과 연결하는 건 주제의식의 강화에서는 좋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주제를 노출할 것이라면 굳이 표현이 기괴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클라이밍'은 시도에 있어서는 인상적이다. 여성의 측면에서 임신을 바라보며 이때 느낄 수 있는 심리를 공포라는 장르에 담아냈다.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심리적 불안을 담은 여성서사를 선보인다. 다만 서사를 조금은 유연하게 풀어가거나 꼼꼼하게 쌓을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르는 공포지만 어색한 3D 표현은 장르적 쾌감을 자아내지 못한다. 심리공포로 갈 것이라면 더 섬세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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