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농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변과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상당히 재미있는 시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원주 DB 프로미, 서울 SK 나이츠 양팀이 부상 및 내부악재 등으로 부진을 거듭하다 6강 탈락의 고배를 마셔버린 가운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전주 KCC 이지스가 예상 밖 파란을 일으키며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장재석(30·204㎝), 최진수(32·203㎝)를 보강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두터운 선수층과 안정된 포지션별 밸런스를 자랑하는 안양 KGC인삼공사는 각각 2, 3위를 차지하며 기대치에 근접한 성적을 올렸다.

인천 전자랜드같은 경우 팀매각과 관련하여 어수선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탄탄한 멤버들과 함께 끝까지 '라스트댄스'를 멋지게 쳐주며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농구 관련 각종 예능, 흥미진진했던 명 경기 등이 맞물려 나쁘지 않은 행보였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현주엽의 학폭논란, 김진영의 음주사고, 기승호의 음주 폭행 등은 불씨를 살려가던 농구 인기에 찬물을 부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다양한 스토리가 공존했던 정규시즌과 달리 플레이오프는 한명의 절대적 '슈퍼맨'에 의해 정리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KGC 외국인선수 자레드 설린저(28·206cm)가 그 주인공이다. 크리스 맥컬러(26·208㎝)의 대체선수로 5라운드 후반에 합류하기 무섭게 팀의 고공행진을 이끌더니 플레이오프 들어서는 이른바 '언터처블'급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6강, 4강 플레이오프는 '설린저의, 설린저에 의한, 설린저를 위한'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역대급 개인 기량에 팀 플레이까지 펼치며 1인 2역, 1인 3역 이상을 해내며 기복 심한 KGC를 일약 무결점 최강팀으로 바꿔놓았다.

이를 입증하듯 KGC는 부산 KT(6강), 울산 현대모비스(4강)를 상대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고 결승까지 올라섰다. 지난 3일 막을 올린 KCC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98-79, 19점 차 대승을 거뒀다. "이대로 가다가는 플레이오프 전승 우승을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놀라움섞인 목소리가 벌써부터 터져 나올 정도다.
 
 자레드 설린저의 합류 이후 안양 KGC인삼공사는 완전히 다른팀이 되어버렸다.

자레드 설린저의 합류 이후 안양 KGC인삼공사는 완전히 다른팀이 되어버렸다. ⓒ 전주 KCC

 
모든걸 바꿔놓은 압도적 존재감, 이런 외인은 없었다!
 
'외국인선수가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KBL내에서 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를 입증하듯 올 시즌 역시 좋은 외인을 보유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허훈, 양홍석, 김영환, 박준영, 박지원 등 좋은 국내자원들을 다수 보유한 KT가 6강에서 맥없이 무너진 데에는 외국인 전력에서 밀렸다는 평가가 많다.

설린저 합류 전 KGC는 탄탄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기복이 심하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김승기 감독 특유의 압박수비를 팀컬러로 어느 팀을 만나도 저득점,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는데는 능했지만 공격력에서 아쉬움을 보이며 강하기는 하지만 우승을 노리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노출했다.

설린저가 들어오자 KGC는 확 바뀌어버렸다. 사실 설린저는 KBL에 왔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빅네임 외인이다. NBA 1라운드 지명에 빛나는 설린저는 빅리그에서 무려 5년간 269경기를 뛴 경력을 자랑한다. 그동안 국내 리그에서 뛰었던 빅네임들이 선수 생활 말년에 KBL에서 뛰었던 것과 달리 그는 나이도 한창 때다. 부상으로 거의 2년간을 뛰지 못했다는 것이 변수로 꼽혔을 뿐 기량과 커리어는 확실한 선수였다.

