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TV '찐경규'의 한 장면.

카카오TV '찐경규'의 한 장면. ⓒ 카카오TV

 
웹예능 <찐경규>는 누가 뭐래도 카카오TV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다. 예능 대부 이경규의 첫 번째 모바일 예능 도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이 프로그램은 장기간의 휴방 또는 시즌제 돌입 없이 벌써 8개월째 매주 수요일마다 어김없이 시청자들을 만나러 온다. 

​론칭 초반 방영분에서 '나무위키 고치기', '고독한 채팅방' 등 이경규의 다양한 젊은 세대 체험기가 중심을 이뤘다면 지난해 12월 이후론 이수근, 김희철, 장도연 등 후배 예능인들을 초대해 술 한잔 나누면서 그들과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간헐적 고정코너 '취중찐담'이 <찐경규>의 중심을 잡아주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가장 최신 공개분인 지난 21일엔 지난해 연예대상 이변의 주인공 김숙이 등장해 이경규와 티키타카 토크로 큰 웃음을 줬다. 

드디어 만난 KBS 대상 경쟁자​

지난 '2020 KBS 연예대상'의 유력한 대상 후보자는 바로 이경규였다. 각종 매체에서도 그의 수상을 점치는 기사가 대거 쏟아졌고 당사자 역시 내심 '이번엔 받지 않겠나?'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대상의 주인공은 후배 김숙이었다. 이후 이경규는 출연하는 예능마다 시상식 당일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면서 억울함(?)을 유머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자신의 '10년 만의 KBS 대상 수상' 꿈을 좌절시킨 김숙을 초대한 사실 자체도 제법 흥미로워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입장과 동시에 대상 트로피를 이경규 얼굴 앞으로 내민 김숙의 당당함과 이경규의 속상함은 절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재미를 만들어냈다. 물론 여기에 결코 밀릴 대부님이 아니었다. 이경규는 똑같은 모양으로 제작된 연예대상 '핫이슈 프로그램상' 트로피를 그 옆에 둔 채 나름의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한다.

'취중찐담' 전속 바텐더인 모르모트PD(권해봄)가 추천한 칵테일을 한 잔 씩 마시며 두 사람이 나눈 대화에는 의외의 훈훈함, 그리고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웃기는 데는 휴일이 없다
 
 카카오TV '찐경규'의 한 장면.

카카오TV '찐경규'의 한 장면. ⓒ 카카오TV


시상식 후 4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김숙은 "내가 받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KBS 사장님부터 수많은 예능인들이 이경규의 대기실을 찾았고 심지어 김숙의 소속사 대표까지도 이경규가 수상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당일 분위기는 '이경규=대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대상은 김숙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녀는 그 이후로도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면서 겸손함을 표했다. 

'이경규와 2MC vs 유재석과 2MC'라는 질문에 김숙이 거침없이 후자를 택하는 등 유쾌한 칵테일 토크가 무르익을 무렵, 이야기는 예능인의 휴식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김숙은 "내가 천성이 약간 게으른 아이다"라면서 '몸도 좀 아픈 것 같고 피곤하니 한달 정도 쉬어볼까한다'라는 속내를 털어 놓았다. 이 말을 들은 이경규의 답변은 단호했다.

​"쉬면 안돼! 쉬면 떠내려가. 너 이러다가 대상 뺏긴다."

​이경규는 수 년 전 심혈관질환 때문에 심장에 스텐트 시술을 받은 바 있었다. 그는 "녹화 끝내고 가서 시술하고 퇴원하자 마자 바로 방송했어"라면서 그때의 일을 회상한다. "재충전이 어딨나, 웃기는 데 휴일이 없다" 등 독특한 그의 철학은 여기서도 또 한 번 언급됐다. 내가 잠시 쉬는 사이 빈 자리가 다른 누군가의 차지가 되는 게 비일비재한 방송가의 현실을 접한 이경규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다.  

"내 직업이니까"... 예능 대부의 신념

한편 요즘 <찐경규>에선 예능 대부의 숨은 속내, 의외의 면모가 종종 드러나 눈길을 끈다. 탁재훈, 김희철 등과 술잔을 기울일 땐 지난해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방송을 이어간 이유를 "내 직업이니까"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또 초대손님으로 등장한 딸 예림이와의 대화에선 "내 생애 가장 어색했던 자리, 소주 먹고 정신 잃었다"라고 상견례 후일담을 털어놓으면서도 "네가 비빌 언덕은 아빠다"라며 딸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경규의 뼈 있는 조언은 타 방송과의 컬래버레이션에서도 종종 목격되곤 했다.  JTBC <할명수>(박명수),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서장훈, 이수근) 등 후배들과의 협업에선 특유 버럭, 그리고 호통 개그와 더불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예능 조언으로 출연자들과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그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환갑 넘은 나이임에도 군부대 입소해 병영 생활을 몸소 체험하는가 하면 요즘 대세 걸그룹 브레이브걸에게 직접 '롤린' 댄스를 배우면서 '규라인' 이윤석, 김우석, 모르모트PD 등과 보이그룹(?) 브레이브하트로 변신하기도 했다. 잠깐 동안의 민망함은 어느새 색다른 볼거리와 웃음으로 귀결된다. 40년 관록 예능인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경규도 한때 ​시시각각 변화하는 방송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때론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모두가 그와 같은 삶을 살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 점 하나 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매번 버럭과 호통이 끊이지 않는 이경규지만 방송에 임하는 자세 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다는 것을.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찐경규 이경규 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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