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는 이만수, 김성래, 이승엽, 최형우(KIA타이거즈)로 이어지는 쟁쟁한 홈런 타자 계보가 있다. 이들이 홈런왕을 차지한 연도는 모두 12회에 달한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홈런군단으로 삼성의 야구를 오랜 기간 지켜본 팬이라면 작년 팀 홈런 7위(129개)를 기록한 타선의 힘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삼성은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올 시즌을 앞두고 힘이 좋은 외국인 타자 호세 피렐라와 통산 147홈런의 거포 1루수 오재일을 영입했다.

두산 베어스는 전통적으로 '포수왕국'으로 유명하다. 프로원년부터 김경문과 조범현이라는 좋은 포수를 거느리고 있던 두산은 1990년대 김태형과 박현영, 이도형을 거쳤고 홍성흔이 2000년대, 양의지가 2010년대를 호령하며 지금까지 총 6개의 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2019년 프리미엄12 대표팀에 선발된 박세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두산팬들이 베어스의 안방에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다.

삼성이 거포, 두산이 포수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LG는 좌완 에이스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1994년과 1995년 2년 연속 다승왕을 차지했고 1997년에는 구원왕을 차지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생마' 이상훈(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이상훈 이후 리그를 지배하던 확실한 좌완 에이스가 없었던 LG팬들이 올해는 내심 새 외국인 투수 앤드류 수아레즈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상훈에 버금가는 좌완 에이스는 없었다
 
 17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연습경기. LG 앤드류 수아레즈가 역투하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연습경기. LG 앤드류 수아레즈가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LG는 이상훈의 해외 진출 이후에도 괜찮은 좌완 투수를 거느린 적이 있었다. 1999년부터 10년 간 LG에서 활약했던 이승호(kt 위즈 불펜코치)는 2003년 11승 11패 평균자책점 3.19, 2004년 9승 7패 2.71을 기록하며 LG의 새로운 좌완 에이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2003년 191.2이닝을 던진 후 관리를 받지 못한 이승호는 2004년을 기점으로 성적이 점점 하락하더니 2008 시즌이 끝난 후 SK 와이번스(현 SSG랜더스)로 이적했다. 

3년 연속 두 자리 승수(2008~2010년)와 3년 연속 25세이브 이상(2012~2014년)을 기록하며 통산 55승 46패 109세이브 3.41의 성적을 남긴 봉중근은 충분히 성공한 좌완 에이스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봉중근은 국가대표로도 장기간 활약하며 제1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4강과 2회 WBC 준우승,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봉중근이 한창 전성기를 보냈던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LG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흑역사를 보내던 시기였다. 실제로 봉중근은 화려한 대표팀 경력과 정규리그 성적과는 별개로 가을야구에서는 통산 7경기에 등판해 2세이브4.05의 성적을 기록한 게 전부다. 만약 봉중근이 LG가 가을야구 단골손님이 된 최근에 전성기를 보냈다면 봉중근의 커리어와 LG의 가을성적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LG는 좌완 외국인 투수를 꾸준히 영입하며 외국인 선수를 통해 '이상훈 시대'를 재현하려 했다. 2011년부터 3년 동안 활약한 기교파 좌완 벤자민 주키치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첫 2년 동안 두 자리 승수를 올렸다. 하지만 정작 LG가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초대된 2013년에는 4승 6패 6.30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특히 성적부진으로 방출을 당한 후 SNS에 구단에 대한 불만을 늘어 놓는 등 결별 과정도 썩 아름답지 못했다.

뛰어난 구위와 마운드에서의 카리스마를 겸비했던 데이비드 허프는 잦은 부상이 치명적이었다. 타고투저 시대에 13승 6패 1홀드 2.66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문제는 이 성적이 한 시즌이 아닌 두 시즌 동안 기록한 성적이라는 점이다. LG는 허프가 잦은 부상으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허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허프는 2017년12월 일본 프로야구의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계약하며 LG를 떠났다.

두산 4이닝 무실점으로 압도한 LG의 새 외인투수 

허프 이적 후 LG는 2018년 헨리 소사와 타일러 윌슨, 2019년과 작년에는 케이시 켈리와 윌슨으로 구성된 우완 투수들로 외국인 원투펀치를 구성했다. 2018년 소사와 윌슨이 18승, 2019년 켈리와 윌슨이 28승, 2020년 25승을 합작하며 LG의 우완 원투펀치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윌슨이 10승 8패 4.42로 주춤했고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3.1이닝 4실점으로 무너지면서 켈리-윌슨 콤비는 2년 만에 해체됐다.

여기에 LG의 왼쪽 마운드를 지탱해 주던 '토종 에이스' 차우찬마저 작년 시즌 어깨 부상으로 5승에 그치고 말았다. 두 번째 FA자격을 얻은 차우찬은 1년 총액 10억 원에 LG와 계약했지만 올해로 35세의 노장이 된 차우찬이 한창 구위가 좋았던 2017 시즌의 구위를 되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LG는 고민 끝에 수아레즈와 계약하면서 2017년 허프 이후 4년 만에 좌완 외국인 투수를 영입했다.

고교 시절 9라운드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됐던 수아레즈는 대학 진학 후 2014SUS 다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2라운드로 지명됐다. 2018년 빅리그에 데뷔한 수아레즈는 루키 시즌부터 풀타임 선발로 활약하며 7승13패4.49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 선발진에서 탈락한 수아레즈는 미니 시즌이었던 작년 6경기에서 9.2이닝만 소화했고 지난 1월 LG에 입단하면서 처음으로 동양야구에 도전하게 됐다.

일단 연습경기에서 보여준 수아레즈의 구위와 투구 내용은 올 시즌 활약을 기대하게 하기 충분하다. 지난 10일 kt와의 첫 평가전에서 2이닝1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한 수아레즈는 17일 두산전에서도 시속 151km의 빠른 공을 던지며 4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행진을 이어갔다. 두산의 새 외국인 투수 워커 로켓이 2이닝5피안타2볼넷3실점으로 흔들린 것과 비교되는 호투였다.

수아레즈는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두산이 라이벌 팀이라 더 집중해서 던졌다"며 '잠실 라이벌' 두산을 의식하며 투구를 했다고 밝혔다. 이는 1990년대 LG의 에이스 이상훈이 라이벌 OB를 상대할 때 가졌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비록 연습경기일 뿐이지만 LG는 올해 뛰어난 구위와 핵심투수로서의 마인드까지 갖춘 진정한 좌완 에이스를 거느리게 될 확률이 꽤나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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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LG 트윈스 앤드류 수아레즈 연습경기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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