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경남 마산 서성동에는 작고, 낡고, 오래된 예식장이 있다. 1967년에 문을 열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 놀라운 건 개업부터 지금까지 무료로 운영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약 1만 4000쌍의 커플이 탄생한 이곳은 올해 90세인 백낙삼 사장과 올해 80세인 최필순 이사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지난 세월과 백낙삼, 최필순 부부의 삶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제목은 예식장의 이름과 동명의 <신신예식장>.

저자 한승일은 신신예식장의 풍경과 사연에 매료되어 2년간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백낙삼 사장과 최필순 이사를 취재했다. 노부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어떤 기억은 어제처럼 선명했고, 어떤 기억은 흐릿했다. 때로 장황했고, 때로 갈팡질팡했고, 때로 많은 것이 삭제되어 있었다. 90년의 삶과 50년의 공간을 되새기는 일은 누구에게나 그러할 것이다.

한승일은 그저 들었고, 가끔 질문했다. 남겨야 할 이야기를 판단하는 일과 기나긴 세월의 흐름을 정리하고, 해체하고, 확인하고, 톤과 균형을 맞추어 재조립하는 일은 오직 작가의 몫이었다. 한승일은 포장하지 않고, 미화하지 않았다. 건조하게 쓰고, 담담하게 찍었다.

그래서 <신신예식장>은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공간에 관한 기록인 동시에 그 공간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일과 삶에 자부와 명예를 갖고 살아 온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4일 <신신예식장>의 저자 한승일을 만났다.
 
 백낙삼 사장, 최필순 이사 부부
 백낙삼 사장, 최필순 이사 부부
ⓒ 박정우

관련사진보기

 
 신신예식장 웨딩홀
 신신예식장 웨딩홀
ⓒ 박정우

관련사진보기

  
-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지금까지 약 17년째 출판 바닥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일종의 출판 낭인이다(웃음). 출판 취재 기자로 시작해, 지금은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사진을 찍는다."

- <신신예식장>은 어떤 책인가?

"50년 넘게 무료로 운영하는 신신예식장이라는 공간과 이 공간을 둘러싼 사람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처음 기획은 신신예식장에 대한 역사와 시스템에 관해 다루고 싶었다. 그동안 1만 4000쌍이 이곳에서 결혼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신신예식장을 이야기하려면 백낙삼, 최필순 부부의 삶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더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을 50년 넘게 지속한 분들 입장에서 일과 삶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나. 이런 다양한 지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한마디로, 재밌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도서 <신신예식장> 표지이미지
 도서 <신신예식장> 표지이미지
ⓒ 박정우

관련사진보기

 
- 이 책을 쓰기 위해 2년간 서울과 마산을 오갔다고 했다. 책이 나오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 힘들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는데, 우선 코로나로 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코로나가 노인들에게 치명적인 만큼, 혹시나 내가 옮기면 어쩌나 하는 무서움도 컸고, 동시에 내가 노인 세대에 대한 이해가 진짜 부족하다는 것도 절실히 깨달았다.

서울에서 마산까지 KTX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처음엔 새벽에 출발해 마지막 기차를 예매하면 그래도 대략 4시간은 인터뷰하고, 4시간은 촬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체력의 문제가 있는 거다. 두 분 다 의욕은 넘치지만 2시간 정도 얘기하면 지치신다. 뭘 더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리고 얼마 전의 일인 것처럼 말씀하지만 이게 사실은 10년 전, 30년 전의 사건인 것도 많았기 때문에 수정도 여러 번 해야 했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작업도 반복해야 했다.

물리적인 거리도, 정서적인 거리도 너무 멀었다. 물리적인 거리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작업이 진행될수록 정서적인 거리는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괴롭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 두 부부의 삶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이 있을까?

"삶과 죽음, 일과 사랑 같은 것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어떻게 늙어야 할 것인가?',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한 사람과 살면서 여전히 서로 배려하고 아끼면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어떤 삶을 살면 백낙삼 사장처럼 '한평생을 즐겁게 살았으니, 나의 죽음을 웃으며 경사스럽게 맞이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50년 넘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고작 17년 했는데도 이렇게 지겨운데!(웃음)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위에서 종종 이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사실 삶, 죽음, 일, 사랑은 우리 삶의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 아닌가. 개인적인 고민도 고민이지만 이런 내용을 책에 잘 담아내고 싶은데 나의 능력이 모자란 것 같아서 그것도 괴로웠고.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판단은 독자들이 해주시겠지."
 
