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 판씨네마㈜

 
먼 이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국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거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이민의 길이지만 녹록지만은 않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삶을 익숙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

사실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이 꼭 이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전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주변 환경이 바뀔 때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한다. 그리고 쉽지 않은 현실 앞에서 가족들은 서로 대립하고 싸운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곳에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 의지할 곳은 바로 옆에 가족뿐이니 말이다.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영화 <미나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빗(앨런 김) 가족이 알칸소의 새 집에 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가족이 알칸소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이콥은 바퀴가 달린 집과 그 주변의 땅에 농장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하는 일을 하며 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미국 대도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한 이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 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거주 환경과 주변을 본 모니카가 실망감을 토로하지만 여기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남편 제이콥의 말에 일단 그곳에서의 삶을 준비한다.

제이콥이 준비하는 농장은 그의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제이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주변의 땅에서 물을 찾는 일이다. 물길을 찾는 외부인을 불러와 살펴보거나 자신이 직접 땅을 파서 땅속의 물을 찾아 농사에 활용한다.

제이콥이 늘 물에 신경쓰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물은 꽤 중요한 요소다. 물만 잘 공급된다면 농사를 짓기 수월하고 이들 가족은 큰 불편함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물이 원활하게 공급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물이 끊겼을 때 가족을 압박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영화 <미나리> 장면

영화 <미나리> 장면 ⓒ 판씨네마㈜

 
제이콥은 자신의 농장에서 작물을 성공적으로 수확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믿고 부단히 매달린다.

반면 모니카는 실패할 수도 있는 농장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병아리 감별일을 지속적으로 하길 원한다. 그리고 조금은 더 큰 도시로 이주하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를 원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을 위하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른 것이다.

의견대립에도 같은 곳을 보고 나아가는 가족

그런 작은 대립에도 불구하고 모니카와 제이콥은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모니카는 제이콥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비록 제이콥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엄마인 순자(윤여정)를 미국으로 불러와 자신과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한다. 순자는 이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이자 물 같은 존재다.

순자는 이들 중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다. 그가 미국으로 올 때 가져온 고춧가루, 멸치 등은 밥상에 올라와 가족들에게 고국의 맛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화투는 아이들과의 재밌는 놀이가 된다. 비록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와 데면데면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외할머니는 이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간다.

그러나 익숙해진다는 것이 곧 친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완전히 마음을 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영화 속 데이빗과 앤도 마찬가지다. 대화조차 잘 통하지 않는 외할머니에게 그들이 친숙함을 쉽게 느끼기는 어렵다. 처음 외할머니를 만난 데이빗은 연신 할머니 같지 않다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한국의 할머니를 처음 만났고 기대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일하러 간 시간,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데이빗과 앤은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냇가로 산책을 간다. 특히 데이빗은 그 산책의 시간을 보내며 순자와 교감하고 갖고 있던 질병도 서서히 회복해간다.

<미나리> 속 특별한 장면들은 대부분 외할머니 순자와 데이빗이 만들어낸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짧은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냇가 옆에서 데이빗과 부르는 원더풀 미나리 송은 특히 정감이 간다. 
 
 영화 <미나리> 장면

영화 <미나리> 장면 ⓒ 판씨네마㈜

 
순자는 고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냇가에 뿌려 미나리를 키운다.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는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니카와 데이빗 가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후반 군집을 이루어 아주 잘 자라는 미나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 가족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물론 영화는 이들 가족이 잘 정착하여 살게 되는지, 농장 운영은 성공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가족 그리고 회복

가족의 고난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영화 <미나리>는 긍정적인 영화다. 잠깐씩 모습을 비추는 알칸소의 이웃과 교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호의적이다.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만 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폴(윌 패튼)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웃으로 등장하지만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니다. 이해 못할 행동을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제이콥의 농사가 잘되길 빌면서 일손을 돕는다.

어쩌면 영화 속 그의 주술이 실제로 가족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심리적인 도움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민자들 주변에 있었던 좋은 이웃들의 모습을 폴이라는 인물이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기 다른 포인트에서 공감하며 관람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부부의 이야기, 어떤 사람은 외할머니와 손주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이민자라면 이민자 자체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이민자들의 경험이 담겨 있지만 아주 보편적인 가족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미나리 미국이민자 정착기 가족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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