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시작부터 불안했던 한일전이 벤투호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마감했다. 통산 80번째 한일전에서 한국축구는 뚜렷한 전략과 투지도 매너도 실종된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했다. 벤투호의 미래에 적지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한국은 25일 저녁 7시 20분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국가대표 친선전에서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이 더 한심했다. 한국은 90분간 일본에 일방적으로 밀려다니며 유효슈팅은 단 1개(전체 슈팅 6개)에 그치는 졸전을 펼쳤다. 조광래호 시절이던 2011년 삿포로 원정에서 0-3으로 패한 이후 10년만에 똑같은 '참사'가 재현됐다.

어려운 경기가 될 것임은 이미 예상된 결과다. 벤투호는 이번 원정 평가전을 앞두고 손흥민, 황희찬, 이재성, 김민재 등 베스트멤버들 상당수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합류가 불발되며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반면 홈팀 일본은 유럽파 9명이 가세했고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무조건 총력전을 선언하는 등 한일전에 강한 필승 의지를 드러냈다. 냉정히 말해 진급의 벤투호가 승리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 이번 한일전을 통하여 한국축구가 어떤 소득을 얻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일전은 시작부터 국내에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훨씬 강했다. 코로나19가 아직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역관리가 불안정한 일본과의 원정경기를 추진하는 배경에 많은 팬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도쿄올림픽 정상 개최가 불확실한 일본이 여론의 관심도가 높은 한일전을 통하여 자국의 안전을 홍보하려는데 한국축구가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내부적으로도 선수차출 문제를 놓고 한국축구는 잡음에 시달렸다. 최근 소속팀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던 손흥민을 한일전에 차출하려다가 불발되는가 하면, 특정팀에 치우친 선수선발기준으로 인하여 K리그 구단들로부터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논란의 초점은 어느새 벤투 감독의 리더십과 팀운영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번졌다.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선수들 역시 최상의 컨디션과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일전에서 그래도 희망적인 내용이라도 있었다면 벤투호에게 쏟아진 부정적인 여론을 뒤집을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반전은 없었다. 오히려 벤투 감독의 불통과 축구철학에 대한 의구심만 다시 확인시키는 장면들이 속출했다는 게 경기 결과보다 더 큰 문제였다.

벤투 감독은 전반 이강인(발렌시아)을 사실상 제로톱으로 투입하는 전술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전반에만 두 골을 내준 일방적인 경기내용에서 보듯 일본의 강한 압박과 조직력에 밀려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중원에서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나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을 수 있는 리더도 보이지 않았다.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후방 빌드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라는 문제점이 반복됐다.

선수들의 장단점과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하고 기용했는지도 의문을 자아낸다. 이강인은 소속팀에서도 세컨톱으로 기용되기는 하지만, 후방에서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패스를 뿌려주는 데 더 능하다. 벤투 감독은 소속팀 울산 현대에서도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밝힌 홍철, 개인사정과 외국인 출입제한으로 J리그 일정에 합류하지 못해 올해 소속팀 경기를 단 한번도 뛰지못한 김영권을 아랑곳하지 않고 중용했지만 두 선수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고 전반 2실점 상황에서도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한일전에서 드러난 벤투 감독의 문제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벤투식 빌드업 축구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벤투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빌드업 축구가 한국에 잘 맞는 옷이라고 주장했지만 2019 아시안컵 8강 탈락, 안방을 벗어나면 원정경기에서 유난히 부진 등으로 인하여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패스와 점유율 위즈의 축구철학을 유지해왔던 일본과의 대결은 벤투식 빌드업 축구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정면승부였지만 결과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강팀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만 확인했다.

두 번째는 '플랜B'로 대표되는 전술적 유연성의 부재다. 빌드업 축구 자체는 매력적인 전술이다. 하지만 경기 상황과 상대팀에 따라 때로는 롱볼에 의존하는 '뻥축구'를 해야할 때도 있고, 수비를 두텁게 세우는 '버스축구'가 필요한 때도 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자신이 추구한 플랜대로 경기가 운영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대안이 아예 없다. 선수구성부터 소속팀에서 얼마나 좋은 활약을 펼쳤냐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에 맞는 선수들만을 선발하고, 선수들을 자신의 전술에 끼워맞추는 스타일이다.

손흥민조차도 벤투호에서는 활약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베스트멤버가 모두 소집되었더라도 경기결과가 달라졌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백 등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베스트멤버 없이는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는 팀이라면 한일전같은 돌발변수가 발생했을 때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벤투 감독의 독선적 성향에 있다. 어느 감독이든 자신의 축구철학에 대한 고집이나 자존심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 벤투 감독은 그동안 좋지 못한 경기로 비판을 받았을 때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기는 했지만 정작 이후로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소통 논란도 결국 벤투 감독의 독선을 보여주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벤투 감독은 한국대표팀을 맡은 이후 지금쯤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철학과 한국축구의 방향성에 대하여 단 한번도 뚜렷한 비전이나 구체적인 근거를 설명한 적이 없다. 그저 본인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가 옳다' '팀에 필요한 선수라서 뽑았다'는 식의 일방적인 주장과 통보만 있었을 뿐이다. 국가대표팀 벤투 감독 개인의 소신과 커리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실험대상이 아니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번 한일전이 단지 벤투 감독 개인에 대한 책임론으로만 기우는 것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일전을 기획한 것은 축구협회였고, 감독의 소통 문제나 선수선발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불협화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도 협회가 공통으로 짊어져야 한다. 필요할 때 외국인 감독을 보호하거나 혹은 관리-견제하는 역할을 협회가 제대로 하지 못하니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한일전 패배는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다가오는 월드컵 예선이다. 지금 대표팀에 필요한 것은 벤투호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내부 성찰과 재정비다.

10년전 일본에 3골차 완패를 당했던 조광래호는 삿포로 참사 이후에도 드러난 문제점을 애써 외면하다가 결국 월드컵 2차예선에서 탈락위기에 놓이고 감독이 경질당했다. '요코하마 참사'가 월드컵 예선에서 벤투호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이 바로 벤투호의 문제점을 돌아볼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위기의식이 필요해 보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벤투호 한일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