 백낙삼 사장이 미리 써놓은 유언장
 백낙삼 사장이 미리 써놓은 유언장
ⓒ 박정우

관련사진보기

 
낡은 것은 낡은 대로, 깨진 것은 깨진 대로 

- <신신예식장>을 보면 작가가 의견이나 판단을 배제한 채, 듣고 본 것을 가지런히 정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신신예식장이 굉장히 좋은 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두 분의 선행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 주거나, 감동적으로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이유가 있는지?

"판단이 들어가면 포장하게 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인터뷰 자체에서 백낙삼, 최필순 부부도 본인들의 삶을 어느 정도 미화한 지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50년 넘게 해온 자신들의 일이었고, 또 그 일을 사랑하는 분들이었으니까 당연한 거다. 그런데 여기서 나까지 나서서 미화해 버리면 너무 위인전처럼 되어 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저 공간과 삶을 솔직하게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울림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이 책에는 한때는 찬란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어떤 공간이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백낙삼 사장을 보면 지금도 여전한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출 것인가를 판단하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두 분은 해방 이후부터 정말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 삶의 어두운 부분도 분명 있었을 거다. 예식장이 늘 잘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백낙삼 사장은 그 세월을 끝끝내 버텼다. 이들은 다 무너져가는 예식장을 붙잡고 있는 쓸쓸한 노인이 아니다. 자기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했고, 그 일에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여전히 대단히 큰 만족과 자부심을 가진 분들이다.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실제로 첫 촬영을 하러 갔던 날 신신예식장에서 결혼한 지 일 년 된 부부가 와서 기념사진을 찍고 갔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살면서 자신이 결혼한 예식장 사장에게 고맙다고 생각하고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이런 장면을 통해서 이들이 왜 그토록 이 공간과 일을 사랑하는지 좀 깨닫게 됐다. 그런 내용을 살리고 싶었다."

- 사진에 대해 얘기해 보자. 공간과 사람에 대해 멋 부리지 않고, 충실히 소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원칙으로 찍은 것인가?

"출판사와도 얘기하길 '예쁘게 찍지 말자'고 했다. 펜션 같은 곳을 보면 사진으로는 너무 예쁘고 좋은데, 실제로 가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나.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 조명 많이 세워서 밝게 하고, 필터 쓰면 예쁘게 찍을 수도 있었겠지. 근데 그건 또 우리 취지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낡은 것은 낡은 대로, 깨진 건 깨진 대로, 바뀐 건 바뀐 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 취재했지만 책에 담지 못한 내용도 많았을 것 같은데?

"예를 들면 가족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지점이 많았는데 이런 것들까지 다 담으면 이야기가 너무 곁가지로 뻗어가면서 중심이 흔들릴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두 분 사위가 박노자 선생인데, 이들은 과연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을 했는지, 신신예식장에서 외국인들이 결혼을 많이 하지만 그래도 파란 눈의 이방인을 사위로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는지 뭐 이런 내용들이다. 취재하긴 했지만, 책에는 담지 않았다. 여기서도 밝히진 않겠다.(웃음)"
 
 백낙삼 사장은 특별한 날에 여전히 아내인 최필순 이사에게 편지를 쓴다. 최필순 이사는 한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수영대회에서 받은 트로피에 그간의 마음을 담았다.
 백낙삼 사장은 특별한 날에 여전히 아내인 최필순 이사에게 편지를 쓴다. 최필순 이사는 한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수영대회에서 받은 트로피에 그간의 마음을 담았다.
ⓒ 박정우

관련사진보기


- 책을 보고 백낙삼, 최필순 부부는 어떤 반응이었나?

"너무 만족하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사실 두 분께서 나름대로 신신예식장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좀 있으셨다. 나중에 돌아가시면 신신예식장을 박물관처럼 만들어야 할지, 다른 사람에게 운영을 맡겨야 할지 뭐 그런 것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지난 과정들이 기록이 되어 묶여 나왔으니 나름대로 소원을 푸신 게 아닐까?

두 분이 나이 차이가 딱 열 살인데 한 이십 년 전에 백낙삼 사장이 부인에게 나는 백한 살, 당신은 아흔 살에 죽으면 참 좋지 않겠냐, 뭐 그런 말씀을 하셨단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이제 십 년밖에 안 남았다. 그래서 내가 이거 150살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백 살이면 됐지!' 하시면서 되게 해맑게 웃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신신예식장, 백낙삼 사장은 영화에도 직접 출연했다.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신신예식장, 백낙삼 사장은 영화에도 직접 출연했다.
ⓒ 박정우

관련사진보기


신신예식장 - SINCE 1967

한승일 (지은이), 백낙삼, 최필순, 클(202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