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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96개 단체로 구성된 '5.18민주화운동 폄훼 매일신문 대책위'는 1일 오전 매일신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자 사퇴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대구지역 96개 단체로 구성된 "5.18민주화운동 폄훼 매일신문 대책위"는 1일 오전 매일신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자 사퇴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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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그림'에 분개했지만, 나는 '내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한 대구 <매일신문>의 만평 이야기다. 최근 작가와 신문사가 공식 사과했지만, 책임자 사퇴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지역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만평은 5.18 당시 신군부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치도곤당한 광주 시민을 '세금 폭탄'을 맞은 고가의 1주택 소유자에 비유했다. 9억 원이 넘는 집에 산다면, 우리나라에서 상위 몇 % 안에 드는 부자임이 틀림없다. 코흘리개 아이들조차 '10억 원만 준다면 기꺼이 감옥에 가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세상 아닌가.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로 신음하는 현실에서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정부로서 당연한 조처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아예 '수퍼 리치'들이 앞장서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라고 요청하는 상황이다. 공동체를 걱정했다기보다 자신의 기업을 유지하는 데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노블리스 오블리쥬(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에서 부자들의 자발적 증세 요구를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부유층을 마치 사회적 약자인 양 묘사한 만평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가 어디까지 천박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부자의 '용병'을 넘어 '첨병'이 된 우리 언론의 자화상이다.

낯 뜨거운 만평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림'은 무고한 광주 시민이 학살된 가슴 아픈 현장을 패러디했다는 점에서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내용'은 5.18의 정신을 조롱하고 왜곡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모욕적이다. 5.18을 폄훼할 의도가 없었다는 작가의 사과에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명토 박건대, 우리가 기억해야 할 5.18의 의의와 가치는 나눔과 공동체 정신에 있다. 계엄군의 무차별 폭력에 쓰러진 이웃을 위해 중고생들조차 헌혈에 앞장섰고, 시장 상인들은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지어 건넸다. 5.18 기념재단이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 이름을 '주먹밥'으로 정한 것도 그래서다.

열흘간의 항쟁 동안 철저히 고립된 광주에서 단 한 건의 강절도 사건이 없었다는 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었고,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챙겼다. 계엄군의 진압을 앞둔 항쟁의 마지막 밤, "가면 죽는다"고 말리는 가족의 손을 뿌리치며 "이웃의 죽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다"고 도청에 들어간 시민들의 의로움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선생님, 그런데 그거 아세요?"

5.18 연구에 줄곧 천착해온 한 사회학자는 당시 광주를 '절대 공동체'라고 명명했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든 공동체의 원형을 보여준 사례였다는 평가다. 그것은 기존의 정치적, 사회적 연구 방법으로는 5.18의 전개 양상을 해석할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당시 광주시민이라면, '세금 폭탄' 운운하며 반기를 들기는커녕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부를 나눴을 게 틀림없다. 해당 작가는 "5.18을 폄훼하거나 조롱할 의도가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는 부자의 편에 서서 나눔과 공동체라는 5.18의 정신을 훼손하고 부정했다. 5.18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는 광주시민으로서 작가의 사과를 수용하기 힘든 이유다.

"저도 관련 기사를 읽고 순간 화가 치밀긴 했지만, 그 작가가 조금 억울할 것도 같아요. 5.18을 버젓이 왜곡하고 조롱해온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요? 그들에 견준다면, 지금 여론의 뭇매가 지나치다 싶기도 해요."

수업 시간 만평 내용을 지적했더니, 한 아이가 짐짓 해당 작가를 두둔하는 듯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이 즐겨보는 유튜브에는 해당 만평보다 열배 백배는 더 심한 주장과 영상들이 나돌아다닌다면서, 정작 그것들은 방치한 채 지역신문에 실린 그림 하나에 과민한 반응 아니냐는 거다. 그러면서 또래들에게 제법 인기라는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만평이 실린 <매일신문>이 대구 지역의 유력 일간지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구가 아니면 어느 곳에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만평을 실을 수 있겠느냐며 키득거렸다. 안타깝게도, 대구는 이미 아이들의 머릿속에서조차 '수구의 본향'으로 낙인찍힌 듯했다.

