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 젠킨스

카산드라 젠킨스 ⓒ Cassandra Jenkins

 
세심한 편성, 구어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으로 완만하게 나아가는 '하드 드라이브(Hard Drive)'를 들으며 2021년을 대표할 노래 하나를 찾았다는 기쁨에 취했다. 정확히 10년 전 밴쿠버 출신의 디스트로이어(Destroyer)가 발표한 'Kaputt'를 처음 들었을 때와 기분이 비슷했다. 10년이 지나도 계속 듣게 되리라는 확신을 주는 음악, 그 주인공은 뉴욕 브루클린의 음악가 카산드라 젠킨스(Cassandra Jenkins)다.

각기 다른 만남과 대화에서 희망을 포착한 노래 '하드 드라이브(Hard Drive)'

'하드 드라이브(Hard Drive)'에는 전시회, 운전 교습, 소규모 파티 중에 겪은 각기 다른 만남과 대화가 담겼다. 예술 작품에 관한 객관적 견해도 좋지만, 주관적 견해를 앞세워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카산드라에게 더 큰 즐거움과 영감을 선사했다. 정치와 예술, 페미니즘, 영성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구어와 보컬의 결합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곡을 작업한 첫날 세 개의 구절을 썼고 그에 맞는 멜로디를 찾으려 고심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어울리는 멜로디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프로듀서 조쉬 카우프만(Josh Kaufman)은 구어가 더 어울린다며 그대로 진행할 것을 제안했고, 본래 의도와 다른 곡이 탄생했다.

차분히 흐르는 기타와 신시사이저, 동력을 실어주는 색소폰을 배경으로 5분을 훌쩍 넘긴 오묘한 노래의 여운은 깊다. "지난 몇 달은 정말 힘들었지만, 올해는 괜찮을 것"이라는 낙관은 상투적이지 않게 다가온다. 카산드라는 큰 위로나 희망이 될 수 있는 '누군가의 말'을 완벽히 포착해냈다.

급격한 삶의 변화를 겪으며 만든 두 번째 앨범

지난 19일 공개된 <언 오버뷰 온 페노메날 네이처(An Overview on Phenomenal Nature)>는 2017년 <Play Till You Win>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이다. 포크에 기반한 데뷔 앨범을 자체 레이블에서 발표한 카산드라는 2019년 7월 첫 앨범을 발표한 프로젝트 밴드 퍼플 마운틴스(Purple Mountains)의 투어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투어를 며칠 앞두고 비보가 전해졌다. 핵심 멤버 데이비드 버만(David Berman)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투어 리허설까지 마친 카산드라의 상심은 깊었다. 급격한 삶의 변화는 현재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노래를 갈망하게 했다. 우선 다양한 순간과 아이디어를 노트와 휴대폰에 기록했다. 마치 아이를 낳은 부모가 첫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는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인 목표 같은 건 없었다. 고통과 상실감에 대처했던 당시의 삶과 공감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훌쩍 떠난 노르웨이는 두 번째 앨범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소한 몸짓부터 고독과 혼란, 무력감, 트라우마까지 깃든 앨범은 꽤 직설적이다. 그런데도 노랫말은 지나치게 처절하거나 어둡지 않다. 심지어 우아하기도 하다.
 
 앨범 <An Overview on Phenomenal Nature>

앨범 ⓒ Cassandra Jenkins

 
카산드라가 조쉬의 스튜디오로 들어갔을 때 완성된 곡은 'Michelangelo'뿐이었다. 뿔뿔이 흩어진 퍼즐 조각 같았던 기록들은 일주일 만에 노래로 완성됐다. 앨범에 수록한 곡은 총 일곱 개다. 곡 수만 보면 미니 앨범 같은데, 그 안에 아주 많은 것이 담겨있다.

현악기, 색소폰, 신시사이저를 적절히 활용하고 직접 대화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컬 녹음을 처리한 조쉬 카우프만의 프로듀싱은 앨범을 더 빛나게 한다. 2021년 그래미 어워드 두 개 부문 후보에 오른 보니 라이트 호스맨(Bonny Light Horseman)의 동명 타이틀 앨범, 평단의 찬사를 받은 디스 이즈 더 킷(This Is the Kit)의 < Off Off On > 프로듀서인 그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2020년 연작 < Folklore >, < Evermore >에도 참여해 이름이 더 알려졌다.

짜임새가 뛰어난 톱 트랙 'Michelangelo'의 절제된 포크 사운드는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를 언급하고 작별을 고하는 'New Bikini'로 이어지며 표류한다. 친구의 조언을 회상하고 낙관과 회의, 자조를 오가며 좌절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시간을 돌아본다. 공허한 일상으로 녹아드는 과정이 담긴 이 곡은 영롱한 피아노와 은은한 색소폰이 빛을 발한다.

고독한 발라드 'Ambiguous Norway'는 또 다른 애도가 담긴 곡으로 노르웨이행 비행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인생의 큰 사건을 묵상한다. "낯선 누군가의 품에 안겨 무너지길 바란다"라고 노래하는 'Crosshairs'는 누구나 겪는 어려운 순간을 나누고, 공감하며, 연대하는 이야기다. 따뜻한 멜로디와 섬세한 기타 사운드가 귓전을 맴돈다.

존경하는 친구 헤일리에게 축복을 보내는 단출한 어쿠스틱 트랙 'Hailey'는 다양한 버전을 시도해보면서 달콤한 멜로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대부분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이 곡은 평범하고 단순한 언어로 친구에 관해 노래한다.

7분을 넘기는 'The Ramble'은 평온한 앰비언트 트랙으로 삶과 사람, 대화가 가득한 앨범을 하나로 묶는다.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와 상실로 세상은 혼란스럽지만, 카산드라는 공감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는 음악들은 모든 게 불확실한 여정에 지친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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