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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애틀랜타에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인 4명을 포함하여 총 8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미국의 참담한 소식을 듣고 독일에서 받은 인종차별 경험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장면 하나. 장을 보고 있을 때 내 뒤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던 두 명의 덩치 큰 백인. (당시 상황이 긴가민가해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장면 둘. 자전거를 막 타려고 하던 중 자전거 벨을 요란하게 울리며 웃으며 지나갔던 두 명의 백인 남자. (뭐야("what is it?")라고 말하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재밌다고 하며 지나갔다.)

#장면 셋. 횡단보도를 막 건넜을 때, 차 안 신호등을 기다리며 '코로나, 코로나' 등 시시덕거렸던 4명의 젊은 백인 남성과 여성. (코로나라는 말을 듣고 뒤돌아보았을 땐 이미 빠르게 가버리고 없었다.)

#장면 넷. 기차를 막 탔을 때 저리 가라는 식의 손짓을 했던 3살짜리 백인 남자아이. (아이와 같이 있던 여성이 그 아이에게 자신의 피부색을 보여주며 아이를 혼내는 모습을 봄. 나는 따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인종차별 경험 때문에 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인종차별에 더 민감해졌고, 때론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밖엔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한국 속담에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를 목표 삼아 따라오는, 적당한 지능을 가진 똥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인종차별이란 똥의 지능이 점점 더 발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공격의 대상이 피하거나 반발할 것을 대비해 무리 지어 다닌다. 그리고 자신이 확실히 이길 상황에만 행동을 개시한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나는 하루 종일 마음과 정신이 끊임없이 괴롭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인종차별이란 사회적 질병이 한 사회에 얼마나 빠르게 퍼질 수 있는지 몸소 알게 됐다. 평화갈등학을 공부하러 독일에 와서 인류가 겪고 있는 갈등의 본질이자 증상을 이렇게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체험하게 될 줄이야.

피부색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총기 난사를 벌이는 참담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 하지 못한 미국, 그리고 3살배기 소년도 인종차별을 할 수 있게 만든 독일. 이런 상황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인종차별이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서구사회에서 인종차별이란 바이러스가 쉽게 증폭된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이 뒤숭숭했다.
   
아시아인으로 독일에 살면서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베를린에 자란 두 명의 백인(two white born-and-bred Berliners)이 아프리카 생활 중 자신이 전형적인 '무지한 서구인'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열었다고 알려진 인터콘티넨탈(InterKontinental) 서점으로 향했다.

직접 가보니 아프리카 작가가 쓴,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책들이 많았다. <나는 왜 백인에게 인종 문제에 관해 말하지 않기로 했나?>, <백인처럼 생각해라>, <백인의 심약함> 등. 또한 아프리카 식민지 민중의 정신적 고통을 연구하고 알제리 독립운동을 지원한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 1952년 저술한 <검은 피부 하얀 가면>도 찾을 수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서점은 2018년 12월에 열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독일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문헌에 특화한 책을 다루는 서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 작가의 책이 서점에 있는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게 이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그렇다. 인종차별 상황이란 '똥'을 피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겠으나, 설령 그 똥을 밟지 않았더라도 그런 상황 자체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태그:#인종차별, #코로나, #총기난사, #베를린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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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평화학 연구를 했다. 주요관심분야는 농촌 문제,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 탈식민주의, 언론, 환경문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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