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좀 덜 하지만, 영화 <미나리>가 한창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 시작할 때 영화 <페어웰>과 비교하는 기세가 등등했다. 비교될 만한 지점은 있다. 둘 다 아시안계 미국인이 만든 영화라는 점이다. 둘 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무엇이 미국의 '외국어' 영화인지 성찰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외에 두 영화는 많은 것이 다르다. 
 
 영화 <페어웰> 영문 포스터

영화 <페어웰> 영문 포스터 ⓒ 오드 AUD

 
페어웰 (The Farewell)
드라마 | 100분 | 2019 | 미국, 중국 | 전체 관람가
감독 룰루 왕 
출연 아콰피나, 자오 슈젠, 티지 마, 다이애나 린, 홍 루, 장용보  

 
거짓말이 웅장해진다

<페어웰>은 주인공 '빌리'(아콰피나)와 '할머니'(자오 슈젠)의 관계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미국과 중국,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화로 애틋하게 서로를 염려하는 두 사람. 하지만 음성통화는 쉽게 거짓말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둘 다 서로에게 염려 섞인 질문을 던지지만, 둘 다 거짓말로 대충 상황을 넘긴다. 이런 시작은 앞으로 영화가 두 사람의 '관계'와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선언처럼 보인다.
 
그 뒤로는 빌리의 처지가 그려진다. 그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해 뚜렷한 소득처가 없는 예술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고 청결하며, 햇빛이 잘 드는 예쁜 집에 살고 있다. 심지어 뉴욕이다! 아무래도 부모님의 든든한 도움이 있는 것 같다.
 
빌리의 부모님은 검소해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알부자겠지? 가느다란 눈으로 둘을 지켜보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할머니가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가족들이 심란해진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할머니를 만나지 않으면, 서로 마주 보고 얘기하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을 다시는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한 '작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할머니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으면서도 그럴 듯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가족들은 할머니 조카의 결혼식을 열기로 한다. 물론 위장이다. 대륙의 기상인가? 거짓말의 규모가 웅장하다. 
 
그런데 이 작전에 빌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가 할머니를 속일 수 없을 것이라 예상한다.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리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할머니와의 대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다.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와 할머니 집에 들이닥친 빌리. 지켜보는 가족들은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는다. 관객들도 함께 마음 졸인다. 빌리가 거짓말을 확 폭로해버리면 어쩌지? 다행히 빌리는 "어떻게 왔어?"라는 할머니 질문에 가벼운 농담으로 답하며 분위기를 전환한다. 
 
 영화 <페어웰> 스틸컷

영화 <페어웰> 스틸컷 ⓒ 오드 AUD

  
과연 지켜야 할 전통일까?

그렇게 첫 번째 '위기'는 넘겼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영화는 사실을 숨기는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닥쳐오는 위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유머는 때론 아이러니한 상황이 주는 슬픔과 뒤섞이고, 슬픔이 닥칠 때 빌리의 고민은 심화된다. "할머니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만약 정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 빌리의 물음에 함께 마사지숍을 방문한 고모는 무신경하게 답한다. "할머니가? 그런 일 없어."
 
빌리를 제외한 가족들은 얼마 남지 않는 시간 동안 마음 편히 계시다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할머니를 위한 거짓말이라고, 이것이 중국의 문화라고 말한다(영화에 따르면 심지어 의사도 이런 '전통'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게 정말 할머니를 위한 거짓말인가? 고민을 멈추지 않는 빌리에게 이모할머니는 사실을 전한다. 할머니 본인도 예전에 누군가에게 같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빌리는 친척들과 교류하며 점점 전통을 수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가까이서 책임을 대신 떠안을 거라면, 그리고 그것이 좋은 결과를 불러 올 가능성이 있다면 거짓말도 괜찮은 걸까? 사랑하는 사람의 알권리를 박탈할지라도? 게다가 이모할머니의 말은 '그러니까 할머니도 당해야지. 할머니의 업보다'라고까지 해석될 여지가 있진 않은가? 이런 전통을 대물림해도 되는 걸까?
 
아시아인 혐오를 멈춰라 #StopAsianHate

영화 <페어웰>은 중국계 미국인이 '모국'으로 돌아간 뒤 발견하는 문화적 차이와 이로 인한 갈등에 초점을 둔다. 촬영은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졌다. 미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미나리>와 다른 점이다. 또한 <미나리>에서도 한국계 미국인 '데이빗'의 혼란과 성장을 그리고 있지만 <페어웰>처럼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양국의 문화 차이를 대립시키지는 않는다.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이민 1세대의 고난을 묘사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는 점에서도 <페어웰>과 다르다.
 
그밖에도 다른 점이 많지만 지면의 한계로, 나머지 차이를 발견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으로 두겠다. 아쉽게도 〈페어웰〉은 넷플릭스에서는 볼 수 없으며, 온라인 영화 대여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다. 비용은 현재 5500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두 영화의 차이점에 주목한 이유를 덧붙인다. "아시아인들 얼굴은 다 비슷한 것 같아. 구별하지 못하겠어" 따위를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백인들이 적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상태에 머무르고자 하는 게으름과, 몰이해와 오해에서 파생되는 혐오는 닿아있다. 서구권에서 아시아인 대상의 증오범죄가 증가하는 현실. 더 많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수작들이 쏟아져 나와, 더욱 정교한 분류 작업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미래를 바라본다(지금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만든 영화가 워낙 적어 <페어웰>과 <미나리>가 비교됐다고 생각한다). 아시아계 작품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환경이 구성되어, 보고 감동을 느끼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그런 이들은 혐오범죄 따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최서윤 님은 <불만의 품격>을 쓰고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
참여사회 최서윤 영화비평 미나리 페어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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