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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오늘'이라는 김밥을 만다. 언젠가 잘라보면 그 속에 삶의 무늬가 새겨 있을 것 같다.
▲ 삶이그리는무늬 매일매일 "오늘"이라는 김밥을 만다. 언젠가 잘라보면 그 속에 삶의 무늬가 새겨 있을 것 같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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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러 가지 경험과 다채로운 감정의 집합체다. 힘들었던 날들, 눈부시게 빛나던 날들, 고통스럽던 시간과 터질 듯한 기쁨이 흩뿌려진 시간이 뒤섞여 있다. 온갖 경험과 사건, 감정과 기억이 뒤엉켜 삶의 무늬를 만든다. 언젠가 그걸 잘라 단면을 보면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구별 없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나름대로의 예쁜 빛깔을 만들어낼까.

하원 하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고 집으로 가는 길, 저녁에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마트에 들러 단무지와 우엉을 샀다. 집에 있는 당근과 오이, 치즈 정도를 넣어 간단히 만들어 먹을 심산으로. 거기다 식빵과 몇 가지 밑반찬을 샀더니 한 손에 든 장바구니가 꽤 묵직했다.

놀이를 하고 마트까지 돌아서인지 아이가 피곤해했다. 힘들다고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관심을 돌리려고 재미난 그림을 그려 넣은 차를 가리켜 보이고, 기억도 나지 않는 시시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느라 신호등이 바뀐 줄도 몰랐다. 뒤늦게 초록불을 보고 놀라서 뛰어가며 우리 둘이 얼마나 깔깔거리며 웃었는지.

애매한 순간들을 달래고 어르며, 아이와 둘이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좋다. 어떤 때는 아이가 칭얼거리고, 때론 내 마음이 들끓기도 한다. 그래도 혼자 휘휘 걸어가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무엇도 마음에 담지 못하는 것보다 작은 아이와 둘이서 어정어정 가면서 쓸모없는 것을 바라보고 수군덕거리며 가는 게 좋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아닌 게 무엇이 되기도 한다. 둘 사이에서 말로 명명되고, 감정으로 공유되는 순간 아무것이 무엇이 된다. 둘이 함께라서 그렇다.

집에 도착해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바닥 청소를 대충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그리고 당근을 채 썰어 기름에 달달 볶으니 김밥 만들 준비는 끝! (오이는 그 사이 물러서 그냥 버리기로 했다.) 도마 위에 김을 놓고 한 김 식힌 밥을 올려 살살 펼쳤다. 그러면 아이가 그 위에 단무지와 우엉, 당근과 치즈를 가지런히 배열했다.

돌돌 말아 바로 잘라먹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맛있었다. 이 간단한 재료로도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니. 몇 개 주워 먹고 아이 접시에 놓아주었다. 까만 김에 새하얀 밥, 노란 단무지에 갈색 우엉, 주황색 당근에 뽀얀 치즈, 여러 가지 색깔의 재료가 한데 묶여 예뻤다. 별거 아닌 재료들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어 맛과 색을 만들었다.

낮에 놀이터에서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바람에 마음이 조금 껄끄러웠다. 남편이 회사와 일에 대해 흘렸던 말에 속이 상하기도 했다. 아이와 집에 오는 길엔 웃음을 토해냈고 저녁엔 알콩달콩 김밥을 말아먹었다. 하루 사이 나를 오갔던 여러 빛깔의 마음도 '오늘'이라는 김에 단단하게 싸인 기분이다.

잘 지어진 밥처럼 무탈한 일상이 있고 얇지만 튼튼한 김처럼 반듯한 마음만 있다면, 그 흔한 재료로도, 어쩌면 조금 시들고 못난 재료로도 '오늘'이라는 김밥을 완성할 수 있다. 거기에 한 두 개 맛의 균형을 잡아줄 기분 좋은 재료가 더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삶이란 그런 걸까. 평범한 재료로 말은 김밥으로도 맛과 멋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일상이라는 시시한 재료로 저마다의 무늬를 새기고 빛을 내는 것. 못마땅하고 속상하고 답답했던 순간과, 즐겁고 신나고 부풀어올랐던 시간이 뒤섞여야 어떤 맛이든, 어떤 색이든 낼 수 있다.

김 하나로도 안되고, 밥만으로도 만들 수 없다. 김과 밥, 그리고 몇 가지의 속재료는 있어야 김밥이 된다. 얇기도 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질긴 시간을 바탕에 두고 하얗지만 오묘한 맛을 낼 수 있는 마음이라는 걸 올려 삶이 건네는 다양한 풍경을 담아 본다. 매일매일, '오늘'이라는 김밥을 만다. 언젠가 잘라 보면 기대했던 것 이상의 맛과 색이 나려나.

오늘 하루가 김밥 같았다. 별거 아닌 재료로 참 달게 맛을 냈던 김밥. 맛있게 잘 먹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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