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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이해하기 힘드실 테지만, 요즘 세대는 '구독과 좋아요'가 자존감의 크기예요." 

한 아이의 뜬금없는 답변으로 브이로그에 대한 대화가 시작됐다. 그들의 자존감에 대한 파격적 정의 앞에 순간 당황했다. 그들은 자존감의 사전적 의미를 조롱했다.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타인의 관심이 자존감의 척도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대화가 길어질수록 애꿎은 세대 차이만 도드라졌다. 교사의 브이로그 운영에 대한 찬반의 인식 차이는 세대 차이와 정확히 비례했다. 학부모와 교사의 차이보다, 심지어 학생과 교사의 차이보다 세대에 따른 격차가 훨씬 컸다.

브이로그 하는 교사에 대한 아이들 생각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도리어 권장할 일 아닌가요? 무엇보다 재미있잖아요."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도리어 권장할 일 아닌가요? 무엇보다 재미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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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교에는 많게는 수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도 있고, 브이로그라는 단어조차 낯설어하는 교사도 있다. 남녀의 성별뿐만 아니라 인터넷 활용 능력의 격차 또한 생각만큼 의미 있는 차이는 없었다. 젊은 교사일수록 문제 될 것 없다는 반응이었다.

고백하자면, 아이들과 대화하기 전까지 브이로그가 뭔지도 몰랐다. 페이스북이나 카톡, 밴드처럼 여러 SNS 중 하나인 줄로만 알았다. 단지 근래 여기저기서 자주 들리는 걸로 봐서 SNS의 유행이 바뀌고 있나 싶어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을 뿐이다. 

영상을 뜻하는 비디오와 각자의 인터넷 공간인 블로그를 합성한 용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내 눈엔 다를 바 없는데, 아이들은 유튜브와 브이로그를 칼로 두부 자르듯 구분 지었다. 유튜브는 '그릇'일 뿐이고, 브이로그는 거기에 담긴 '내용물'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교사가 강의나 실험 등 수업과 관련된 내용을 촬영한 거라면 브이로그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각자의 일상을 '셀카'로 찍어 공유하는 것만 한정해 가리킨다는 거다.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TV의 '리얼 예능 프로그램'을 흉내내는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고 덧붙였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브이로그에 중독돼 있는 친구들도 여럿이라며, 내 스마트폰을 잠깐 달라더니 가장 인기가 있다는 브이로그를 보여주기도 했다. 드물지만, 브이로그를 개설해 '영업'을 하는 친구도 있단다. 한 아이는 브이로그의 유행을 유튜브의 진화 과정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초등학생은 물론, 중학생조차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장래 희망 1순위라고들 한다. 흥미와 적성 운운하기 전에 그만큼 영상 촬영과 편집 등에 익숙한 세대라는 뜻이다. 포털 대신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검색하는 그들에게 유튜버는 교사이자 친구이자 가족이다. 

사실 내가 던진 첫 질문에 아이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직 교사가 브이로그를 운영하는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건 하나마나한 질문이었다. 대뜸 "그게 불법인 거냐?"며 동문서답하는 아이도 있었다(교사 유튜버가 증가함에 따라 지난 2019년 교육부는 공무원 겸직 허가 요건을 마련했다, 즉 불법은 아니지만 '교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는 금지되고, 영상으로 광고 수익이 발생하는 최소 요건에 도달한 경우에는 소속 기관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 외에 모든 아이들이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답변을 했다.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도리어 권장할 일 아닌가요? 무엇보다 재미있잖아요. 담임선생님의 브이로그라고 해도 재미없으면 아무도 보지 않죠. 자신도 즐겁고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도 준다면, 색안경을 쓰고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대고 내용이 교육적인지, 수업 준비에 방해가 되는지 등을 따져 물었다간 대번 '꼰대'라는 뒷담화를 듣게 될 테다. 아무리 교육적인 내용이라도 아이들이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않으냐고 되레 반문했다. 수업은 수업이고, 브이로그는 브이로그라는 거다. 

