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플> 메인포스터

영화 <애플> 메인포스터 ⓒ (주)디자인소프트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영화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생각해 본 일이 있다. 시나리오 작성과 트리트먼트 제작, 캐스팅을 지나 현장이 꾸려지는 물리적인 과정 말고 조금 더 근본적인 것. 누군가 '이런 영화에 대해 그려보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난 후에 실제로 영화를 촬영하는 일에까지 다다르게 된다면, 그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 이유가 서로 너무도 다른 까닭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령,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지 20년이 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이유에 대해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남겼다. 부끄럽지 않고 싶은 마음에서도 영화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처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욱 어려워진다.

특정한 사건이 계기가 되는 영화도 있다.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의 영화 <애플>이 바로 그런 경우다.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감독은 아버지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시작의 카테고리에 위치한 다양한 경험이 여러 화두를 낳고 감정을 일으키듯이 끝에 위치한 경험들 또한 마찬가지로 그렇다. 그리고 상실이라는 단어는 이를 경험하는 이들로 하여금 끝에 서게끔 만든다.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 역시 그랬다. 당시 정체성과 상실, 기억 그리고 고통에 대한 모든 질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그는 작품 속에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이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제껏 세상에 없던 블랙코미디를 위한 8년에 걸친 지난한 집필의 과정을 지나서.

02.

영화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전환되며 시작된다. 한 남자가 벽에 자신의 머리를 찧는 소리다. 남자는 이내 조금 지친 듯 의자에 앉는다. 그의 눈동자가 조금 이상하다. 공허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방금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듯 하다. 머리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몸에는 무엇인가 한 듯한 흔적이 남아 있는 남자. 역시, 어딘가 이상하다.

"기억이 안 나요."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자는 집이 어딘지,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버스 기사의 도움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게 되지만 그는 자신의 신원을 보증할 만한 어떤 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 병원에서는 그를 대수롭지 않게 다룬다. 일단 그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세워 번호를 부여하고 (그에게 주어진 번호는 14842번이다.) 기록을 남겨둔다. 남자에게 주어진 번호만 봐도 알겠지만, 최근 이 현상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아무런 사전 징후가 없는 이 병은 아직 치료가 불가능하고 기억을 되찾은 사례도 없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함께 격리되어 있는 병동에서 남자는 딱 하나를 기억하는 것에 성공한다. 저녁으로 배식 된 사과 한 알의 그 달고 시큼한 맛. 그 맛을 자신이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대해 말이다.
 
 영화 <애플> 스틸컷

영화 <애플> 스틸컷 ⓒ (주)디자인소프트


03.

남자의 이름은 알리스(아리스 세르베탈리스 분)다. 원인 모를 유행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버렸다. 영화는 그를 따르며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쌓아 나간다. 대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방식이 아닌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통해 부재시의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대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방식.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랑의 부재나 존재의 상실을 그려내는 것과 유사한 형식이라 하겠다. 물론, 기억을 소재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기억의 부재를 통해 이야기를 쌓아 나간다. 다만 기존의 작품들이 기억을 잃은 인물의 상황을 통해 대상 그 자체나 감정에 대해 호소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기억 그 자체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며칠이 지나도 그를 찾으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족이 데리러 와야만 퇴원할 수 있기에 이는 곧 그가 퇴원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와 같은 설정은 상황을 훨씬 단순하게 만들고 인물의 선택지를 제한하며 그가 단 하나의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이다. 병원에서 무연고 환자들에게 제안하는 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은 데리러 올 가족이 없는 환자가 최대한 빨리 퇴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알리스가 이 프로그램을 마다할 까닭이 없지 않나. (물론, 병원에서 사과만 꾸준하게 제공해 준다면 그가 남으려 할지도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은 환자의 기억을 돌아오게 만들 수는 없지만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고 새 자아를 찾기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환자에게 주어지는 임무는 단 하나. 매일 주어지는 녹음 테이프 속 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방 안에 놓여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그 날의 사진을 찍어 사진첩에 넣어두는 것이다. 남자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다음 날 바로 담당의 두 사람을 따라 병원 밖에 준비된 별도의 집에 머물게 된다.

04.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남자의 처음 며칠 동안은 그의 기억이 아닌 내재된 본능의 의한 행동들이 이어진다. 집 근처 공터를 찾은 날에는 처음 보는 아이의 세 발 자전거를 빼앗아 해맑게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다음 날 누드 바에서는 헐벗은 종업원과 함께 셀카를 찍는가 하면, 처음 보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심지어는 길거리 전파상의 쇼윈도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속 연인들의 키스 장면을 매우 유심히 쳐다보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순수성과 본능적 욕구를 표현하는 장면들이다. 기억이라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욕구를 관장하는 내적 장치까지 망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자전거를 매개로 한 순수성에 대한 부분은 조금 더 심오한 부분이 있다. 자신의 순수성을 발현하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는가.

이런 장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등장하는 강아지 '말루'와의 에피소드는 극 중 처음으로 이제껏 쌓아온 뼈대를 스스로 흔드는 지점이 된다. 남자는 공원을 걷다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강아지를 보고 '말루' 하고 반사적으로 강아지의 이름을 외치게 된다. 강아지 주인이 다시 이름을 부르며 반대쪽에서 가까워져 오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 조금 당황한 듯 자리를 뜨고 마는 남자. 곧 강아지 '말루'의 주인과 알리스가 같은 건물에 살던 이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자주 만나 인사를 하던 사이였으니, 기억을 '잃지 않은 상태'인 강아지의 입장에서는 남자가 반가웠을 수밖에. 다만, 지금의 남자는 기억을 '잃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반사적으로 내뱉은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한번 더 던져진다. 우리는 동일한 행동이 수없이 반복되어 머리가 아닌 몸에 익혀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앞서 반복되던 행위들과 함께 무의식적 행위의 영역에 대한 상황이긴 하나, 분명히 결이 다르다.
 