공백기간 동안 설린저는 살까지 확 빼며 몸상태를 좋게 만들었고 이는 전성기에 가까운 기량으로 KBL에서 뛸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206cm의 큰 신장에 NBA급 개인기량, 정교한 슈팅력과 패싱센스 거기에 ´BQ(바스켓 아이큐)´까지 좋아 경기 흐름을 읽어가면서 플레이한다. KGC에서 전천후 스윙맨으로 활약 중인데, 이미 NBA에서 쟁쟁한 선수들과 골밑 싸움으로 단련된 터인지라 어지간한 빅맨들의 바디 어택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보통 이 정도 팀내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은 거만한 마인드를 가지고 팀플레이를 망치거나 팀원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설린저는 그런 것 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유쾌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가 하면 누구보다도 팀플레이에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KGC 전력을 올려주고 있다.

본인이 나서야 될 때와 나서지 않아도 될 때를 명확히 구분하며 경기에 임하는지라 상대팀 입장에서 약점을 찾거나 멘탈을 흔들기가 매우 어렵다. NBA로치면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을 오가며 에이스, 야전사령관 역할을 모두 해내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KGC팀원들 역시 경기력을 최대치 이상 끌어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는 양희종(37·194㎝)과 문성곤(28·196㎝)이다. 이들의 수비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용 받을 정도로 최고로 인정받는다. 문제는 수비에 비해 빈약한 공격력이다. 김 감독 역시 이 때문에 적재적소에서 이들을 활용하기 어려워할때도 종종 있었다.

이제는 그럴 걱정이 없다. 설린저가 공격을 지휘하고 해결사 역할도 해주는지라 부담을 덜고 수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설린저에게 수비가 몰린 사이 만들어지는 오픈슛 찬스에서도 좀더 편하게 슛을 쏠 수 있어 성공률 또한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희종, 문성곤은 버려 두라'는 수비 전술도 자주 쓰기 애매해졌다.

양희종은 젊은 시절에 비해 활동량은 줄었지만 노련하게 수비를 지휘하고 있다. 문성곤은 특유의 엄청난 활동량을 앞세워 내외곽을 오가며 상대를 밀착마크하고 리바운드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해 KGC 에너지 레벨을 한껏 높혀주고 있는 모습이다.

설린저 효과는 다른 팀원들에게도 고르게 미치고 있다. 설린저가 공격, 수비, 리딩 등 모든 부분에서 전방위로 활약해주자 부담을 덜은 이재도(30·180㎝)와 변준형(25·185㎝)의 움직임이 더 좋아지고 있으며 슈터 전성현(30·189㎝)도 물 만난 고기처럼 최고의 컨디션을 뿜어내는 중이다. 토종빅맨 오세근(34·200㎝)도 우산 효과를 제대로 받고 있다. 설린저로 인해 다들 잘되는 것 위주로 플레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린저가 무서운 또 다른 이유다.

일각에서는 역대 최고 외국인 중 한명이자 KGC 역사상 최고 용병으로 꼽히는 단테 존스(195cm)도 넘어섰다는 분석이 쏟아져나오는 분위기다. 설린저와 마찬가지로 대체외인으로 팀에 합류했던 존스는 2004-2005시즌 후반, 하위권에 처져 있던 안양 SBS(KGC의 전신)의 15연승을 진두지휘 하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레전드다. 당시 기세만 보면 당장이라 우승을 차지할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4강 플레이오프에서 KCC의 벽에 가로막혀 브레이크가 걸린 바 있다.

공교롭게도 KGC가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상대 역시 KCC다. 현재 분위기만 봤을 때 이번에는 KGC가 이길 공산이 크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KGC는 차원이 다른 외인 설린저가 이끄는데 반해 KCC는 정규시즌 상승세의 일등공신 타일러 데이비스(24·208㎝)가 팀을 떠난 상태고 토종 에이스 송교창(25·201cm)마저 부상으로 인해 정상적 몸 상태가 아니다.

KCC가 풀전력이라도해도 설린저가 버티는 KGC를 이기기 힘들다는 평가 속에서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독보적인 한명이 빛나는 설린저 시리즈에서 KCC가 기적의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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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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