그래도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구의 아이들도 유튜브로 세상을 보지, 종이 신문에 실린 만평 따위에 눈길을 주진 않는다는 거다. 기존의 신문과 방송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면서, 오히려 유튜브 등 SNS를 통한 역사 왜곡 사안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해당 작가와 신문사에 대해선 퇴출과 불매운동 등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 조처라는 뜻에서다. 한편, <매일신문>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일베'와 같은 극우 성향 아이들의 '아지트'가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선생님, 그런데 그거 아세요? <매일신문>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운영하는 언론사라는 것을요. 소속 작가가 5.18을 대놓고 조롱하고 모욕을 주는데도 왜 불의에 맞서온 신부님들이 가만히 잠자코 계실까요?"

아이들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대구경북 1등 신문"을 자처하는 <매일신문>의 소개글. <매일신문>의 발행인(대표이사)은 1990년 사제 서품을 받고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이상택 신부이다.
 "대구경북 1등 신문"을 자처하는 <매일신문>의 소개글. <매일신문>의 발행인(대표이사)은 1990년 사제 서품을 받고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이상택 신부이다.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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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대개 천주교 하면 '박해'와 '정의'를 떠올린다. 서구 열강의 침략 과정에서 숱하게 일어난 천주교 박해 사건을 역사 수업 때 배웠고, 우리나라 천주교의 중심인 명동 성당이 민주주의의 성지로 각인돼 있어서다. 더욱이 몇 해 전 방한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의로운 이미지도 한몫하고 있다.

특히, 이곳 광주의 아이들에게 천주교의 성직자들은 '정의의 사도'다. 5.18 당시 광주의 신부들이 시민의 편에 서서 신군부의 폭력에 의연히 맞섰다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이후에도 진상규명을 위해 발 벗고 나서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는 모습도 봐왔다. 신군부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최초로 증언한 이도 신부라는 걸 대부분 알고 있다.

기실, 5.18 직전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지명 수배 후 붙잡혀 5.18 진상규명과 제소자 인권 보호를 위해 옥중 투쟁하다 사망한 박관현의 장례식이 거행된 곳도 천주교 성당이었다. 당시 금남로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지켜본 광주가톨릭센터는 지금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곳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5.18 관련 사료가 보관돼 있다.

요컨대, 천주교를 떼어놓고는 5.18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지금도 해마다 5월이면 광주의 성당마다 5.18 추모 행사가 열리고, 성직자와 신자들 모두 희생자 영령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기도한다. 5.18은 천주교에 빚졌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천주교 역시 5.18을 만나 인권과 정의, 평화의 종교로 각인됐다. 그런 천주교가 운영하는 언론사에서 5.18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만평을 신문에 버젓이 내놓는다는 걸 아이들조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건 그래서다. 단정적으로 답하긴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두루 수긍할 만한 단서는 있다.

얼마 전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이끌었던 이문희 대주교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주교 내의 강경 보수 인사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사학법 개정에 맞서 학교 폐쇄라는 강수를 두며 저항했던 인물이다. 참고로,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 시절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 의원이 그의 아버지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지만, 박정희와 육영수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 대구대교구의 주교좌 본당인 계산대성당이다. 그래선지 유신 독재 체제를 두둔하는가 하면, 전두환의 신군부가 국회를 해산시킨 뒤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에 교구 소속 신부들이 버젓이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례 때문인지, 일부에서는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대구 경북 지역 보수화의 요람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이문희 대주교의 장례 미사 때 야당의 원내대표는 그를 일컬어 '대구, 경북을 지탱해온 기둥'이라 상찬했고, 현직 대구시장은 '대구 지역의 큰 어른'이었다며 추모했다. 교구 안팎으로 강경 보수 일색의 분위기 속에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천주교는 교구장, 곧 주교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이른바 '순명'의 종교 아닌가.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 이번 사달에 왜 잠자코 있느냐는 아이들의 질문은 '정의의 사도'로서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답하는 게 맞을 성싶다. 이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교사랍시고, 한낱 신자인 내가 어쭙잖게 답변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명쾌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태그:#매일신문 만평, #5.18 민주화운동, #천주교 대구대교구, #이문희 대주교, #절대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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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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