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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평화 소녀상 앞 시위
 베를린 평화 소녀상 앞 시위
ⓒ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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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온 지 1년 6개월. 3월 6일, 평화소녀상 영구 설치 요구를 위한 시위에 참여했다.

위 일본 전쟁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로 나를 "전형적인" 한국인으로 보았을 외국인들이 있을 것이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아직도 과거 문제를 들추겨 일본과 "협력"을 가로막는 전형적인 좌파라고 생각할 한국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 내가 참여했던 시위 취지, 규모 등의 얘기보다는 독일에서 "위안부" 피해자, 난징 대학살이나 731부대 등과 같은 일본 전쟁 범죄 관련 주제로 대화를 할 때 느낀 색안경과 관련된 경험과 감정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시위 하루 전 한 친구는 일본 전쟁 범죄를 다룬 한국 드라마가 '반프로퍼갠다'같다는 평가를 했다. 나는 반문했다.

"일본 전쟁 범죄를 다룬 영화나 소설이 프로퍼갠다면 안내 프랭크나 아름다운 삶이니 나치 범죄를 다룬 유럽 영화, 숱한 미국 영화들도 다 반프로퍼갠다로 봐야하지?"

한국인으로서 일본 전쟁 범죄 얘기를 하면 프로퍼갠다 같이 들리지만 안내 프랑크나 영화 아름다운 삶 등 독일 나치 범죄를 고발하는 영화나 책을 통해 전하는 얘기는 인류보편을 위한 행동이 된다. 일본 전쟁 범죄얘기를 하면 나는 이웃나라인 일본과 분쟁을 야기하는 "오래된" 과거 문제에 사로 잡힌 고리타분한 전형적인 한국인이 되지만 한국이 이젠 과거는 잊고 일본과 협력해야한다는 얘기를 하면 전형적이지 않은 국제적 소양을 갖춘 드문 한국인이 된다. 내가 말하는 일본 관련 역사가 진실에 가까운지와는 별개로 그러한 주제로 얘기했기때문에 스트레오타입이 되는 것이고 프로퍼갠다가 되는 것이다. 그들만의 틀에 갖혀 내가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의심과 비판의 대상이 될 뿐이다. 가끔 이런 나의 태도를 두고 국제적 소양이 무엇인지 가르치려 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로 누군가 나에게 얘기하면 나는 얼마나 공격적으로 말해줄까 고민하다 아래 가장 공격적인 버전을 조금 순화하여 말해준다. '불과 몇 십년 전까지 유색인종을 잔인하게 지배하고 심지어는 거의 멸종에 이르게해놓고 그러한 관심을 가지기는 커녕 법적 책임 회피만을 하고 있는 서구정부의 시민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유색인종이 또 다른 유색인종에게 식민지배기간 받은 피해를 유색인종을 지배했던 그 서구 사회에 꺼내 말한 순진한 내가 잘못이지'라고.

그러나 이런 대처는 독일 살면서 인간관계를 포기한 매사 삐딱한 한국인으로 만들뿐이다. 서구 식민주의에 끊임 없는 관심을 두는 친구와 교수님을 알고 있기에 모든 서구인들을 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1900년대 초 독일 정부가 90% 나미비아의 한 부족을 학살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독일 정부의 외면과 독일 시민이 무관심하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다른 유럽 국가가 식민역사에 대해 독일과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서구가 지배하거나 노예로 팔았던 흑인과 거의 멸종시켜버린 원주민, 일본에 의한 위안부 피해자뿐만아니라 미국과 내 나라 한국에 의한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범죄를 안내 프랭크만큼 가르치지 않는 서구와 내 나라의 교육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또한 한국인이 학교에서 안내 프랑크를 배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서구가 "위안부" 피해자와 자신들에 의해 희생당한 유색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지 못하다. 그렇기때문에 서구와 한국교육과정에 나치 범죄를 상세히 적으려했던 노력은 가치 있는 행동으로 평가되겠지만 전 세계 또 다른 안내 프랭크를 찾고 기억하는데에는 돈이 많이 들고 비현실적이게 된다. 국가 살림은 그렇게나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독일 유학은 무슨 의미를 가져다 주는 것일까?

문득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함을 고발하며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는 말을 남긴 베트런트 러셀 덕에 독일 유학생활의 모순을 어떻게 보낼지 적어도 다짐은 하게 되었다. 위선과 더불어 친절하고 국제적 소양을 갖춘 한국인으로 사느니 나는 진실과 더불어 전형적이고 가까이가기 불편한 한국인이 되어 독일 생활을 마칠까한다.

태그:#"위안부", #베를린, #독일, #한국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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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평화학 연구를 했다. 주요관심분야는 농촌 문제,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 탈식민주의, 언론, 환경문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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