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대진이 드디어 완성됐다. 전통의 명가 전주 KCC이지스와 화수분 농구로 유명한 안양 KGC인삼공사가 7전 4승제로 최후의 승자를 다투게 된다.

기세는 KGC 쪽이 더 좋다. KCC는 정규리그 우승팀답지않게 4강 플레이오프에서 인천 전자랜드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1, 2차전을 연달아 잡아내며 시리즈를 쉽게 가져가나 싶었지만 이후 3, 4차전을 내줬고 5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혈전 끝에 힘겹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반면 KGC는 부산 kt(6강), 울산 현대모비스(4강)를 상대로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고 결승까지 올라섰다. 이재도(30·180㎝), 변준형(25·185㎝)이 이끄는 가드라인, 양희종(37·194㎝)과 문성곤(28·196㎝)이라는 특급 디펜더의 존재, 현시점 국내 최고 슈터 전성현(30·189㎝)과 부활의 날개짓을 펼치고 있는 국가대표 빅맨 오세근(34·200㎝) 등 포지션별 밸런스 매우 좋다.

반면 KCC는 중요한 순간 발목을 잡고 있는 부상이 아쉽다. 상승세 주역이었던 1옵션 외인 타일러 데이비스(24·208㎝)가 정규시즌 도중 팀을 떠난 데 이어 플레이오프 들어서는 토종 에이스 송교창(25·201cm)이 부상에 신음하고 있다. 4강 4차전에서 어렵사리 돌아왔지만 몸 상태가 좋지 못한지라 챔피언결정전에서 정상적인 컨디션을 발휘할지 의문스럽다.

많은 팬들과 언론에서는 KGC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분위기다. 비록 정규리그에서는 3위에 그쳤지만 기본적으로 우승가능한 전력을 갖춘 데다 정규시즌 후반부터 대체외인으로 들어온 자레드 설린저(28·206cm)가 역대급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라 대적할 팀이 없어 보인다.

미 프로농구(NBA)에서 정규리그 269경기를 소화한 경력을 가진 설린저는 이번 플레이오프 6강과 4강, 6경기에서 평균 38분 3초를 뛰며 30.8득점, 12.2리바운드, 3.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단순히 개인 공격력만 좋은 것이 아닌 팀전력을 끌어올리는 타입의 플레이어인지라 상대 팀에서는 철저히 설린저 봉쇄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때문에 현재의 설린저를 두고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벌써 부터 '역대 최고 외인이다'는 극찬이 쏟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에런 헤인즈는 KBL 최장수 외국인선수다

에런 헤인즈는 KBL 최장수 외국인선수다 ⓒ 전주 KCC

 
KBL 대표 장수 외국인선수 맥도웰과 헤인즈
 
역대 최고 외인을 논할 때 기록적인 부분에 중점을 놓고 본다면 '탱크' 조니 맥도웰(1971년생·194cm)과 에런 헤인즈(1971년생·199cm)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KBL에 입성할 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기복 없는 경기력을 내세워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대표적 장수 외인들이다.

맥도웰은 초창기 KBL의 트렌드 자체를 바꿔 버릴 만큼 인상적인 흔적을 남겼다. KCC(당시 현대) 전설의 시작은 맥도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원체 오랫동안 유명세를 탓던지라 팬들 사이에서의 이름값이나 유명세만 놓고 따졌을 때는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다.

맥도웰의 가장 무서웠던 점은 신장 대비 골밑 파워였다. 고릴라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가슴 둘레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상대팀 골밑을 말 그대로 폭격했다. 장‧단신제로 인해 비슷한 신장의 타 팀 선수들이 가드 혹은 포워드형이었던 것에 비해 파워 포워드였던 맥도웰은 포스트를 마치 내 집처럼 드나들며 센터 용병과 함께 KCC표 '파워 트윈타워'를 형성해 냈다.

맥도웰은 미국 무대에서 뛸 당시에도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으며 테크닉적으로도 특출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강한 몸싸움 능력과 스피드, 파워를 동시에 겸비한 기본기는 국내리그에서만큼은 공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3년 연속 외국선수 MVP를 수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그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만하다. 맥도웰의 대 성공 이후 한동안 KBL에서는 단신 빅맨이 유행하기도 했다.

헤인즈는 KBL 최장수 외국인선수다. 2008-2009 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 에반 브락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처음 국내리그에 들어 온 이후 울산 현대모비스, 창원 LG, 서울 SK 등에서 뛰며 최고의 누적기록 제조기로 명성을 떨쳤다.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전주 KCC에서 3번째 외국인 선수로 뛰며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헤인즈는 이른바 ´BQ(바스켓 아이큐)´가 뛰어난 선수다. 파워나 스피드에서 압도적이지도, 그렇다고 탁월한 운동신경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지만 탁월한 센스와 경기를 읽는 눈으로 경기의 흐름을 지배할 줄 안다.

헤인즈는 KBL내에서도 많은 약점을 노출했다. 포워드 외국인선수면서 슛 거리가 길지 않다. 빅맨도 아니면서 3점 슛에 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 배경에는 외곽 슛 부재가 컷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인즈는 매 시즌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거칠게 몸싸움을 하지 않고도 현란한 스텝과 뛰어난 테크닉으로 빈 공간을 돌파해 골밑슛을 넣고 미들슛을 적중시키는 등 쉽게 득점을 올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센스와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리딩능력도 빼어난지라 동료들과의 팀플레이도 척척 소화한다.

