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학폭 논란 바람을 타고 그 비슷한 사건이 화두에 올랐다. 결이 조금 다르지만 '아이돌 그룹 내 왕따' 사건이다. 현재는 여성 6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에서 한 멤버가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탈퇴했다는 주장이 올라온 것이 시작이었다.

소속사는 허위사실이라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누리꾼들이 나서서 따돌림 정황이 의심되는 영상들을 올리고 퍼 날랐다. 주동자로 보이는 멤버가 논란 전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라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가 거셌다. 하지만 비난은 주동자가 아닌 다른 멤버에게도 뻗쳤다.

가담하고, 웃고, 방관한 그들도 똑같은 '가해자'라는 이유였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제3자의 역할에 대한 문제이다. 집단 폭력이나 폭행 혹은 따돌림 사건에는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제3자가 있다. 과연 학폭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일까? 사건의 당사자는 두 명만 있을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학폭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학폭 현장에 보이지 않는 가해자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방관자들은 어떻게 그 사건을 자신의 머리에서 지워나가는지 알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목소리의 형태>(2017)다.
 
 오시마 요시토키 원작, 야마다 나오코 감독 <목소리의 형태> 포스터

오시마 요시토키 원작, 야마다 나오코 감독 <목소리의 형태>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청각장애인 '쇼코'가 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처음에 반 아이들은 같이 필담을 하는 등 쇼코에게 친절하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흐르자 점점 쇼코를 귀찮아하고, 거리를 두고, 후에는 욕하고 조롱한다. 교실 분위기가 바뀌면서 같은 반 친구 '이시다'는 노골적으로 쇼코를 괴롭힌다. 그는 장애로 발음이 어눌한 쇼코를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고, 물을 뿌려서 홀딱 젖게 만들고,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이시다가 쇼코에게 강제로 뺏어 창밖으로 던져버린 보청기는 그녀가 전학 와 있던 5달 동안 무려 8개였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쇼코의 엄마는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제안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직접 가해자인 이시다에게 왕따의 모든 책임이 넘어간 것이다. 함께 쇼코를 욕하고 괴롭혔던 친구들은 이시다를 '왕따 가해자'로 낙인찍는다. 쇼코는 다른 곳으로 다시 전학을 가고, 쇼코가 떠난 자리에는 이시다가 앉게 된다. 아이들은 쇼코를 대하듯,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이시다를 괴롭힌다.
 
 학교 폭력 위원회, 이시다는 사건의 유일한 가해자가 된다.

학교 폭력 위원회, 이시다는 사건의 유일한 가해자가 된다. ⓒ (주)디스테이션

 
시간이 흐르고 이시다는 고등학생이 된다. 그는 여전히 외톨이고 대인기피증까지 앓고 있다. 이시다는 뼈저리게 깨닫는다. '내가 저지른 죄는 그대로 나에게 돌아온다.' 그는 줄곧 마음에 걸렸던 쇼코를 찾아간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 그것은 그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기억과 현실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학폭 가해자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학교 폭력 가해자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이것은 일종의 영화적 설정이다. 관객으로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면 감정 이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이중감정을 경험함으로써 방관자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사건의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을 보며 또 다른 가해자를 알게 된다. 쇼코가 무리에서 겉돌게끔 했던 아이, 옆에서 함께 욕했던 아이, 이시다가 가해행위를 할 때 웃으며 재미있어했던 아이, 엮이기 싫어서 못 본 척했던 아이들이 학폭 위원회가 열리자 자신은 지금껏 일어난 일에 전혀 무관한 사람인 척 이시다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나쁜' 이시다를 괴롭혀 또 다른 왕따 피해자로 만든다. 고등학생이 된 그들은 여전하다. 여전히 자신은 깨끗하고 이시다만이 죄인이다. 그들은 피해자가 느꼈을 슬픔과 좌절을 알지 못한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끝끝내 이시다가 잘못했다고 하는 그들을 보면 "과연 누가 진정한 가해자인가?"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포기하지 않고 쇼코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시다

포기하지 않고 쇼코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시다 ⓒ (주)디스테이션

 
집단 괴롭힘·폭력 현장에서는 직접 가해자만으로 사건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이송미 경무계 순경이 쓴 칼럼(울산신문 2018.03.22)에 따르면 가해자, 피해자 외에도 '가해자보다 덜 주도적이지만 가해행위를 도와주는 가해조력자, 가해를 직접 하지는 않지만 구경꾼을 모아오거나 가해자를 자극해 가해 상황을 더 강화하는 가해강화자, 그 모든 것을 방관하는 방관자'까지 다양한 집단이 존재하는 걸 알 수 있다.

현실은 더 심하면 심했지 영화와 다르지 않다. 그간 우리는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너무 많은 '자칭 제3자'를 지나쳤을지 모른다.

그 제3자는 누구일까? 뉴스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거나, 스스로 생명을 끊는 잔혹한 사건이 보도되면 적지 않은 이들이 다음 중 한 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신경쓰지 않거나, 가해자를 비난하고 속으로 자신은 그런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심리적 정당성을 얻거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을 돌아보거나. 물론 여기에 속하지 않는, 혹은 속했다가도 이내 심경의 변화를 겪은 뒤 자신의 행동을 달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단정하기 어렵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가해자는 나쁘고 나는 무결하다'고 쉽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학폭이 있을 때 방관하던 옆 친구들 아니었을까? 이시다를 괴롭혔던 걸 정당하다고 느끼는 친구들 아니었을까? 어쩌면 학폭과 괴롭힘, 집단 따돌림의 제3자는 우리가 아닐까?

스포츠스타, 연예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집단 따돌림과 폭력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영화는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너에게 닿을 수 없는 <목소리의 형태>. 우리의 목소리는 서로에게 닿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있다. 이 미끄러짐은 소외와 차별을 만든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새로운 관계로 들어간다. 이 작품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의 보호라는 일반적인 입장에서 더 나아가 제3자인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목소리의형태 애니메이션영화 애니메이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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