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에서 방송중인 드라마 <나빌레라>는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일흔의 나이에 발레에 도전하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심덕출(박인환)은 은퇴한 우편집배원으로 평생을 가족을 위하여 묵묵히 헌신해온 성실하고 온화한 인물이지만, 생계를 위하여 어린 시절의 꿈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아픔이 있다.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하고싶은 일은 해보고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덕출은 주변의 반대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젊은 발레리노 이채록(송강)은 덕출과 세대를 뛰어넘는 사제 관계를 이루게 된다.

20대 초반의 불안정하고 방황하는 청춘을 대표하는 채록은, 처음엔 덕출을 무시하지만 "죽기 전에 날아오르고 싶다"는 덕출의 진심과 정성을 느끼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채록이 덕출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스승이라면, 덕출은 채록의 상처를 보듬고 이해해주는 인생의 스승이다. 혹독한 경쟁 사이에서 가족의 온전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채록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대변하는 덕출에게서 따뜻한 진짜 어른의 모습을 배워간다.

<나빌레라>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 대하여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극중 주인공은 일흔 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신체적 제한 때문에 자신의 꿈에 도전하는데 시작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필 수많은 분야중에 나이와 신체능력의 차이가 유독 두드러지는 발레라는 테마를 다뤘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실 덕출이 발레에 도전하는 데 있어서 나이와 신체적 문제보다도 더 극복하기 힘든 것은 바로 주변의 시선일 것이다. 극중 덕출은 발레를 시작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나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도 선뜻 밝히지 못한다. 아마 현실에서 덕출같은 인물이 존재하더라도 주변에서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일상에서도 흔히 듣게 되는 '나이들어서 주책이다'라는 표현 속에는 품위, 체면, 현실성 같은 핑계를 내세워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으로 돌아간다. 젊고 멋진 주인공들이 나오는 로맨스나 액션, 판타지도 아니고, '일흔의 할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발레 배우는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를 과연 누가 볼까'하는 의구심이다. 개성넘치는 주인공과 자극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최근 안방극장에서 보기 드물게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을 내세운 착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대부분 젊은이들의 시선으로 다루어진 이야기 일색이었다. 물론 주말드라마나 사극처럼 연륜있는 주인공들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그나마 중장년층 정도가 한계였다. 특히 전통적인 대가족제도가 붕괴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등 '시니어'들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조차 관심밖으로 밀려났다. 특집극이나 단막극이 아닌 이상은 6070세대 이상 시니어들의 꿈, 도전, 욕망 등을 주제의 핵심으로 다루는 이야기들은 상업화된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베테랑 배우 박인환은 오랜 연기경력에도 주연보다는 명품 조연의 이미지가 강하다. 또한 누가봐도 평범하고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의 이미지와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박인환이 가장 거리가 멀어보이는 발레 지망생 연기를 한다는 것부터가, 극중 심덕출의 도전을 무모하게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과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입장이 일치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꿈을 좇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뤘는가 또는 이룰 것인가가 아니다. 왜 도전하는지, 그 과정은 어떤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드라마에서도 심덕출의 순수하고 절박한 열정은 결코 주책맞거나 우스꽝스럽게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와 체면이라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일흔의 나이와 발레라는 특별한 배경을 제외하면, 심덕출이라는 인물 자체가 현실의 무게속에서 가슴 속에 꿈을 묻고 살아온 모든 '평범한 우리들'을 대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누구에게나 미숙한 젊은 시절은 있었다. 이채록처럼 젊은 시절에는 그 순간의 소중함이나 기회를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한번 기회를 놓치거나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의 드라마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조금 멀리 돌아가게 되더라도 꿈을 향해 도전하는데 늦은 나이는 없다. 드라마 속 심덕출처럼 자신의 꿈을 놓지않고 도전하는 멋진 시니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우아하게 나이먹어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나빌레라 박인환 시니어드라마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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