 영화 <애플> 스틸컷

영화 <애플> 스틸컷 ⓒ (주)디자인소프트


05.

같은 기억도 무엇을 떠올리는가에 따라 대상은 달라질 수 있다. 사건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배경이나 분위기가 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그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난 극장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만나게 되는 안나(소피아 지오르고바실리 분)가 등장하는 까닭이다. 영화는 앞선 몇 가지 장면들을 통해 알리스라는 남자 그 자체를 훑어 본 후에 한 명의 인물을 더 집어넣는다. 카메라의 플래쉬를 터뜨리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자신도 사진을 찍어 달라며 남자에게 접근한 여자. 그녀 역시 남자와 똑같이 기억을 잃어버린 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두 사람의 주변에는 그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이미 알고 있다. 안나는 알리스에게 내일 앞두고 있는 중요한 도전을 도와달라고 한다.

운전이다. 사실 여기에서는 안나가 운전을 한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Sealed with a kiss'의 가사를 정확히 따라 부른다는 점이다. 공원에서 강아지를 만나고 반사적으로 '말루'라는 이름을 외쳤던 남자의 모습처럼, 여자 역시 노래를 정확히 따라 부른다. 남자의 상황을 가져와 오버랩 해보면, 기억을 잃기 전의 여자가 이 노래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에서 여자는 물구나무를 서면서 4분을 초로 환산하면 154초가 된다고도 이야기하는데, 노래 한 곡의 가사 전부를 외울 수 있는 사람의 기억력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딘가 이상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잡음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회수와 시간을 환산하는 경험(여기에서는 초와 분의 환산) 가운데 무엇을 더 많이 반복하게 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래를 듣는 횟수보다는 시간을 환산하는 경험의 횟수가 훨씬 더 많을 것 같은데, 이렇게 따지고 보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체득'이라는 관점에서 여자의 기억력은 납득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선택적으로 기억해 낸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선택적 기억'과 관련한 문제 제기에 해당할 수 있다.
 
 영화 <애플> 스틸컷

영화 <애플> 스틸컷 ⓒ (주)디자인소프트


06.

여자와 몇 번의 교류를 나누는 동안에 남자는 이 프로그램의 목적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처음에 설명했듯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는 것에 있다. 어차피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으니 무엇을 해도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안나와 나누는 감정적 교류는 그를 이 새로운 삶 속에 완전히 동기화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사랑에 가까운 감정. 우리가 감정에 의해 하나의 삶 속에 뿌리 내리듯 알리스 역시 안나가 함께 머무는 자신의 새로운 삶에 깊이 빠져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죠?"

평소와 다를 것 없던 날, 녹음테이프로부터 흘러나오는 지시사항이 여자의 지난 행동들과 같다는 걸 깨닫게 되며 남자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집으로 찾아오는 여자를 피해 만남을 거부하고, 정기적인 만남을 위해 마주한 의사들에게는 이 프로그램의 끝이 어디인지를 되묻는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처음 결정하던 때와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는 보이지 않던 남자의 행동들. 그가 보이는 지금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과거의 기억은 잃은 상태 그대로 변한 것이 없지만, 새로 경험하기로 한 이번 삶에 자신도 모르게 축적되어 온 기억. 그 기억의 총체가 남자의 생각, 시선, 행동, 말 등의 모든 행위를 바꿔놓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억은 무엇인가? 기억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어떤 장면을 계기로 남자는 약간의 혼란을 겪고 원래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 그 장면은 새로운 삶 속의 마지막 즈음에서 자신이 밀어내던 그 여자, 안나와 관련되어 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영화의 마지막 트릭이기도 하다.) 남자는 자신의 집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오래 비워둔 집 안에는 정리되지 않은 물건이 많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을 잃은 탓에 집을 갑작스레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릇 안의 말라버린 과일들 속에 사과가 보인다. 적어도, 그가 사과를 좋아했던 것만큼은 정확한 기억이었던 모양이다. 내내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과는 별개로.
 
 영화 <애플> 스틸컷

영화 <애플> 스틸컷 ⓒ (주)디자인소프트


07.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은 다양한 작품의 레퍼런스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2013)에서부터 자신이 조감독으로 있었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들까지. 실제로 영화 속에는 면면이 오버랩되는 장면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안나와 함께 찾은 펍 장면은 테오도르와 캐서린의 과거 장면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듯 하고, 차가운 결이 표현되는 수영장 다이빙 신은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가 스쳐 지나간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사실 이 영화에 레퍼런스들이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양한 레퍼런스들 위에 쌓아 올린 것은 사실이나,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충분히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할리우드 스타일의 매끄럽게 짜여진 플롯은 아니지만, 두서 없이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흐름 속에서도 감독은 스스로가 원했던 '기억'에 관한 화두를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자신이 펼쳐놓은 대부분의 소스들을 회수하는데 성공하면서 말이다.

인간의 본성을 활용한 블랙 코미디와 의도적이기는 하나 매끄럽지 않은 연출 스타일까지. 제2의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수식어가 벌써 그를 따라다닌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미 전작인 <더 페이버럿 : 여왕의 여자>(2018)로 아카데미 10개 부문 노미네이트까지 달성하며 영미권 데뷔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 훨씬 미니멀하고 컴팩트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 <애플>에서 <더 랍스터>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그저 '기억'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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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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