빅맨 수비에서 종종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SK 시절 3-2 드롭존 지역방어의 중심에 섰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팀 디펜스에 대한 이해도 워낙 높아 장점으로 단점을 덮어버렸다. 맥도웰이 파워로 KBL을 지배했다면 헤인즈는 센스를 통해 롱런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묵묵한 '효자 외인' 민랜드와 윌리엄스
 
맥도웰과 헤인즈는 장수 외국인 선수로서 KBL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이 역대 최강이었냐?'는 질문에는 다소 머뭇거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성적, 누적 기록 등만 놓고 봤을 때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순수하게 기량 자체만으로는 최정점에 놓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약사 자격증 소지자로도 유명했던 '민둘리' 찰스 민랜드(1973년생·195cm)는 KCC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힌다. 이스라엘 프로농구리그 득점왕 2회, 2003년 이스라엘 프로농구리그 정규리그, 올스타전 MVP 등 국내리그 입성 전부터 화려한 경력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묵직한 이름값을 증명하듯 KCC에서도 펄펄 날며 역대급 특급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민랜드는 파워, 스피드 등 어느 한쪽에서 특출나지는 않았으나 특유의 능글능글한 꾀돌이 플레이로 내외곽에서 고르게 활약했으며 팀 전술 이해도나 패싱게임에도 강점을 보였다. 컨디션 여부에 상관없이 팀에 공헌해 줄 수 있는 타입으로 어떤 팀이든지 탐낼 만한 농구 기술자였다는 평가다.

고 크리스 윌리엄스(1980년생·194cm)는 양동근과 함께 울산현대모비스의 전성시대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패스를 동료들에게 건네주었고 복잡한 유재학 감독의 공수전술을 모두 이해하고 실행에 옮기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기량이 걸출한 대부분 용병들이 나홀로 플레이를 펼칠 때 윌리엄스는 자신의 공격을 포기하면서까지 동료들을 살려주는 데 주력했다. 외국인 포워드지만 윌리엄스가 코트에 나서게 되면 특급 1번들이 있는 듯한 효과가 발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양동근과의 2-2플레이는 알고도 막기 힘든 특급 전술이었다.

비록 슛거리가 짧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윌리엄스는 개인 공격력도 탁월했다. 개인기가 워낙 좋은지라 '플로터 슛', '훅슛, 언더 슛 등 다양한 슛을 자유로이 구사하며 상대 수비진의 맥을 빼놓았다. 포스트업 능력 또한 매우 뛰어나 자유롭게 골밑을 폭격하기도 했다. 공격력과 패스능력을 겸비한지라 완벽하게 윌리엄스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KBL대표 '포인트 포워드'에 딱 어울리는 선수였다.

민랜드, 윌리엄스는 무엇보다 감독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었다. 요란하고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며 팀을 승리로 이끄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랜드와 윌리엄스가 뛰던 당시 소속팀은 전성기를 구가하며 효자 외인 덕을 톡톡히 봤다.
 
 
 전주 KCC 라건아(왼쪽)와 안양 KGC인삼공사 자레드 설린저는 각기 다른 스타일로 소속팀을 이끌고있는 1옵션 선수들이다.

전주 KCC 라건아(왼쪽)와 안양 KGC인삼공사 자레드 설린저는 각기 다른 스타일로 소속팀을 이끌고있는 1옵션 선수들이다. ⓒ 전주 KCC

 
핏교주‧단선생 '고급 강의', 이번에는 설교수?
 
그간 KBL에서 활약했던 외인 중에는 이른바 '짧고 굵게' 아주 강한 임팩트를 남긴 케이스가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핏교주' 피트 마이클(1978년생·199cm)과 '단선생' 단테 존스(1975년생·195cm)다.

존스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외국인 선수 중 한명이다. 1996년 NBA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1순위로 뉴욕 닉스에 지명된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른바 클래스에서 타 외국인선수를 압도했다. 워낙 테크닉이 뛰어난 선수답게 장신, 단신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매치업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특히 거리불문하고 터지는 페이드 어웨이 슛은 팬들 사이에서 '사기더웨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단순히 잘하는 수준을 떠나 한수 위 기량으로 상대를 가르치는 듯한 퍼포먼스 때문에 '단선생'이라는 별명까지 붙게 됐다.

마이클은 탄탄한 웨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 스피드를 통해 공간을 찢어버리는 듯한 강력한 돌파력을 선보였다. 드리블과 스탭은 물론 정확한 중장거리 슈팅력까지 뽐냈던지라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수비가 거의 불가능했다. 팀플레이를 무시한 채 혼자 농구한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개인 기량 만큼은 역대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아쉽게도 존스와 마이클은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존스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민랜드가 버티고 있던 KCC에게 무릎을 꿇은 바 있으며, 마이클 역시 윌리엄스가 이끌던 현대모비스에게 고배를 마셨다. 개인 기량에서는 밀리지 않았으나 팀 완성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설교수' 설린저와 KGC는 최고의 궁합까지 보이고 있다. 최고의 슈터, 최고의 수비수, 토종 빅맨까지 탄탄하게 버티고 있는지라 설린저가 위용을 뽐내기 최적의 조건이다. 존스, 마이클과 가장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과연 '탈 KBL 수준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설린저는 우승 전력의 팀을 이끌고 끝판왕의 위용을 과시 할 수 있을까. 역대 최고 임팩트를 뽐내고 있는 설린저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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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레드 설린저 전주 KCC 결승진출 인삼공사 에이스 설린저 프로농구 역대최고 외국인선수 설교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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