한 아이는 "노골적으로 편애하는 선생님 다음으로 최악은 어떤 선생님인지 아세요? 바로, 수업을 재미없게 하는 선생님이죠. 수업이 재미없으니 아이들이 딴짓하는 건데, 자꾸만 저희더러 산만하다고만 나무라시죠. 수업이 재미있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졸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럴 거라 짐작은 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안타깝기도 하고 내심 서운하기까지 했다. 

브이로그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폰 때문
 
교사의 브이로그 운영을 금지해 달라는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교사의 브이로그 운영을 금지해 달라는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 국민청원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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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이 풀린 듯 아이들끼리의 교사 뒷담화는 이어졌다. 의미 없는 수업은 견딜 수 있지만, 재미없는 수업은 용서가 안 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대놓고 재미없는 수업에는 어떠한 의미도 담을 수 없다고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한 아이는 브이로그를 교사와 데면데면해진 관계를 일순간에 바꿀 수 있는 '특효약'이라고 말했다. 영상을 통해 교사의 일상을 들여다본 뒤 그걸 이야깃거리 삼아 가까워지게 된다는 거다. 꾸며진 일상일지언정 그들에겐 교사가 비밀을 공개하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브이로그 화면에 아이들의 모습이 노출되는 것에 관해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려가 클 것이라는 선입견은 틀렸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이 영상에 담기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되레 반문했다. 그럴 리 없지만, 싫다면 모자이크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에는 이미 '학생이 등장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 학생 본인 및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며, 학교장은 제작 목적, 사전 동의 여부, 내용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촬영 허가 결정을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상태다. 

아이들은 아직 교사의 브이로그 운영을 금지해 달라는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알지 못했다. 짐짓 모르는 척하고 누가 청원했을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학부모일 거라고 말했다. 그들 아니면 그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피시를 들여다보고 있는 걸 단 한 시도 보지 못한다며, 애꿎은 브이로그가 직격탄을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열이면 열 비대면 원격수업을 반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꼬집었다. 브이로그가 아니라, 스마트폰 때문이라는 거다.

학부모들이 교사의 브이로그 운영에 반대하는 이유가 그들의 자녀인 아이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교사가 아이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인데 칭찬하진 못할망정 폄훼해선 곤란하다는 게 보편적 인식이었다. 심심한 학교생활과 지루한 수업의 '보완재'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젊은 교사들의 생각도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과 아이들의 나이 차이보다, 그들과 나의 차이가 더 커서일까. 영상 세대인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여서인지 직접 브이로그를 운영한다는 동료 교사는 없었다. 

그런데, 내 또래의 동료 교사들은 대부분 반대편에 섰다. 우선, 내용이 교육적이지 못하고, 제작하고 운영하느라 본연의 수업 준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댔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데 아이들의 신상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 내용과 정확히 일치했다. 청원한 학부모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사제 교감의 기능을 하고 있다며 교육적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합리적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주장에도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브이로그의 특성상 아이들에게 교육적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잖아도 유튜브의 '홍수'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교총이 언급한 순기능인 동료 교사와의 정보 공유나 연수와 관련된 자료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고 말했다. 브이로그를 두둔할 이유는 못 된다는 거다. 

'구독과 좋아요'가 자존감의 크기라는 아이들

요컨대, 교사의 브이로그에 대한 찬반은, 나이의 경계선을 정확히 그을 순 없지만, 세대에 따라 갈리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학생과 교사 간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저 젊을수록 브이로그에 호의적이고, 나이가 많을수록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새삼 깨달은 게 있다. 젊을수록 자신의 일상을 남들에게 공개하는 데에 문제의식은커녕 별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SNS상 친구를 매일 만나는 같은 반 짝꿍처럼 정서적으로 가깝게 여기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그들은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가 없어서 고민일 뿐, 능력이 있고 기회만 닿으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일상의 공개를 프라이버시 침해로 받아들이는 내 또래의 인식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교사로서, 자존감의 크기를 '구독과 좋아요'로 설명하는 아이들의 삭막한 마음이 애틋하면서도 불편했다. 관심에 목말라하는 그들의 모습은, 예능이 대세가 된 사회와 무기력한 우리 교육의 무기력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지금 교실은 '셀럽'을 꿈꾸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다. 

태그:#교사의 브이로그, #유튜브, #청와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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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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