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말 먼 곳>포스터

영화 <정말 먼 곳>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목장의 나른한 오후 한 마리의 양이 숨을 헐떡인다. 나이 많은 양은 이내 숨을 거두고 이를 지켜본 아이와 어른은 양을 쓰러진 고목나무 아래 살뜰히 묻어준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애처로워 보인다. 양을 소중히 다루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남성과 이를 지키는 아이가 정겹기만 하다.

서울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강원도 화천에서 양치기로 살아가는 진우(강길우)는 딸 설(김시하)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반가운 손님 현민(홍경)을 맞이한다. 복잡한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현민은 진우를 따라왔다. 보수는 많지 않지만 시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곁에 은영(이상희)이 찾아온다. 은영은 설의 친모이자 진우의 쌍둥이 동생으로 5년 전 딸을 버리다시피 떠났던 인물이다. 은영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안정된 생활에 미세한 균열을 가져왔다. 이제 와서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은영은 사사건건 다툼을 유발하며 진우의 일상을 헤집어 놓는다.
  
 영화 <정말 먼 곳> 스틸컷

영화 <정말 먼 곳>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정말 먼 곳>은 우리 사회 편견이라 부르는 것들, 낙인과 오해의 시선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은 사회가 정한 기준과 다른 소외된 인물이며, 목장은 세상과 단절된 판타지 세상이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목장 주인 중만(기주봉)의 가족은 진우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동물 눈을 하도 들여다봤더니 이젠 사람 눈만 봐도 사연이 있는 줄 알겠다며 짐작만 할 뿐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을 아끼는 진우를 탓하지도, 딸 문경(기도영)의 마음을 알아봐 주지 않냐고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그곳에 숨어든 진우는 타의에 의해 떠도는 유목민이자 양과 같은 사람이다. 양은 겉모습과 달리 한번 성질을 부리면 끝까지 가는 고집불통이다. 즉, 양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속마음을 쉽게 알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하루 시간을 자연을 벗 삼아 천천히 흘러간다. 치매 노인과 어린아이가 친구가 되고, 대학 공부까지 시킨 딸이 되돌아왔을 때 왜냐고 묻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건,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 너른 품을 내어 준다. 진우는 자신을 아빠가 아닌 엄마라고 부르는 딸을 두고, 나 또한 어릴 때 엄마가 오랜 병원 생활하며 자주 못 보자 아버지를 엄마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엄마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말로써 응축된 행동이라 할 수 있는데 엄마 없이 큰 설이가 실체가 없는 엄마를 은연중에 그리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정상과 비정상, 일반과 특수를 정하는 이가 누구인지 물음표가 꼬리의 꼬리를 물 때 쯤 진우의 사연을 천천히 읊는다. 그 방법이 다소 느릿하고 투박해 보여도 그러한 연출조차 캐릭터의 딱 맞는 옷처럼 느껴진다. 배경이 된 강원도 화천은 아름다운 절경으로 목가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사랑을 키워가는 연인을 지켜본다.
  
 영화 <정말 먼 곳> 스틸컷

영화 <정말 먼 곳>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정말 먼 곳>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박근영 감독은 전작 <한강에게>에서 선보인 인간 내면의 고찰과 시를 한 번 더 끌어왔다. 다시 또 동명의 시를 제목으로 삼았다. 감독의 친구인 박은지 시인의 등단작 '정말 먼 곳'에서 영감받아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실제 시를 읽는 장면을 삽입했다.

시를 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르게 보기'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비틀어 보고 다르게 볼 때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다가온다. 가까운 듯 보여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관계, 멀리 있어도 곁에 있는 듯 가까운 감정에 대한 아이러니다.

일상에 지쳐 정말 먼 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사이 정말 가까운 일은 무너지고 있었다. 다 끝났다고 포기할 무렵, 자연의 순환이야말로 이들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첫 장면의 죽음과 마지막의 탄생이 완벽한 수미상관의 방증이 된다.
 
정말 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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